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어린 시절에게 보내는 찬사, 보테가 베네타 2025 여름 컬렉션

“당신 안의 어린아이는 무엇을 원하나요?” 마티유 블라지는 보테가 베네타 2025 여름 컬렉션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프로필 by 김서영 2024.10.24
아직도 생생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던 보테가 베네타 2025 여름 컬렉션 현장. 황금빛 햇살을 연상시키는 조명 아래, 60개의 동물 형태 의자가 줄지어 있는 환상적인 광경을 본 이들은 쇼장 입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빡빡한 밀라노 패션위크 스케줄의 끄트머리, 지친 몸으로 저녁 8시에 마주한 보테가 베네타 2025 여름 컬렉션 쇼장은 어린 시절 읽었던 한 편의 동화처럼 마음을 따스히 달래줬다. 돌이켜보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쇼 티저부터 심상치 않았다. 클로즈업한 모델들 얼굴 위로 드리운 ‘토끼’ 모양의 손 그림자라니? 보테가 베네타에서 토끼라니? 머릿속 연이은 궁금증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마티유 블라지는 우리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시절로 초대한 것이다. 크고 작은 동물 인형들이 마구 뒹굴고 있는 머나먼 기억 속 어릴 적 방 안으로.
이번 컬렉션의 테마는 ‘WOW!; 경이로움’이다. 문자 그대로 우리 모두를 ‘와우’하게 만든 동물 의자는 마티유 블라지가 특별히 의뢰해 제작했다. 이름하여 ‘디 아크(The Ark)’. 자노타 사코(Zanotta Sacco) 체어에서 영감을 얻은 리미티드 에디션 라운지 체어 컬렉션으로, 사코 체어는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의 초기 가방 특징인 부드러움과 비형식주의, 유연함, 유동성 등의 요소를 동일하게 담고 있기에 더 뜻깊다.
물론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어린아이의 창의성과 경이로움에서 영감을 얻은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어른 아이’를 본격적으로 표현했다. 그 시작은 격식을 갖춘 파워 드레싱! 런웨이에는 커리어 우먼과 비즈니스 맨이 입을 것 같은 포멀한 룩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했다. 눈에 띄는 점은 단정하면서도 흐르는 듯 유연한 실루엣. 보디라인을 감싸는 드레이프 디테일, 구겨지고 해체된 패브릭, 입체적으로 울렁이는 러플, 프린지 장식 등 통상적인 오피스 웨어에서 슬쩍 발을 뺀 마티유 블라지는 패션적 유희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특유의 세련된 미학과 어린 시절의 유쾌한 에너지까지 더해지니 평범한 비즈니스 룩도 훨씬 자유로워졌다.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의 특기인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실험 역시 돋보였다. 클래식 사토리얼을 재해석해 가죽 아이템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선보인 올-레더 파예트 이브닝드레스는 쿠튀르 피스를 연상케 했고, 트로피컬 웨이트 메리노 울은 스톤워싱 데님을 모방한 자카드 소재를 사용해 완벽하게 재단했다.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그런지 플란넬 셔츠는 형태가 잡힌 두꺼운 조각 면으로 패턴을 표현하고, 스트라이프는 질감을 강조하기 위해 구겨진 형태로 변형시켰다. 비즈니스 헤링본 패턴은 패브릭을 현미경으로 들여본 양 미세한 프린트로, 핀스트라이프는 오버사이즈 실루엣으로 과장해 위트를 더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하지만 가까이 보면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쇼 시팅에 반영한 귀여운 동물 모티프는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부활과 행운을 상징하는 토끼는 라펠 장식부터 가죽 티셔츠, 플러피 뮬까지 다양하게 변형되었고, 변화를 상징하는 개구리 브로치는 신발의 굽, 셔츠 위 등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어린 시절을 대한 마티유의 뜨거운 향수는 액세서리 컬렉션에서 절정에 달한다. 일회용 장바구니엔 장인들의 정교한 제작 기법으로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더하고, 구겨진 종이 백과 꽃송이, 심지어 꽃다발 포장지까지 레더 소재로 선보였다. 인형의 집을 연상시키는 핑크 컬러 클러치와 책가방을 닮은 빅 사이즈 백팩은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아티스틱한 플라워 장식은 다양한 소재와 크기로 컬렉션 전반에 등장해 아름답게 성장한 청년의 봄을 상징하는 듯했다. 물론 그 바탕에는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담아낸 섬세한 레더 소재의 백과 슈즈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존에 선보였던 안디아모 백은 톱 핸들을 추가해 실용성을 높였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해 새롭게 선보인 브리콜라주 백은 룩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주며 컬렉션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쇼의 피날레에 이르자 마치 하나의 연극을 관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런웨이에 등장한 각각의 모델들에게서 일상 속 캐릭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이탈리아 기업가, 딸의 책가방을 들고 등교시키는 비즈니스 맨,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밀라노 여인, 부모님의 옷을 몰래 입은 소녀와 소년. 모델을 캐릭터로 동기화하니 마티유 블라지가 언급한 ‘옷을 입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 그 과정에서 발견한 성장에 대한 경외감’이란 문구가 더욱 와닿았다. “어린 시절, 우리의 일상은 모험의 연속이었죠. 언제나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설렘을 느꼈고, 통상적인 관습이나 기대에 얽매이지도 않았어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모든 순간의 드레스업을 완벽한 컬렉션으로 선보인 마티유 블라지. 학교 운동장을 뛰노는 어린아이처럼 런웨이를 달리며 천진난만하게 인사를 전하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박수는 나의 순수한 어린 시절에 보내는 찬사일지도 모르겠다.

Credit

  • 사진/ © Bottega Veneta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