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화이트 큐브 서울 상륙!

영국 태생의 갤러리 화이트 큐브가 메가 갤러리의 격전지 서울에 뛰어들었다.

프로필 by BAZAAR 2023.10.08
 
9월의 첫 주말 낮, 주위는 한산한 가운데 도산대로의 랜드마크 호림아트센터 앞이 들썩였다. 세계 5대 갤러리 중 하나인 화이트 큐브의 서울 개관을 기념하는 자리. 미술 주간의 시작이자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을 앞둔 기간임을 염두에 둔다 해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기포가 보글거리는 샴페인 잔에 손가락을 걸고 상기된 얼굴로 머릿속과 입 언저리에 쌓인 궁금증을 어서 해소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 가득했다. 2018년 물리적인 공간이 없을 때부터 화이트 큐브의 한국 담당이었던 양진희 디렉터는 한껏 쏠리는 관심과 호기심에 답했다.
1993년 런던 세인트 제임스 지역의 정방형 공간에서 시작한 화이트 큐브는 홍콩, 파리, 웨스트 팜비치에 이어 서울에 당도했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이미 색깔 있는 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은  호림아트센터에서 첫 출발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화이트 큐브는 1층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일부러 찾지 않더라도 길을 걷다 어렵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었으면 해서요. 그래서 해외 지점들 대부분이 그라운드 블록에 있어요. 또 자연을 사랑하죠. 도산공원은 아주 크진 않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그 사정권 안에 우리 갤러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았고요. 삼청동과 한남동도 둘러봤는데 이 근방에 송은과 에르메스, 루이 비통의 전시장, 이전 개관하는 페로탕이 있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로웠죠. 많이들 궁금해하는 호림아트센터와의 동행은 분명히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름다운 유물과 전통적인 컬렉션을 소장한 곳과 이웃하면 더 많고 다양한 관람객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곡선과 패턴으로 짜인 건물의 디자인과는 별개로 갤러리 내부는 화이트 큐브의 지향점을 따른다. ‘하얀 입방체’라는 이름이자 갤러리 공간의 확고한 문법은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왔다. 건축학적인 디테일부터 라이팅까지 공통 요소에 한국적인 미감을 더해 서울 지점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Lee Jinju, <Blazing Radiance>, 2023, Powdered pigment, Leejeongbae Black, animal skin glue and water on unbleached cotton, 88.7x65.6cm. © artist. Courtesy Arario Gallery and White Cube

Lee Jinju, <Blazing Radiance>, 2023, Powdered pigment, Leejeongbae Black, animal skin glue and water on unbleached cotton, 88.7x65.6cm. © artist. Courtesy Arario Gallery and White Cube

화이트 큐브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젊고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함께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이튼 칼리지 출신의 젊은 기획자이자 아트 딜러였던 제이 조플링이 30세에 만든 화이트 큐브는 이른바 yBA라 불리는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메가 갤러리 대열에 들어섰다. 이들뿐 아니라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안토니 곰리, 박서보 등 60여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화이트 큐브에 속해있다. 엄청난 라인업 안에서 서울 첫 전시는 어떤 모습일까 커다란 기대와 추측이 오갔다. 답은 일곱 명의 여성 아티스트였다. 트레이시 에민을 위시한 마르게리트 위모 같은 중견 아티스트와 신예 루이스 지오바넬리, 새롭게 발굴한 한국 작가 이진주가 포함되었다. 국제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글로벌 아트 디렉터 수전 메이는 «영혼의 형상»이라는 제목으로 이들을 한데 묶었다. “최근 뉴스에서 인공지능이 과연 인류 실존의 위협인가에 대한 논란을 자주 접하면서 이 화두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 창의성은 쉽게 대체될 것인지, 그렇다면 예술은 지성과 창조의 수단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더불어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가 2천5백 년 전 에세이 <영혼에 관해서>에서 말한 몸과 영혼의 불가분한 관계가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공통적으로 인체와 관련된 모티프가 여럿 있습니다. 손이나 발 심지어 혈관까지 발견할 수 있어요. 순서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이 작품과 저 작품을 연결해서 보다 보면 기획자인 저도 보지 못한 각자의 연상 작용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Katharina Fritsch, <Hand>, 2020, Plaster and acrylic paint, 4.8x11.8x17.5cm. © the artist / DACS. Photo © Ivo Faber. Courtesy White Cube

Katharina Fritsch, <Hand>, 2020, Plaster and acrylic paint, 4.8x11.8x17.5cm. © the artist / DACS. Photo © Ivo Faber. Courtesy White Cube

젊은 기획자이자 아트 딜러였던 제이 조플링이 30세에 만든 화이트 큐브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젊고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함께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Tracey Emin, <The Next Journey>, 2023, Acrylic on paper, 70x100cm.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2. Photo © White Cube (Theo Christelis)

Tracey Emin, <The Next Journey>, 2023, Acrylic on paper, 70x100cm.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2. Photo © White Cube (Theo Christelis)

화이트 큐브에서도 귀중한 발견이라 여기는 이진주 작가는 원단에 안료를 직접 칠하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현대적인 주제를 다룬다. 몸의 연약함과 몸을 통해 경험되는 트라우마라는 주제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 관람객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진주를 비롯해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시 구성은 ‘현대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역사적인 것을 현대적으로’라는 기치와 새로움과 성장이라는 정체성이 절묘하게 합을 맞췄다. 이제 막 첫 전시를 연 화이트 큐브 서울은 앞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을까? 수전 메이는 다시금 작가와 함께 커왔던 초심을 강조했다. “런던, 뉴욕, 서울 할 것 없이 아주 훌륭한 팀을 보유하고 있고 구성원들이 각지에서 끊임없이 신진 작가들을 찾고 있습니다. 서로 국제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계속 발굴을 해나가고 있고요. 갤러리로서 큐레이션의 우수성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면 최고의 작가들을 끊임없이 찾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발굴한 작가들이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저희 갤러리와 함께 일을 하면서 관람객과 소통하고 미술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활동을 하길 바라거든요. 이것이 우리의 과제 중 하나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개관전 «영혼의 형상»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12월 21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갤러리가 가진 고유의 공간과 목표가 예술 신에 융화되고 좋은 결과를 보일 때 덩달아 웃음이 난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화이트 큐브 서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