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3년 단연코 가장 주목 받은 한국 패션 디자이너 '지용킴' 인터뷰

제19회 SFDF 수상의 영예를 얻은 ‘지용킴’. 한순간에 떠오른 신진 브랜드가 아니다.

프로필 by BAZAAR 2023.12.30
3~4년 전, ‘지용킴’ 말고 ‘지용메이드’라는 이름을 본 적 있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나?
‘지용메이드’는 당시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브랜드를 정식 론칭하기 전에 사용했다. 그러던 중 일본 편집숍 ‘그레이트(GR8)’에서 내 졸업작품을 모두 바잉하고 싶다고 해 ‘지용킴’이라는 브랜드를 다소 급하게 론칭했다. 최대한 졸업작품과 비슷하게 복제해 판매했는데, 감사하게도 빠르게 완판됐다.
일단 졸업작품 원본을 먼저 팔 수도 있었을 텐데.
간직하고 싶었다.
자연적으로 옷을 바래게 하는 ‘선블리칭’ 기법은 지용킴의 시그너처다. 필수로 드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원단, 기온, 풍량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한 달 이상 걸린다. 초창기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약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자연광으로 탈색되지 않는 원단 종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선블리칭 기법에 탐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매장에서 형광등으로 인해 어깨 같은 부분이 바래버리면 더 이상 판매하지 못하는데, 이를 새로운 미학으로 제시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고등학교 땐 빈티지 아카이브를 바잉해 판매하기도 했다고. 거기에서 영감받았나?
아직까지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 등 빈티지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있는데, 디자인보단 역사적 스토리에 매력을 느낀다. 지용킴 제품을 디자인할 땐 노상에서 더 큰 영감을 받는다.
노상?
오랜 시간 한 곳에 있던 의상이 햇빛에 자연스레 바랜 것을 뜻한다. 지난 전시 땐 원단을 크게 펼쳐놓고 내내 햇빛을 쬐도록 했다. 그 원단은 파라솔을 제작하는 등 다양하게 재활용했다.
 
일본 문화복장학원과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한국이 아닌 두 도시・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우선 패션 디자인으로 국내 대학에 입학하려면 틀에 박힌 입시 미술을 해야 했다. 이에 도통 흥미를 느낄 수 없어 당시 관심이 많았던 일본 패션에 눈을 돌렸다. 일본에서 여성복 패턴 메이킹과 봉제 등 기술적 부분을 배웠으며, 남성복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영역에 대한 갈증은 영국에서 채웠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10~20대 독자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타국에서 살아본 경험은 국제적 업무를 하는 데 언어・문화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비즈니스로 관계를 맺은 이들과도 쉽게 친밀해질 수 있다.
학사 수료 후 바로 브랜드를 론칭하지 않고 석사 과정까지 이수한 계기는 무엇인가.
그레이트에서 연락받기 전에 이미 석사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석사 진학 기회를 아무나 얻는 건 아니기에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실제로 학사와 석사 수료가 디자이너로서 추후 진로에 큰 차이를 야기하는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단연코 포트폴리오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말이다. 다만 석사는 교수진이 다를 뿐만 아니라 수료한 이가 소수다 보니 훨씬 더 주목받는 것 같다.
르메르, 루이 비통에서 인턴으로 지냈다.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버질 아블로. 돌이켜보니 어떤가?
크리스토프는 일반인에게 미미해 보일 수 있는 컬러 톤 변화나 1~2mm 사이즈를 고민할 정도로 섬세하다. 그에게 정교하게 디테일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버질과 지낼 땐 내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워낙 선량한 분이었기에 자주 추억한다.
대중은 선블리칭 효과만을 지용킴의 시그너처로 보지만, 철저한 계산 하에 자연스레 늘어지는 드레이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어떻게 변주하는가?
여성복 전공 경험을 살려 섬세한 드레이핑을 남성복에 적용하고자 했다. 중력과 패턴이 만나 조화로이 떨어지는 드레이핑 디테일, 실루엣을 통해 우아한 남성복을 만들고 싶었다. 드레이핑에 대한 질문은 받아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알아봐줘서 감사하다.
우아한 무드라니, 실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선블리칭 패턴이 오히려 캐주얼한 이미지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다. 좀 더 가서 스트리트 무드로도 이어지고.
선블리칭을 일반적인 워싱으로 보면 스트리트 웨어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지용킴 옷은 자연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만들어진다. 이렇게 동적이고 입체적인 흔적이 정교한 실루엣을 구현한다.
염료나 탈색약을 쓰지 않고 자연 가공기법을 활용,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기법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좋다. 최근 지용킴을 따라 ‘선블리치드’라는 이름으로 많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데, 오리지널과 매우 다르다. 실제 자연광에서 천천히 바랜 원단과 대량으로 프린트하거나 약품을 쓴 원단은 천지 차이라는 의미다.
컬렉션을 준비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팀원끼리 많이 대화한다. 리서치 자료는 물론, 평소 각자 취향대로 모아왔던 아카이브를 공유하며 브레인스토밍한다. 예를 들어 2024년 S/S 시즌의 경우, 과거 길거리 가판대에서 본 기념품 티셔츠에서 영감받았다. 패키지 박스 모양대로 빛바랜 티셔츠가 신선하게 다가온 경험이었다.  
전시라는 포맷을 통해 신규 컬렉션을 소개해왔다. 방문객이 지용킴의 옷을 입어보는 존도 꼭 마련하는 것 같던데, 이 같은 방식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우리는 원단과 패턴 등 자세히 볼수록 재밌는 브랜드다. 모델이 빠르게 워킹하는 런웨이는 지용킴과 맞지 않다. 여유를 갖고 느리게 설명하는 편이 옳다고나 할까. 또 지용킴을 단순한 패션 브랜드로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시회를 통해 설치미술과 아트워크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제19회 SFDF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대중에게 어떤 디자이너로 소개되고 싶나?
지금까지 없었던 걸 창조하는 팀.
지용킴을 계속해서 ‘팀’, ‘우리’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다.
팀이 없었다면 지용킴은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 패션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나 하나만 믿고 수년 전 작은 사무실에서 함께 시작했던 동료 등 팀원들이 없었다면 지용킴은 불가능했다.
지용킴은 전 세계 편집숍이 한국에서 가장 주목하는 브랜드로 도약했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감사할 따름이다. SFDF 수상도 그렇고, 내년 3~4월 오픈 예정인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 지점의 오픈 브랜드 리스트업에 오른 것도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요즘 지용킴 옷이 어떤 인테리어와 어울릴지 궁금하다. 자연적 재료와 관련한 고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특정 아티스트라기보단 가구 브랜드와 협업하면 멋있는 결과물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MBTI가 무엇인가?
ENFJ. 가끔 E 대신 I가 나오기도 하고.

Credit

  • 에디터/ 윤혜연
  • 사진/ 이대희(김지용),ⓒ Jiyongkim(캠페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