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5 가을,겨울 런던 패션 위크 하이라이츠

5일간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프로필 by 윤혜연 2025.03.07

누군가는 과거를 탐색하고, 누군가는 현재의 본질에 집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2025 F/W 런던 패션 위크를 맞이한 10인의 디자이너. 5일간의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S.S. Daley


클래식한 공식을 귀엽게 풀어낼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컬렉션은 그 질문에 선명한 답을 내놓았다. 트렌치코트, 더플코트, 체크무늬 같은 전통적인 브리티시 스타일이 어딘지 색다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신사적 옷차림에 스토키 달리 특유의 위트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카디건에 프린티드 와펠이나 브로치가 달려 있고, 붓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강아지나 여인 페인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몽글몽글한 펠트 소재는 숨겨진 동심을 자극하며 포근한 온기를 전한다. 1920년대 스코틀랜드 컬러리스트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나무 비즈 디테일과 전원 풍경도 큰 볼 거리!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지만 새롭고, 따뜻하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ss_daley



Completedworks


매 시즌 색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여 온 주얼리 브랜드, 컴플리티드웍스. 이번 시즌에는 배우 데비 마자르가 짧은 단막극을 꾸몄다. 홈쇼핑 쇼호스트로 등장한 그는 우아하면서도 직설적인 태도로 관객을 맞이했다. 아무렇지 않게 매대 앞에 놓인 주얼리를 판매하다, 갑자기 독백을 시작한다. "세상에,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예전엔 이렇게 자주 안 갔는데 말이야. 젊었던 1980년대엔 한 달에 두 번만 갔다니까!" 과장된 유머와 향수 어린 회상 속에서 허구와 진실이 뒤엉킨 메시지를 재치 있게 전달했다. 이중적인 주인공의 태도에서 새로운 컬렉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단단한 진주는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며 예상치 못한 변화를 드러내고, 차분한 색감 속에서 선명한 레드 컬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익숙한 틀을 비틀어 낯선 감각을 만들어 내는 컴플리티드웍스의 주얼리는 미묘한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낸다. @completedworks



Richard Quinn


쇼장에 들어서자, 진눈깨비 흩날리는 밤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고요한 런던 거리를 은은하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드라마틱한 실루엣이 등장한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이들은 어디로 떠나는 걸까. 목선과 허리를 따라 대담하게 피어난 장미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쌓인 눈처럼 반짝이는 자수 디테일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별한 순간엔 특별한 옷이 필요하다. 보기만 해도 그날의 공기와 행복했던 감정이 떠오르는 옷은 시간이 지나도 간직하고 싶은 법이다. 일상의 순간마저 특별한 기억으로 바꿔주는 패션은 마법보다 강렬한 힘이 있다. 리처드 퀸은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믿음으로 또 한 번 우리를 설레게 한다. @richardquinn



Sinead Gorey


딱 한 잔만 하고 가려 했지만, 결국 또 실패한 이른 귀가・・・. 시네드 고리의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퇴근 직전까지 이메일을 보내다 KFC에서 허기를 달래고(빈속에 과음은 금물!) 밤을 향해 나서는 여인들. 클래식한 트위드 소재에 더해진 퍼, 대담하게 풀어헤친 셔츠엔 직장인의 의지가 서려 있다. 지갑 대신 활용한 포켓 디테일부터 살결 곳곳에 남겨진 키스 마크까지. 별다른 가방 없이도 완성되는 스타일, 바로 런던의 파티걸이 꿈꾸던 그 룩이다. @sineadgoreylondon



Stefan Cooke


수많은 쇼가 연이어 펼쳐지는 패션위크에서 ‘자이언트 케이크’ 초대장을 받다니, 가뭄에 단비 같은 순간이 아닌가. 스테판 쿡의 디자이너 스테판과 제이크는 이번 시즌, 거창한 런웨이 대신 친밀한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무려 10L의 크림과 잼으로 거대한 아몬드 체리 케이크와 함께! 이들은 이번 시즌 가장 애정하는 룩을 직접 소개했다. 광목에 실크 프린트 조각을 덧댄 팬츠와 한 줄 한 줄 커팅해 유연성을 살린 레더 탱크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형식적인 틀을 벗어난 프레젠테이션에서 ‘런던다운’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냈다. @stefan_cooke



Chet Lo


독창적인 스파이크 니트와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매 시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쳇 로. 이번 컬렉션에서 그는 다시금 자신의 뿌리로 돌아갔다. 중화풍(Chinoiserie)에 스며든 서구적 시선을 되돌아보며 익숙한 이미지를 낯설게 비튼다. 과장된 타이거 패턴, 폭발하듯 찣긴 실루엣 속 용의 형상. 그 틈새로 피어난 작은 꽃들이 거칠고 역동적인 무드와 대조를 이루며 독특한 균형을 만든다. 문화적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흐리는 과정에서 쳇 로 특유의 실험적 감성이 빛을 발한다. @chet__lo



Simone Rocha


브랜드를 론칭한 후 15년간 쉼 없이 달려온 시몬 로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포근한 추억이었다.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바탕으로 한 이번 컬렉션은 순수했던 그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자물쇠와 체인 디테일은 자전거 보관소 뒤에서 오갔던 은밀한 대화와 작은 반항의 순간을 상징하며, 거북이 모티프 클러치와 토끼 인형은 어릴 적 들었던 이솝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모든 요소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볼륨 있는 소매와 리본 장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몬 로샤의 현재를 담고 있으니까.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회귀를 넘어, 지금과 미래를 더욱 단단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여정이다. @simonerocha_



Paolo Carzana


지난 시즌 자택 뒷마당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던 그가 이번엔 더 깊은 이야기가 깃든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작업실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펍, 홀리 타번(The Holy Tarvern). ‘도축장의 날개 없는 용(Dragons Unwinged at the Butcher’s Block)’이라고 명명된 이번 컬렉션은 지난해부터 이어온 ‘희망의 3부작(Trilogy of Hope)’의 마지막 챕터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는 창의적 고찰・・・.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날개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컬렉션 속에 있다. 로그우드, 강황, 매더, 코치닐 등 천연염료로 물들인 색감, 유려하게 흐르거나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레이어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손맛, 정형화된 패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실루엣. 결국, 파올로는 창조적 행위 자체가 희망임을 이야기한다. @paolocarzana



Ashish


우리에겐 언제나 즐거움이 있다. 런웨이에 흩뿌려진 형형색색 풍선과 색종이 조각,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화려한 시퀸 드레스와 유쾌한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 헝클어진 머리에 꽂힌 머리핀과 풍선, 당당한 걸음걸이.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자신감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 그러나 아쉬시의 컬렉션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다.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빛나겠다는 약속.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ashish



Burberry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순간, 다니엘 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갔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이번 컬렉션은 버버리의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클래식과 모던함을 절묘하게 공존시켰다. 촘촘한 브로케이드와 깊이 있는 색감, 깃털과 퍼의 섬세한 터치에는 영국 전원의 우아함이 깃들었고, 구조적 실루엣과 대담한 볼륨은 도시적 세련미를 더했다. 트렌치코트는 새롭게 재해석됐으며, 울과 가죽, 시어링을 조합한 아우터는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아우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더욱 견고한 버버리.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우아함을 선언한다. @burberry


Credit

  • 에디터 윤혜연
  • 글 한지연(런던 통신원)
  • 사진 각 브랜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