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아이폰 16 Pro로 촬영한 단편 영화 <라스트 씬>, 씨네큐브 25주년 감독전, 그리고 새로운 에세이집 출간 소식까지. 현재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을 이야기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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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이 다시금 떠오르는 중이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 16 Pro로 촬영한 단편 영화 ‘라스트 씬 Last Scene’이 5월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것. 처음으로 감독이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에 도전했고, 가마쿠라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라마 작가로 성장 중인 남성과 미래에서 온 그의 손녀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SNS와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짧은 영상이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평이 이어졌다. 이번 협업은 애플 특유의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 전략이 아닌 ‘남다른 시선이 영화를 만든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과거 애플은 여러 아티스트 및 창작자와 영상을 거듭 기획해왔지만, 감독의 고유한 미학과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장편 서사 작업은 이례적이다. 27분 길이의 단편 영화가 그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건 기술보다 관계와 시간,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오래토록 천착해온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자신의 언어를 솔직 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음을 증명해냈다.

사진/ '비채' 제공
또한 4월 30일부터 서울 씨네큐브에서는 개관 25주년을 맞아 특별히 마련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전을 열었다. 과거 개봉한 작품들을 상영하지만, 단순한 회고전을 넘어 관객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금 '경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신작 에세이집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출간 소식까지 맞물렸다. 책은 2011년부터 8년간 감독이 적어 내려간 창작 노트이자 시선과 질문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이처럼 여러 매체를 통해 그만의 태도와 세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넘어 ‘이야기를 살아내는 깊이 있는 이야기꾼’임이 틀림 없다.

씨네캐스트 25주년_티캐스트 제공
시간을 지켜보는 영화적 언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사건보다 사라짐에, 변화보다 유예에 가까운 세계를 다룬다. 천천히 쌓인 시간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본다. 시선은 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낯설만큼 정적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이탈을 다루더라도 극화하지 않고 정중하게 비워둔다. 넉넉한 여백에서 인물은 관계를 다시 구성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흘려 보낸다. 그의 작품에 기반이 되는 정서는 다큐멘터리 디렉터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이력과도 닿아 있다. 고레에다는 대상과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관객이 스스로 느끼도록 여지를 준 채 기다린다. 정서의 밀도가 높지만 결코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브레히트식 거리두기와도 닮아 있다. 감정을 연출하지 않고 사건을 설명하지 않으며, 관객이 인물과 스스로 관계를 맺도록 하는 방식과도 같다. 정적인 화면 구성, 간결한 대사, 인물 사이에 흐르는 여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미학과 자주 연결된다. 실제로 그는 종종 오즈나 나루세 미키오의 후계자로 언급되곤 하지만, 본인은 이런 평에 일정한 거리를 둔다.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외국의 관객들은 저에게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 등 거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영향을 물어오지만, 정작 저는 맨 먼저 무코다 구니코의 이름을 들게 됩니다.” 2024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은 무코다 구니코의 1979년 원작 드라마를 거의 그대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오랜 시간 품어온 팬심과 존경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아낸 고레에다다운 방식의 헌사다. 늘 말하기보다 기다리는 방식을 택하고, 감정보다 공기를 담는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감독만의 조용한 우주를 구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세계


감독은 작품을 통해 꾸준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관계들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관객의 해석을 유예한 채 열려 있다. 가족 역시 혈연보다 함께한 시간과 공유된 정서로 연결되고, 그 형태도 유연하다. 일본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 해체와 초고령화, 돌봄의 공백이라는 현실과 맞물리며 설득력 있는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늘 그는 감정을 정리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응시한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 잔잔한 대사와 장면은 쉽게 설명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영화 <괴물>(2023)은 교사, 부모, 아이의 시점을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오해와 거리, 정체성과 시선의 문제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매체는 OTT로 옮겨갔지만,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에서도 고레에다는 특유의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미학을 이어간다. 네 자매의 삶을 따라가며 균열과 침묵, 애도의 시간을 조명한다.

사진/ 일본 넷플릭스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떤 주제를 보여주겠다는 결심보다는, 그때그때 마음에 걸리는 것을 이야기로 부풀려 영화로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를 부여하려는 해석에는 조심스럽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한 방향을 향해 있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칸 영화제에서 언급했듯, 고레에다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려고 하지 않아 놓치는 존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는 느리게, 조용하게, 낯설게 응시한다. 그렇게 사라졌다고 믿은 감정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요란하지 않기에 더 깊이 울리고, 한 번 보고 지나치기엔 여운이 길게 남는다.
강력 추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와 책
‘아무도 모른다’ (2004) 12세 소년과 동생들이 엄마에게 버려진 채 살아가는 이야기. 방임의 현실과 아이들의 감정선을 비극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이 영화 한 편만으로도 고레에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 (2008) 사망한 아들을 기리는 부모와 남은 가족들이 매년 같은 날에 모여 보내는 하루. 죽음을 둘러싼 슬픔은 격렬하지 않고, 일상의 대화와 반복 속에 고여 있다. 애도의 방식을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날카롭게 묻는 작품. 오는 5월 21일 국내에서 재개봉할 예정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네 자매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게 되며 이어가는 관계의 변화를 다룬 영화다. 채도가 높고 서정적인 화면 속에 혈연 너머의 유대를 다룬다. 작품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직관적인 감정선이 담긴 영화일 것이다.
에세이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바다출판사 직접 쓴 시나리오 메모이자 영화 에세이. 대본이라기보다 편지에 가까운 문장으로, ‘왜 영화를 찍는가’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품은 사람의 언어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감독의 소탈하고 담백한 고백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에게도 유용하다.

사진/ '바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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