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쾌한 바다부터 정취로 가득한 마을까지 걷고 걷다. 강릉은 강릉이다. 경포대가 왜 유명한지 실감한다. 산불에 그을렸지만 위풍을 잃지 않은 소나무 울타리를 지나면 넓디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빛이 잔뜩 부서져 하얗게 보일 지경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온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그 위를 가른다.
안반데기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2214-94
귀가 먹먹하고 몸이 덜컹덜컹 부딪힌다. 해발 1100m 고산지대에 있는 안반데기마을을 찾아가려면 몸이 고되다. 마을에 닿으면 피로는 곧 사라진다. 떡메를 치는 안반을 닮아 이름 붙은 만큼 움푹하고 넓은 지형이 장관이다. 낮에 보이는 배추밭 풍경도 근사하지만 은하수가 빛나는 밤 풍경도 놓치기 아쉽다. 칠흑 같은 하늘을 수놓는 별과 풍력발전기에 바람이 머무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지은 99칸짜리 한옥 고택이다. 입구의 활래정부터 멋이 흘러 넘친다. 연꽃 정원과 각종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 별당을 시작으로 안채와 행랑채의 화려한 건축기술을 만끽해본다. 이렇게까지 방이 많은 이유는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선비들이 묵을 수 있도록 규모를 늘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견을 넓히고 마음이 부풀었을 선비가 되었다가 집을 기꺼이 내준 집주인의 마음을 헤아렸다. 가꾸고 돌본 이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잠시 다른 시대에 다녀왔다. 선교장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오죽헌이다. 조선시대의 학자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이름처럼 검은 대나무가 무성하다. 문을 열면 오죽이 병풍처럼 보인다. 냉방기구도 없는데 명석한 집의 구조가 만든 바람길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줄기차다.
옛 관아부터 현대의 시청이 자리해 오래도록 강릉의 중심지였던 명주동은 신시가지가 생기며 쇠퇴한 마을이 되었다. 최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와 상점이 생기면서 ‘시나미(강원도 사투리로 ‘천천히’라는 의미) 명주 나들이’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명주동은 크게 한 바퀴 돌아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작지만 운치는 깊다. 1백 년 된 주택의 서까래를 그대로 살리고 디자이너 가구를 채워 넣은 카페 ‘오뉴월’과 유럽 가정집을 닮은 와인 마켓인 ‘민트’부터 적산가옥에서 꾸준히 영업해온 간장게장 백반집 ‘동해일미’와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까지. 하루를 통째로 이 거리에서 보내도 좋다. 시나미 시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