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동네 터줏대감이 된 서점들의 사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우리 동네 서점 이야기.

프로필 by 고영진 2024.10.05
좋은책많은데
1백15평 규모에 보유하고 있는 책만 30만 권, 이 중 절반 이상이 만화책인 곳. 상봉동에서 시작한 만화대여점이 지금의 모습을 하기까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김현재 대표에 의하면 그사이 옛날 만화대여점이나 만화방은 줄줄이 폐업을 했고, 좋은책많은데는 우리나라에서 국내외 만화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단골들 얘기를 들어보면요. 다른 건 몰라도 만화는 꼭 종이책으로 봐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야 읽는 맛이 난대요. 근데 만화는 이제 새 책을 사고 싶어도 절판된 게 많고 대여할 수 있는 곳도 없잖아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도 다 그래서예요.” 장르는 물론, 좌에서 우 방향으로 가나다 순 정렬이 되어 있는 책장이 증거다. 책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덧대어 놓은 나무 판자는 주인이 손수 자르고 물로 닦아 말린 뒤 쓰는 것. 보통의 애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태원북스
월요일부터 일요일, 아침 11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이태원북스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입구부터 가득 메운 책을 모두 수기로 관리하고 있어서다. 책의 80% 이상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 원서. 반짝반짝한 새 책과 장르별 분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지만, 최미라 대표에겐 직접 종이를 만지고 휘리릭 넘겨도 보며 책을 고르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있다. “서점은 문화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표 끊고 입장해야 하는 곳도 아닌데 여기서 책 몇 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문화와 만날 수 있잖아요. 멀리 나갈 것 없이 영감과 문화적 성취를 얻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우리가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도 봐요.” 1974년부터 이태원에서 서점을 운영해온 부모님을 보며 한 생각이자 일종의 사명감이다.

상암누리문고
방송 3사가 밀집한 상암동 인근의 지하상가. 식당과 카페 사이로 정직한 간판을 내건 서점이 있다. “여긴 그야말로 동네 서점이죠. 직장인보다도 학생들이 훨씬 많이 찾아요. 근처에 초·중·고등학교가 다 있거든요. 자연스레 문제지나 참고서가 대부분인 서점이 됐는데, 내 생각엔 이런 게 동네 서점의 맛인 것 같아요. 우리는 손님들이 원하는 걸 따라가게 돼 있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 동네 서점에서도 하루 판매량 5백 부, 일 매출 3백만원 이상의 기록이 가능했던 황금기가 있었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여기에 전자책이라는 선택지까지 더해진 지금 장기림 대표는 처음으로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능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말도 함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오해하고, 사흘과 나흘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대가 한 권이라도 책을 가까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뿐이다. “동네서점 이용은 지역경제와 문화를 살립니다.” 서점 입구 색이 바랜 현수막에 쓰인 문장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공씨책방
좋은 것을 발견하면 들여오고 싶은 마음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구한말 대한제국 시대에 출간된 책부터 1백 년 이상 된 한적(한지로 된 책), 각종 영어 원서와 LP까지. 공씨책방에는 별의별 물건이 다 있다. 더 이상 고서적을 구하러 오는 국문과 교수나 대학생, 단골 문인은 없다. 대신 인증샷을 위한 방문에 그치는 손님이 늘었다고. “왕왕 오는 단골들은 아직 있는데 특이하게 옛날 잡지들을 많이 찾더라고요. 몇 년도 몇 월호. 원하는 것도 구체적이야. 아무래도 책이 읽고 싶어서, 필요해서 사는 것보다 추억을 회상하려는 의도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냥 갖고 있으려는 거죠. 그런 거 보면 우리 같은 서점이 동네에 하나쯤은 계속 있어줘야하지 않겠나, 싶어요.” 때로는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곳들이 있다. 주변 상가가 업종을 바꾸며 몇 번씩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 같은.

Credit

  • 사진/ 하태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