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마르지엘라는 왜 흰색을 선택했을까?

'마르지엘라' 하면 떠오르는 흰색, 그 이유가 궁금하다.

프로필 by 홍준 2024.01.25
사진/ @oldmartinmargi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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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실험실 가운, 4개의 스티치, 페이스 마스크, 타비 부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는 그 어떠한 브랜드보다 더 명료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이다. 그 중에서도 메종 마르지엘라의 중요한 키컬러인 ‘흰색’이 주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확고하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하우스의 공간, 흰색 실험실 가운을 입은 직원들, 런웨이 속 흰색 피스 등 마르지엘라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에는 흰색이 사용된다. 여기서 아주 원초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처음 그들이 흰색을 사용한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증에 대해 알아보자.


그 시작은?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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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파리에 메종 마르지엘라를 설립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에 의해 상징적인 흰색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음 해인 1989년 마르지엘라의 첫 번째 봄, 여름 컬렉션을 선보인 그는 흰색을 키컬러로 사용하며,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런웨이를 선보여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완벽을 추구하며 사치와 과시를 위한 옷들만 늘어가던 당시, 그가 선보인 런웨이 피스들은 오래된 것들을 자르고 재조립하고, 안감과 외부 원단을 바꾸는 등의 해체주의와 단조로운 실루엣의 미니멀리즘을 같이 보여준 것. 또한 첫 컬렉션부터 모델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등 자신의 컬렉션이 순수한 추상화가 되기를 원하는 그의 갈망을 표면적으로 드러냈다. 이렇듯 마틴 마르지엘라의 첫 컬렉션은 완벽한 의류들만 만드는 당시 패션계에 대한 반항이자 혁신이었으며, 패션 시장의 판도를 뒤집어놨다.

마르지엘라의 흰색은 ‘통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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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르지엘라의 흰색 실험실 가운 유니폼과 컬렉션 속 흰색 의류들을 주목해보자. 마르지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턴부터 수석 디자이너까지, 성별과 인종을 막론하고 흰색 유니폼을 입는다. 디자인적으로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또한 하우스의 전통에 따라 작업할 때 흰색 유니폼을 입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유니폼과 컬렉션 피스의 화이트 컬러는 메종의 미니멀한 디자인을 완성하면서도 팀과 브랜드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한다. 흔히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보이는 위계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모든 직원이 차별없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마르지엘라의 팀워크를 강조하는 것. 이처럼 흰색 페인트로 뒤덮힌 마르지엘라의 쇼룸, 인테리어 소품, 유니폼, 컬렉션 피스들에서 마틴 마르지엘라가 얼마나 ‘통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마르지엘라의 흰색은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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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마르지엘라가 흰색을 사용한 이유에는 한 가지 더 있다. 원초적으로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은 마틴 마르지엘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80년대-90년대 완벽주의와 사치, 과시의 요소들을 가리는 장치이자, 그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마르지엘라는 모든 것에 흰 페인트를 칠하며 순수한 패션을 염원했고, 남들과는 다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렇듯 그에게 있어 흰색은 고상한 위장 장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표식이자, 시간이 지나며 부숴진 균열을 통해 과거의 순수한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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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정체성과도 같다. 과학 실험실 같은 마르지엘라의 매장에 들어서면 흰색 유니폼을 입는 직원부터 흰색 인테리어까지 ‘흰 세상’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흰색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아주 연약한 색이고 흰 바탕은 순수한 캔버스입니다. 메종 초기 창립부터 인테리어, 가구, 쇼룸, 매장은 벼룩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가구로 장식되었습니다. 통일성을 위해 각 부분들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거나 덮었죠.
이처럼 모든 것에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통일성과 순수함의 상징’이라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브랜드 철학을 보여준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설립자 마틴 마르지엘라는 ‘혁신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지며, 순수한 존재에 대해 갈망하는 패션 세계의 매력적인 철학자이다. 그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2020년 개봉작 <마르지엘라>를 추천한다. 더불어 최근 진행된 마르지엘라의 24 f/w 컬렉션과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감상하며 마르지엘라의 흰색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금 생각해보자.

Credit

  • 사진/ @oldmartinmargiela_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