LIFESTYLE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와 패티 스미스가 소리와 시로 나눈 대화

체르노빌 원자로부터 한국 DMZ까지. 세계 외딴 곳에서 채집한 소리가 작품이 되기까지.

프로필 by 고영진 2025.05.26

소리와 시의 대화


어떤 소리는 보이지 않는 기억을 길어 올린다. 어떤 시는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그린다. 어떤 소리와 시가 만났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이와 같은 풍경들.


<Prince of Anarchy>, handwriting by Patti Smith.

<Prince of Anarchy>, handwriting by Patti Smith.

무정부 상태의 군주

그때 그 시절엔

인자한 늑대들의 눈처럼

하늘에 별이 총총해

사랑의 노래를 울부짖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꽃과 동물은 무엇이나 영혼이 있었으며

물속에는 정령들이 깃들여 있었다

의례의 춤, 북소리,

몽환의 치유제들

그때 그 시절, 지구는 순조롭게 돌았고

검고 통통한 사슴 무리와

거위 떼로 가득했다

우리는 내리는 눈에 기뻐하고

우리가 거둔 양식을 축하했다

그때 그 시절에

밤은 별들로 가득 찼다

나는 그때 너를 알았고

지금은 혼자 남아

우짖어 사랑을 노래하던

늑대들에게 묻는다

동물들도 사람의 울음을 우는 걸까?

사랑하는 이가 비틀거리며

더럽혀지고

핏줄 푸른 강으로 떠밀려 가면

암컷 고래도

괴로워하는 늑대처럼 울부짖을까?

동물들도 사람의 울음을 우는 걸까?

내가 너를 잃고 그랬던 것처럼

절규하고, 발버둥 치고

몸을 바짝 웅크린 채

이렇게 우리는 얼어붙은 들판을 헤쳐나간다

신발도 없이 빈손으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몰골로


사운드워크 컬렉티브(Soundwalk Collective)의 창립자 스테판 크라스네안슈키는 세계 외딴 곳을 누비며 소리를 채집한다. 버려진 도시와 숲, 우크라이나의 바다, 콘크리트로 봉인된 체르노빌의 원자로에서. 돌아오는 길의 가방에는 돌과 흙, 식물, 바람이 불고 땅이 진동하고 나뭇잎이 서걱이는 소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음악과 문학, 미술, 사진을 넘나드는 패티 스미스는 그 모든 소리와 이미지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엮어내는 시를 쓴다. 그리고 읊는다.

스테판이 소리를 건네면 패티는 시로 응답한다. 전시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 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는 지난 10여 년간 두 사람이 소리와 시로 주고받은 대화다. 스테판이 채집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소리를 들은 패티는 구체적인 사물과 풍경을, 어느 혁명가와 예술가의 흔적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의 울부짖음을 읽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부합하는 이미지와 영상, 낭송한 시를 영상 위에 쌓아 올린다. 전시장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필름이 내내 상영된다.

서울 전시 오프닝 5일 전, 한국에 도착한 스테판은 DMZ로 향했다. 인간의 접근을 제한시켜 번성하는 자연을 목도할 수 있는 곳. 이곳에서 건강히 자생하는 식물들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색을 마주한 스테판은 어김없이 소리를 채취했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잠 못 이루던 간밤에는 DMZ에서 채집한 식물들이 꼭 제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어요. 스테판에게는 미리 말을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제안하고 싶어요. 우리 DMZ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더 이어나가자고요.” 오프닝 당일 아티스트 토크 자리에서 패티는 깜짝 발언을 했다. 전시와 무관하게, 두 사람의 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여덟 편의 영상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 전시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 스미스 : 끝나지 않을 대화»는 7월 20일까지 피크닉에서 열린다.


무정부 상태의 군주

빙하가 녹는 소리와 늑대의 울음이 교차한다. 그 위로 무정부주의를 외친 장뤼크 고다르의 음성이 얽히며 영상은 시작된다. 패티는 이 소리야말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현시대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빙하가 녹은 자리에 화학물질이 스며들어 선홍색 핏빛을 띤 구멍을 떠올렸다. 빙하가 부유하는 드넓은 바다 어딘가엔 삶의 터전을 잃고 표류하는 고래가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은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에 놓인 우리를 닮았다.

Film still from <Prince of Anarchy>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 Soundwalk Collective


메데이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콜키스 지역의 공주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 <메데이아> 속 서사를 더했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후 아이들을 살해하는 격정과 고통을 껴안은 여성의 이야기를. 스테판은 영화 속 메데이아의 출생지로 추정되는 조지아의 산맥에서 출발해 그가 남편과 함께 떠났다는 포티 항구를 지나 루마니아, 튀르키예, 불가리아를 거쳐 우크라니아에 당도했다. 요트 한 척을 빌려 바다로 향했고, 스캐너로 그곳을 지나는 모든 배의 주파수를 포착한 뒤, 어떠한 편집도 가하지 않은 채 겹겹이 쌓아 올렸다. 군함과 유람선, 상용 선박, 무역선… 짧고 긴 파장이 중첩된 소리를 건네받은 패티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메데이아에게 빙의하듯 몰입해 단숨에 독백을 써 내려갔다.

Film still from <Medea> (diptych)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featuring original footage from <Medea> by Pier Paolo Pasolini, 1969, courtesy of Cinemazero.


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수집한 소리가 영상을 구성한다. 부활절을 맞은 수도원에선 새벽마다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녀와 수사들의 기도, 수도원의 종소리,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소리는 패티의 상상력을 만나 종을 만드는 한 수도자에 관한 이야기까지 확장된다.

Film still from <The Acolyte, The Artist and Nature> (diptych)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featuring original footage from <Andrei Rublev> by Andrei Tarkovsky, 1966, courtesy of Andrey A. Tarkovskiy.


체르노빌의 아이들

종이 권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종이 크고 웅장할수록, 소리가 멀리 퍼질수록 군주의 힘은 셌다. 스테판은 이 사실로부터 과거 프랑스가 체르노빌 원자로 4호기를 덮기 위해 만든 거대 콘크리트 석관을 떠올린다. 거대한 콘트리트 종이 있다면 딱 그런 모습이 아닐까. 울리지 않는 종. 소리를 발산하지 않는 침묵의 경고. 이 작품 앞에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잔상을 지울 수 없다.

Film still from <Children of Chernobyl>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 Soundwalk Collective


산불

작품은 패티 스미스가 태어난 해인 1946년 이래 전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산불을 보여준다. 한 인간의 생애와 지구 생태계의 변화가 겹쳐 보인다. 얼마나 많은 것이 파괴되고 사라졌는가. 패티의 나지막한 음성이 지난 수십 년간 사라진 땅과 숲을 상기시킨다. 스테판이 순회 전시를 하는 곳마다 산불이 일었다. 작품에 기록되지 않은 2025년에도 한국 영남권에서는 전례 없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스테판은 어느 날 유리상자 너머에 전시되는 것이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Film still from <Burning 1946-2024> (diptych)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 Soundwalk Collective



Credit

  • 사진/ 피크닉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