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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이 뭐길래?

책 <이능의 발견>에서 찾은, 성공을 향한 새로운 관점

프로필 by 고영진 2024.06.11
재능의 정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올바른 상황에 놓인 특성을 재능이라 부르고, 잘못된 상황에 놓인 특성을 단점이라고 부를 뿐이다.
그러니까, 성공을 보장하는 타고난 재능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환경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노력의 한계를 느낄 때, 나는 늘 버릇처럼 ‘재능’을 소환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취준생 시절엔 무턱대고 재능에 기댔다. 좋아하는 일이 곧 나의 타고난 재능과 이어져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첫 회사에 입사 후 세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다를 바는 없었다. 조직 안에서 내 역량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 땐 이 업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단정 지었다. 일종의 회피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을 때,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라는 말은 꽤 그럴듯한 이유가 됐으니까. 더 노력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자신이 없을 땐 내가 손쓸 수 없는 영역의 무언가에게 넘겨버리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책 <이능의 발견>은 나와 같은, 재능에 맹목적으로 기대어온 회피형 인간들을 정확히 저격한다. “우리는 올바른 상황에 놓인 특성을 재능이라 부르고, 잘못된 상황에 놓인 특성을 단점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재능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 칼럼니스트이자 <이능의 발견>을 쓴 작가 스즈키 유의 말이다. 그는 성공을 보장하는 타고난 재능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못 박아버린다. 그에 따르면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 역시 재능이 될 수 없다. 잘한다는 평가, 좋아한다는 감정은 주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내가 속한 상황과 환경에서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능(異能)이다. 재능이 절대적이라면 이능은 상대적이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상대적으로 편중된 능력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다.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역량일지라도 내가 처한 환경에서 우위를 점하는 능력이라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인정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소심함, 산만함, 예술성, 인내력, 리더십 등 그 성질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한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속성은 이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의 저자는 더 나아가 장애까지도 이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었다. 그의 세련된 디자인 감각과 발상에 난독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난독증을 앓는 사람들은 일의 전체를 순간적으로 꿰뚫어보거나,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대목에서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주 전공은 신문방송학이었지만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 삼았던 그때의 나는 어쩌면 이능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조별 과제 밭이었던 신문방송학 수업에서 나의 내향적인 성격은 늘 걸림돌이었다. 멀티태스킹과는 거리가 먼, 한 번에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드는 성향 역시도. 반면 팀 프로젝트보다 개인 과제의 비중이 압도적이고, 한 가지 과제를 두고 몇 날 며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일이 많았던 컴퓨터공학 수업에서는 그 모든 것이 인정받아 마땅한 능력이 됐다. 그 덕에 ‘나에게 이과적 재능이 있나?’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커리큘럼이 심화될수록 컴퓨터공학을 주 전공 삼은 학생들과의 성적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것을 보며 이쪽도 내 길은 아니라고 단념했다. 내가 가진 고유한 성질은 언제,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개선해야 할 단점이 되기도, 높이 살 능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이능을 알아차린다는 건 리더가 구성원의 역량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듯 나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과 마찬가지 아닐까. 이 책은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성공을 논할 때마다 언급하는 ‘재능’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천부적인 것을 뜻하는 재능 대신 환경적 요소를 강조한 이능을 통해 능력을 둘러싼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자주 재능이라는 말 뒤에 숨어버렸나,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성공을 판가름 짓는 기준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인정받는 능력 또한 수시로 바뀐다. 전에 없던 경로로 각종 플랫폼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본업 외에도 서너 개의 사이드 잡을 갖고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가 도처에 널린 시대. 오랜 시간 정답이라고 여겨져온 삶의 방식을 과감히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그 시작은 이능을 발견하는 것부터일 테다. 인생은 가장 뛰어난 한 사람만 성공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지금 일하는 곳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훌륭한 성과와 인정으로 직결될 수 있는 능력치를 발견해보기로 했다. 이능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한층 자신감이 생긴다.

Credit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