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팝콘 브레인에서 벗어나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잔잔한 불행을 끊어내고 싶어 도파민 단식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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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그리 해야 할 일이 많지도 않은데 늘 분주하고 머릿속이 늘 혼란스러웠던 것이 다 숏폼 중독 때문이었다니. 잔잔한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중독의 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단 도파민 결핍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도파민 단식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다. 쾌락과 고통의 시소를 균형 있게 되돌리는 데는 4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4주 동안 숏폼을 끊어보기로 했다. 습관적으로 보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스레드 모두! 장애물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니 우선 구독하고 있던 유튜브 프리미엄을 취소했다. 인스타그램, 스레드 앱도 화면에서 지웠다.(탈퇴까지는 하지 못했다.) 멍하니 누워 끊임없이 보던 인스타그램 스토리, 릴스를 못 보니 답답함과 조급증이 몰려왔다. 유튜브는 프리미엄 요금제 해지를 한 후 봐야 하는 광고 때문에 접속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쾌락을 선택해 빠르게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대신 고통을 먼저 직면하는 것이 효능이 있다고 해 침대에 누워 있는 대신 헬스장으로 가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유산소를 할 때조차 힘듦을 잊고 싶어 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리곤 했다. 대신 오랫동안 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이북리더기를 가져가 강제로 독서를 했다. 그 재미난 릴스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절망감이 몰려왔지만 독서는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유희였기에 나도 모르는 새 활자에 집중하게 됐다. 운동이 끝난 후 #오운완 셀카를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려고 각을 잡다 ‘아 맞다, 나 인스타그램 하면 안 되지’ 하고 카메라를 내렸다. 나 정도면 결코 디지털 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인지하고 나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이 함께하고 있었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습관이 개선되긴 했지만 솔직히 첫 1주간은 인스타그램 앱을 깔았다 지웠다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숏폼을 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어 절망하며 누워 있다 최근 목표한 체지방 감량에 성공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달달한 음료가 당길 땐 제로 칼로리 음료를 마시고 과자가 먹고 싶어 미치겠을 땐 오징어를 먹거나 껌을 씹었다. 오랜 세월 중독된 무언가를 단번에 끊긴 어렵다. 단 음료에서 제로 음료로, 과자에서 껌으로 갈아타다 보니 이제는 전처럼 달달한 음료나 과자가 당기지 않는다. 숏폼을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을 땐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영화를 봤다. 예전 같으면 지루하다고 끄고 다시 숏폼을 봤을 텐데 대체재가 없다고 생각하니 몰입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처럼 영화의 긴 호흡이 익숙해지자 나중에 읽으려고 미뤄두었던 벽돌책을 집어 들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의 책도 읽어나가다 보니 오랜만에 뇌를 쓰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 외에 심심할 때 할 만한 게임 같은 요소가 필요했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두뇌 운동을 위한 책이 꽤나 많았다. 미로찾기, 틀린그림찾기, 스도쿠, 네모 로직, 추리, 가로세로 낱말퍼즐 등…. 몇 권을 사 들고 다니며 카페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열고 싶어질 때마다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니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습관이 고쳐졌다. 물론 지금도 보긴 본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할 일을 미루면서 하염없이 릴스에 빠져 있진 않다. 몇 번 넘겨 보다가 어렵지 않게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하지 않기. “경쟁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수많은 시험과 자격증들, 과도한 업무량과 빼곡한 일정들, 그러면서도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학습효율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늘 피곤한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주의력을 높이고 불안과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도파민을 입에 털어 넣는다.” <도파민네이션> 추천사를 쓴 뇌과학자 정재승의 말처럼 현대인의 숏폼 중독은 어쩌면 스스로를 밀어붙인 탓도 있진 않을까.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논지처럼 실리콘 밸리의 거대 기업들이 우리를 소셜네트워크에 중독될 수밖에 없도록 거대한 세계를 설계하기도 했겠지만 열심히 달리느라 스스로를 보듬을 만한 취미 거리를 발굴하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공허한 마음이 공허한 뇌를 만들고 또 다시 마음을 더 허기지게 만드는 굴레에 스스로를 방치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파민 단식 기간에 본 영화 중 <파이트 클럽>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나중에는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가 소유한 것들에게 휘둘리지 않게끔 때로는 고통을 먼저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희성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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