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보테가 베네타의 2024 F/W 숨은 이야기

‘일상’이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만들 줄 아는 남자, 보테가 베네타의 마티유 블라지.

프로필 by 윤혜영 2024.03.20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역, 그곳에서 본 선인장에 대해 생각했어요. 선인장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회복성을 보여주죠. 불타버린 메마른 땅에서 피어난 선인장 꽃을 통해 성찰의 의미와 회복, 재생, 그리고 희망을 담은 쇼를 만들고 싶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듯, 2024 F/W 쇼장에는 일본 전통 기법을 활용해 만든 불에 그을린 바닥과 거대한 무라노 유리 선인장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메마른 땅에 피어난 선인장. 쉽게 말해 온갖 갈등으로 얼룩진 현실 세계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보낸 것. 게스트들이 앉은 박스 모양 스툴도 같은 맥락이다. 바닥과 동일한 소재로 이루어진 3백50개의 스툴은 모두 르 코르뷔지에의 LC14 카바농(Cabanon) 스페셜 에디션으로, 보테가 베네타와 카시나의 세 번째 협업 작품이다. 마티유가 덧붙인다. “위스키 상자였던 걸 르 코르뷔지에가 실용적인 물건으로 재탄생시켰고, 곧 전설이 되었죠.”
쇼 역시 ‘재생의 과정’에 집중했다. 기본적인 요소에 충실하되 형태를 변화시키고 소재, 패턴, 컬러를 통해 각색함으로써 일상의 옷이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 것. 즉, 마티유의 전매특허인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컬렉션’을 만드는 능력은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빛났다. 키워드는 ‘일상의 모뉴멘탈리즘(Monumentalism, 기념비주의)’. 둥근 입체감을 살린 블랙 코트를 시작으로 오버사이즈 셔츠, 가죽 트렌치코트, 니트 풀오버, 트라우저 등 일상을 위한 룩이 줄지어 등장했는데, 자세히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테크닉이 들어가 있었다. 레드 컬러 플리츠 톱과 스커트는 모델이 걸을 때마다 블랙으로 변했고, 갑옷처럼 각 잡힌 니트 풀오버, 여권 스탬프가 프린트된 원단, 사포로 문지른 듯한 질감의 피날레 드레스가 바로 그랬다. 모조리 소장하고픈 새로운 백 컬렉션 리베르타(Liberta), 플레인 안디아모(Plane Andiamo), 홉(Hop), 까바(Cabat)는 조용히 룩과 어우러졌고 바람에 날린 듯 한쪽만 뒤로 젖혀진 넥타이는 유머러스한 요소가 되었다. 또 뱀, 불꽃, 꽃 등 부활을 상징하는 요소도 곳곳에 배치되었다. 불의 움직임을 표현한 플리츠 세트업부터 추상적인 플라워 프린트가 새겨진 심플한 셔츠, 잘게 레이저 커팅해 ‘불모의 꽃’을 표현한 드레스, 폭포가 흐르는 듯 행커치프가 달린 스커트 그리고 뱀을 모티프로 한 벨트와 에나멜 소재의 스테이트먼트 귀고리를 눈여겨볼 것. 카본 블랙(Carbon Black), 번트 오렌지(Burnt Orange), 폰단트(Fondant), 다크 탠(Dark Tan), 드랍 올리브(Drab Olive), 애시 그레이, 버건디, 레드, 그리고 화이트. 불과 밤에 관련된 컬러 팔레트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가끔 낮의 햇살, 푸른 하늘 그리고 옅은 태양빛을 닮은 컬러는 침울한 세상에도 빛과 희망이 존재함을 표현한다. 쇼를 끝낸 마티유 블라지가 말했다. “우리는 계속 같은 뉴스를 듣고 있어요. 지금은 기쁨을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부활이라는 개념은 아름다워요. 불타는 세상 속에서도 옷을 입는 단순한 행위가 가장 인간다운 것이에요.”

Credit

  • 사진/ © Bottega Veneta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