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어딘가 익숙한데?" 다시 만나니 반가운 복각 워치&주얼리

할머니 보석함 샅샅히 뒤져볼 때 ​( ͡° ͜ʖ ͡°)

프로필 by 윤혜연 2024.12.13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트리뷰트 모노페이스’. 브레게 ‘레인 드 네이플 8918’. 반클리프 아펠 ‘로즈 드 노엘’ 이어링과 펜던트.
스켈레톤 디자인으로 무브먼트를 전면에 자랑하고, 전형적 핸즈 대신 꽃잎이나 캐릭터 모티프가 눈금을 가리킨다. 3D 렌더링 기술을 통해 실제 자연경관을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고 섬세하게 백케이스에 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혁신적인 기술력과 새로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 하이주얼리 분야가 보란 듯이 옛것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할 때도 있다. 과거에 출시했던 제품을 원형에 가깝게 다시 만들어내는 ‘복각’이 그 예다. 과거로의 회귀가 퇴화를 의미하는 건 아닐지 걱정할 필요 없다. 다시 만나 반가운 외관에 반해 소재와 내부 컴플리케이션은 한껏 진화했으니.
복각 피스의 인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와 브랜드가 추구하는 뉘앙스가 일맥상통해서다. 과거, 그러니까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 한 브랜드 관계자는 “시간을 초월한 고전적 디자인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며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고객들은 꾸준히 복각 제품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고객 입장에서 복각 피스는 미래에도 꾸준히 판매되고 인기가 보장된 만큼 후손에게 대물려주기에 제격이고, 그렇기에 투자 가치 또한 충분하다. 한편 메종 입장에서는 이미 흥행한 전적을 가진 아이템이 실패의 부담을 덜어줄 터다. 또 다른 브랜드 관계자는 “브랜드 정체성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복각 모델만 한 것이 없다”며 “이는 한시적 트렌드가 아니다. 다수의 메종이 지속해서 출시해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성 있는 메종은 이미 2000년대에 접어들며 복각 아이템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내놓기 시작했었다. 젠더리스 트렌드에 따라 케이스 사이즈를 줄이거나 과감한 컬러를 도입하는 등 디자인을 변주했고, 앞서 언급했듯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전형적인 방식이다.
올해는 브레게 ‘레인 드 네이플 8918’(1812년 제품), 랑에 운트 죄네 ‘랑에 1’(1994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트리뷰트 모노페이스’(1931년), 오메가 ‘퍼스트 오메가 인 스페이스’(1957년) 타임피스가 과거 아카이브에서 외관을 변형해 진화했다. 특히 까르띠에는 모노 푸셔로 작동하는 크로노그래프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한 ‘똑뛰’(1912년)를 올해 프리베로 재출시했다. 주얼리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원석, 에나멜 컬러, 센터 모티프 등을 바꿔 극소량 피스를 라인업에 추가하는 파베르제 ‘에그’(1885년)는 올해 문어 장식과 그린 컬러를 주인공으로 했고, 불가리 ‘카보숑’(1950년대) 컬렉션은 지난해 처음 복각해 올해는 다이아몬드를 더한 버전으로 추가 출시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링·브레이슬릿을 스퀘어 디자인으로 리뉴얼해 화제 몰이 중인 까르띠에 ‘트리니티’ 컬렉션도 그 예다.

오메가 ‘퍼스트 오메가 인 스페이스’. 피아제 ‘폴로 79’. 까르띠에 ‘트리니티 쿠션 쉐입’ 링. 오데마 피게 ‘[리]마스터02’.
수십 년 만에 혜성처럼 등장한 복각 아이템도 있다. 피아제는 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아 1979년에 데뷔한 오리지널 ‘폴로’ 타임피스를 45년 만에 현대적으로 재현한 모델을 공개했다. 역사적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제품명에 연도를 넣어 ‘폴로 79’로 명명했다. 이는 2016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출시했던 폴로 컬렉션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외장 소재로 스틸을 전혀 쓰지 않은 것. 케이스 일체형으로 구성한 브레이슬릿까지 전체가 18K 옐로 골드로 이뤄졌다. 오리지널과 달라진 점은 38mm로 살짝 커진 케이스와 무브먼트. 과거엔 쿼츠를 탑재한 데 반해 현재는 인하우스 오토매틱 칼리버를 장착했다. 특히 당대 칼리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얇은 것으로 명성을 얻은 만큼 폴로 79의 칼리버 두께 또한 고작 2.35mm에 불과하다. 또 오데마 피게는 올해 메종 역사상 두 번째로 복각 워치 ‘[리]마스터02’를 출시했다. 1960년 브루탈리즘(1950년대 영국에서 형성된 비정하고 거친 건축 조형 미학)에 영감받아 탄생한 비대칭 모델 ‘5159BA’가 모티프다. 오리지널은 18K 옐로 골드 케이스가 가로 기준 27.5mm 사이즈였던 데 반해, [리]마스터02는 18K 샌드 골드 합금 소재이며 현대 트렌드에 맞춰 41mm 사이즈로 키웠다. 한층 진화한 무브먼트 또한 괄목할 만하다. 메종이 2022년에 첫선을 보인 오토매틱 칼리버 7121을 재구성한 극도로 얇은 오토매틱 칼리버 7129를 탑재한 것. 단 2.8mm 두께의 얇은 무브먼트 덕에 배럴 사이즈가 커지는 등 구조 변화가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게 해 최대 52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자랑한다. 주얼리 분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반클리프 아펠이 1970년에 선보인 ‘로즈 드 노엘’ 컬렉션을 네크리스와 이어링으로 구현한 것. 코럴이었던 오리지널 모델에 반해 올해 출시한 버전은 머더오브펄, 튀르쿠아즈, 라피스라줄리 등 다양하다. 한겨울에 피어나는 꽃이 지닌 생명력을 예찬, 카보숑 컷 스톤으로 꽃잎 6개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암술 내부에는 다이아몬드 세 개가 은은한 광채를 내뿜는다.
꼭 새로운 것을 탐미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명작이 현대적 해석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투자 가치를 담보하는 아이템으로까지 진화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기능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방증이니까.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Credit

  • 사진/ © Audemars Piguet, Breguet, Cartier, Jaeger-Lecoultre, Omega, Piaget, Van Cleef & Arpel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