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팝콘 브레인에서 벗어나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잔잔한 불행을 끊어내고 싶어 도파민 단식에 도전했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4.04
‘이것만 보고 씻어야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우면 10분이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는 시간의 방에 갇힌다. 말이 숏폼이지 보다 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한 릴스 감옥은 웬만한 의지력으로 탈출하기 힘들다. 숏폼에서 빠져나와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와 건조대에 널어야 할 세탁기 속 젖은 빨래, 답장해야 하는 많은 이메일을 마주할 때의 절망감이란. <힘든 일을 먼저 하라>의 저자 스콧 앨런의 말처럼 미루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잔잔하게 불행하다. 내 경우, 아니 요즘 많은 현대인의 경우 숏폼이 우리를 잔잔한 불행 속으로 밀어넣는다. 책 <도파민네이션>을 쓴 애나 렘키에 따르면 스마트폰 중독을 비롯한 행동 중독은 일종의 뇌 손상을 유발한다. 무언가에 중독된 행동을 해 쾌락을 느낄 때마다 엄청난 도파민이 분비되고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뇌는 도파민을 억제하려 한다. 자연히 쾌락, 기쁨에 관한 기본값이 높아지게 되고 이제 뇌는 엄청난 쾌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정상적인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 자극을 찾게 된다. 디지털 기기의 자극에 노출된 뇌가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의 뇌가 점점 팝콘 브레인이 되는 것이다. 팝콘 브레인은 팝콘이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면 ‘타닥’ 하고 튀는 것처럼 뇌가 충동적이고 강력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것을 뜻한다. 디지털 마약으로도 불리는 스마트폰의 강렬한 콘텐츠에 익숙해지다 보면 현실의 소소한 자극에는 무감각해지게 된다고. 결국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의 뇌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던 소설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영화 한 편을 집중해서 감상하지 못하는 것도 충동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낳은 결과였다.
따지고 보면 그리 해야 할 일이 많지도 않은데 늘 분주하고 머릿속이 늘 혼란스러웠던 것이 다 숏폼 중독 때문이었다니. 잔잔한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중독의 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단 도파민 결핍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도파민 단식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다. 쾌락과 고통의 시소를 균형 있게 되돌리는 데는 4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4주 동안 숏폼을 끊어보기로 했다. 습관적으로 보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스레드 모두! 장애물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니 우선 구독하고 있던 유튜브 프리미엄을 취소했다. 인스타그램, 스레드 앱도 화면에서 지웠다.(탈퇴까지는 하지 못했다.) 멍하니 누워 끊임없이 보던 인스타그램 스토리, 릴스를 못 보니 답답함과 조급증이 몰려왔다. 유튜브는 프리미엄 요금제 해지를 한 후 봐야 하는 광고 때문에 접속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쾌락을 선택해 빠르게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대신 고통을 먼저 직면하는 것이 효능이 있다고 해 침대에 누워 있는 대신 헬스장으로 가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유산소를 할 때조차 힘듦을 잊고 싶어 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리곤 했다. 대신 오랫동안 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이북리더기를 가져가 강제로 독서를 했다. 그 재미난 릴스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절망감이 몰려왔지만 독서는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유희였기에 나도 모르는 새 활자에 집중하게 됐다. 운동이 끝난 후 #오운완 셀카를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려고 각을 잡다 ‘아 맞다, 나 인스타그램 하면 안 되지’ 하고 카메라를 내렸다. 나 정도면 결코 디지털 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인지하고 나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이 함께하고 있었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습관이 개선되긴 했지만 솔직히 첫 1주간은 인스타그램 앱을 깔았다 지웠다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숏폼을 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어 절망하며 누워 있다 최근 목표한 체지방 감량에 성공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달달한 음료가 당길 땐 제로 칼로리 음료를 마시고 과자가 먹고 싶어 미치겠을 땐 오징어를 먹거나 껌을 씹었다. 오랜 세월 중독된 무언가를 단번에 끊긴 어렵다. 단 음료에서 제로 음료로, 과자에서 껌으로 갈아타다 보니 이제는 전처럼 달달한 음료나 과자가 당기지 않는다. 숏폼을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을 땐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영화를 봤다. 예전 같으면 지루하다고 끄고 다시 숏폼을 봤을 텐데 대체재가 없다고 생각하니 몰입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처럼 영화의 긴 호흡이 익숙해지자 나중에 읽으려고 미뤄두었던 벽돌책을 집어 들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의 책도 읽어나가다 보니 오랜만에 뇌를 쓰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 외에 심심할 때 할 만한 게임 같은 요소가 필요했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두뇌 운동을 위한 책이 꽤나 많았다. 미로찾기, 틀린그림찾기, 스도쿠, 네모 로직, 추리, 가로세로 낱말퍼즐 등…. 몇 권을 사 들고 다니며 카페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열고 싶어질 때마다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니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습관이 고쳐졌다. 물론 지금도 보긴 본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할 일을 미루면서 하염없이 릴스에 빠져 있진 않다. 몇 번 넘겨 보다가 어렵지 않게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하지 않기. “경쟁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수많은 시험과 자격증들, 과도한 업무량과 빼곡한 일정들, 그러면서도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학습효율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늘 피곤한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주의력을 높이고 불안과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도파민을 입에 털어 넣는다.” <도파민네이션> 추천사를 쓴 뇌과학자 정재승의 말처럼 현대인의 숏폼 중독은 어쩌면 스스로를 밀어붙인 탓도 있진 않을까.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논지처럼 실리콘 밸리의 거대 기업들이 우리를 소셜네트워크에 중독될 수밖에 없도록 거대한 세계를 설계하기도 했겠지만 열심히 달리느라 스스로를 보듬을 만한 취미 거리를 발굴하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공허한 마음이 공허한 뇌를 만들고 또 다시 마음을 더 허기지게 만드는 굴레에 스스로를 방치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파민 단식 기간에 본 영화 중 <파이트 클럽>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나중에는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가 소유한 것들에게 휘둘리지 않게끔 때로는 고통을 먼저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희성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