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한 해의 끝과 시작, 시인 박참새가 바라본 그 사이에 대하여
단어와 단어 사이 잠시 숨을 고르고 꼭꼭 씹어 삼키듯 반복해서 읽는다. 새해는, 시작은 거창한 무엇이었다가 늘 우리 곁에 있던 매일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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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듬고 (사이) 먼 곳에 와 있어 (사이) 이 삶을 (사이)
사랑해서가 아니고 (사이) 어쨌든 선택이라 (사이) 매일 밥을
(사이) 해 먹고 (사이) 목적 없이 걷고 있어 (사이)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면서 사이 (사이) 멈칫 (멈춤) 하게 되지만 (사이) 여기서는
어차피 (사이) 사이마다 길을 잃는 일이 자연 (사이) 스럽고 나는
(사이) 조금도 멈추지 않고 (사이) 매일 조금씩 앞으로 (사이)
나아가지만 결국 (사이) 같은 곳으로 돌아올 뿐이다 (사이) 나에겐
두 번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사이) 이것은 물리적 심리적 가시적
공백이 필요할 때 마구잡이로 삽입되는 지문의 한 종류이다
이것은 일시에 정지라고 생각된다 만약 내가 객석에 앉아
있었더라면 사고였으리라 장담하며 아무도 모르게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무엇이든 좋으니 어서 빠르게 재개되길 두 손 모아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객석이 아니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이다 빠르게 가도 언제나 틀려 있게 되는 곳이다
(잠시) 말해주면 좋았을 것을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사이 배우는
다시금 스스로를 가다듬고 (사이) 내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사이) 텅 빈 무대를 상상한다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쓰였다 지워졌을 그 여백을 상상한다 나는 고민 끝에
시작한다
사이.
pause.
“(사이)/(pause)” 희곡에서 사용되는 지시문의 한 종류입니다. 아일랜드 출생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극을 쓸 때나 연출할 때, 잠시 잠깐의 공백과 여백을 위한 지시문이 딱히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비교적 최근에 고안된 이 장치가 왜인지 마음을 잘 흐트러트립니다. 좋은 방식으로요. 객석에서 무대를 볼 때마다, 혹은 희곡을 읽을 때마다, 이 “(사이)”를 마주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몸의 모든 신호를 다시 가다듬고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극도, 제 몸도 (사이)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다시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이 (사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도요.
Credit
- 글/박참새
- 일러스트레이터/ 최산호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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