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걸치는 예술작품, 반클리프 아펠의 헤리티지 컬렉션
아트페어 테파프 마스트리흐트에 펼쳐진 찬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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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reat Legacy
주얼리를 예술로 바라보는 가장 우아한 시선. 테파프 마스트리흐트에서 되살아난 반클리프 아펠의 찬란한 유산.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인 1955년에 제작된 튀르쿠아즈 네크리스. 150캐럿에 달하는 터키석과 다이아몬드가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얼리는 몸에 걸치는 유일한 예술작품이다.”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헤리티지 컬렉션 디렉터, 나타샤 바실치코프(Natacha Vassiltchikov)는 12년째 테파프(TEFAF, The European Fine Art Foundation) 마스트리흐트에 참여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뉴욕과 마스트리흐트에서 각각 열리는 테파프는 오늘날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두 도시의 페어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동시대 예술을 조명하는 뉴욕과 달리,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는 고미술과 장식예술, 앤티크 중심의 큐레이션으로 예술의 시간성과 유산을 강조한다.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의 신전과도 같은 무대에서 반클리프 아펠이 헤리티지 컬렉션과 함께 꾸준히 발걸음을 이어온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패션 액세서리라는 관념을 넘어 주얼리를 예술로 감상하게 만드는 시선을 제안하는 것. 그것은 반클리프 아펠이 오랫동안 지켜온 철학이며 테파프라는 무대가 품고 있는 미학적 사유와도 깊이 닿아 있다.
헤리티지(Heritage) 컬렉션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반클리프 아펠이 실제로 제작했던 빈티지 피스로 구성된 특별한 아카이브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피스를 선별해 철저한 복원과 감정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도 착용 가능한 주얼리로 되살린다는 점이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패트리모니(Patrimony) 컬렉션과의 차이다. 모든 피스는 메종의 기준 아래 진본성과 완전성이 보증되며 현재에서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존재한다.
올해 반클리프 아펠은 헤리티지 컬렉션을 통해 ‘시간이 피워낸 예술’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마치 한 점의 예술작품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그 안에서 시간과 역사, 그리고 삶의 감각을 해독한다. 시대정신과 장인의 손길,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삶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주얼리 안에 정제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제, 테파프 마스트리흐트에서 만난 다섯 점의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미학과 시간의 밀도를 감각해보자.

옐로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피워낸 데이지 한 송이. 1964년에 제작된 마거리트 클립은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형태로 반항의 정신을 표현한다.
메이저 피스 클립, 1935년경 아르데코의 질서와 유기적 아름다움의 공존
1930년대는 아르데코의 전성기였다. 기하학과 장식성, 대칭 등 구조적 미학이 강조되던 이 시기에 반클리프 아펠은 그 속에 자연의 유연함을 덧입혔다. 리본의 곡선을 형상화한 이 클립은 메종의 시그너처인 ‘자연의 이상화’를 구현한 대표적인 예다. 꽃의 유연함과 광물의 단단함이 상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은 물질의 본질을 초월한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당시 새롭게 주목받던 플래티넘의 연성과 광휘는 얇고 섬세한 구조를 가능하게 했고, 빛의 반사를 최적화한 바게트 컷은 정제된 고전미를 더했다. 질서 위에 얹힌 감성, 기술을 넘어선 시선. 아름다움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다.
튀르쿠아즈 네크리스, 1955년 풍요의 감각과 고전 미학의 만남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이 뉴룩을 선보인 이후, 풍성한 실루엣과 장식이 다시금 여성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고 오트 쿠튀르는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여성들은 티타임부터 사교 모임, 무도회까지 하루에도 수차례 주얼리를 갈아입으며, 장식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튀르쿠아즈 네크리스는 그런 시대 감각과 18세기 고전 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 중앙에 자리한 7개의 크고 작은 튀르쿠아즈 카보숑은 당시 섬세한 감식안이 선택한 이란산 원석으로, 청명한 하늘빛을 간직하고 있다.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 화환 위에 튀르쿠아즈가 놓이며, 마치 데이지 꽃을 형상화한 듯한 부드러운 입체감을 완성한다. 시간은 터키석에 깊이를 더했고, 그 푸른 결은 세월 속에서 더욱 성숙한 빛을 품게 되었다.

1973년에 등장한 앙주 네크리스에는 동서양의 경계가 허물어지던 시대의 감성이 담겨 있다. 두 개의 브레이슬릿으로 분리할 수 있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마거리트 클립, 1964년 자유와 반항이 피워낸 꽃
1960년대, 앤디 워홀의 팝아트처럼 대담하고 로큰롤처럼 분방한 시대 속에서 ‘플라워 파워’로 상징되는 저항의 정신이 피어났다. 사회는 젊음과 자유를 외쳤고, 예술은 그 목소리를 시각화했다. 마거리트(Marguerite) 클립은 그 시대정신을 꽃 한 송이로 응축시킨 작품이다. 옐로 골드, 로즈 골드, 화이트 골드가 교차한 데이지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듯 각기 다른 곡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생동한다. 중앙의 꽃 수술을 형상화한 7개의 에메랄드는 자연주의적 사유를 완성한다. 플래티넘을 대신한 옐로 골드는 고급 주얼리에 접근성을 넓히고자 했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를 말하는 언어다.
앙주 네크리스, 1973년 문화의 융합과 형태의 자유
비틀스가 인도를 여행하고, 이브 생 로랑이 모로코를 사랑하던 1970년대. 세계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며 융합했고, 메종의 주얼리 역시 그 다양성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앙주(Anjou) 네크리스는 두 개의 브레이슬릿으로 분리 가능한 구조를 통해 주얼리의 형태적 자유를 완성한다. 진주와 다이아몬드, 오픈워크 구조의 메시 골드가 어우러진 이 피스에서는 비브 네크리스(vibh necklace)나 인도 전통 장신구의 잔향이 느껴진다. 형태는 변할 수 있지만 본질은 그대로 남는다. 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유연하게 변주되는 현재이기도 하다.

1994년에 제작된 오르세 브레이슬릿의 미스터리 세팅 루비가 눈길을 끈다. 안쪽까지 촘촘하게 박힌 다이아몬드에서 메종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오르세 브레이슬릿, 1994년 절제의 미학과 정교한 화려함
산업화가 일상을 변화시키고, ‘워킹 우먼’이라는 새로운 여성상이 등장하던 1990년대. 주얼리는 더 이상 파티를 위한 화려한 장식이 아닌, 일상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과장된 화려함보다 절제된 라인과 기능이 중요해진 흐름 속에서, 반클리프 아펠의 정교한 기술력과 미학이 응축된 오르세(Orsay) 브레이슬릿이 탄생했다. 메종의 시그너처 기법인 미스터리 세팅(Mystery Set)은 금속 구조를 시선에서 감추고, 오직 젬스톤만으로 표면을 완성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정교하게 커팅된 루비는 숨겨진 홈 구조에 하나하나 끼워 넣어, 마치 보석으로 직조한 듯한 완벽한 매끄러움을 이룬다.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는 내부까지 섬세하게 세팅되어 절제된 구조 속에서도 쿠튀르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하나의 루비를 커팅하는 데만 약 6시간이 소요되고, 전체 제작에는 수백 시간이 투입된다. 내부에 숨겨진 ‘작업의 문’을 통해 파손된 스톤을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 역시 이 피스가 지닌 장인정신의 증거다.
시간을 입은 예술, 예술이 된 유산
헤리티지 컬렉션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한 점의 회화처럼, 조각처럼, 우리는 이 빛나는 오브제 속에서 영원의 단서를 읽어내야 한다. 한 시대의 감수성과 예술 사조, 장인의 기술,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간 여성들의 삶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주얼리 안에 정제되어 있다. 예술은 더 이상 박물관의 유리장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 일상에서 숨 쉬며,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쓰인다. 시간이 축적된 오브제가 지금의 감각을 자극할 때,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오늘도 착용 가능한 예술, 반클리프 아펠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르데코가 꽃을 피운 시절, 1935년경에 제작된 메이저 피스 클립은 당대 여성에게 입을 수 있는 예술을 선사했다.
리본의 곡선을 형상화한 메이저 피스 클립은 메종의 시그너처인 ‘자연의 이상화’를 구현한 대표적인 예다. 질서 위에 얹힌 감성, 기술을 넘어선 시선. 아름다움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다.
한지연은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런던 통신원이다. 뭐든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시대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여유와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Credit
- 글 / 한지연
- 사진/ 반클리프 아펠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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