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찍은 환경 다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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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찍은 환경 다큐

전 세계적인 거장이 되기 전 감독은 환경 파괴 등 주요 사회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BAZAAR BY BAZAAR 2023.06.28
이나초등학교 봄반 아이들과 함께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 수록).

이나초등학교 봄반 아이들과 함께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 수록).

일본 다큐멘터리의 아버지, 오가와 신스케를 존경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극영화 〈환상의 빛〉(1995)으로 데뷔하기 전에 유유히 카메라를 들고 환경 파괴 등 주요 사회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후지TV가 제작한 ‘Nonfix’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참여한 고레에다는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오로지 성장을 추구한 일본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포착했다. 이 시기에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과 다면적인 얼굴을 담아내려 했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고, 영화가 자신과 세계의 접점에서 태어난다는 걸 인식했다. 1990년대 초반에 공개한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연출과 인간관계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소중한 작품이라고 감독은 자평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란다  

〈또 하나의 교육〉 1991년   
 
1989년 휴먼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데뷔를 한 20대의 고레에다는 평소에 관심이 있던 저널리스트 고마쓰 쓰네오가 쓴 〈아이가 교과서를 만드는 초등학교〉(1982)를 읽었다. 교과서를 쓰지 않고 종합학습을 추구한 이나초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가 TV아사히의 뉴스 스테이션에서 소개한 나가노현 이나초등학교 1학년 봄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 방송은 아이들과 젖소 하루미의 9개월간의 동거와 이별을 보여주었는데, 고레에다는 당시 방송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느끼고 봄반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을 찍고 싶다는 막연한 동기로 학교를 방문했다. 그 결과, 작품의 부제(〈이나초등학교 봄반의 기록〉)가 친절하게 밝히듯 천진난만한 봄반 아이들과의 소통이 시작되었다.
봄반 아이들은 어느덧 3학년이 되었고, 다시 한 번 학교에서 소를 기르고 싶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소가 다 자랄 때까지 길러서 젖을 짜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은 곧 농장에서 데려온 젖소 로라를 키우면서 실현되었다. 고레에다의 다큐멘터리는 아이들과 로라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동시에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살아있는 교육이 될 수 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이나초등학교의 종합학습은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대안교육을 연상시킨다. 아이들은 틀에 박힌 수업시간표를 따르지 않고, 학습 상태에 따라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정하는 방식이다. 소를 데려오기 전에 협심해 외양간 짓기, 사룟값 예측(1년 사료비를 계산하며 산수를 배움), 나뭇잎을 관찰하거나 소를 직접 그려보는 시간 등으로 다양한 학습이 이뤄진다. 또한 소와 함께 지내며 소의 교배 및 임신을 공부한 아이들은 로라가 조산한 후 새끼가 죽는 뜻밖의 고통까지 경험한다. 아이들은 새끼 소의 장례식을 치르고 정성스럽게 젖을 짠 후 급식 때 나눠 먹는다. 각자 소의 죽음과 젖 짜기에 대한 느낌을 시나 에세이로 적어서 발표하기도 한다. 한때 울음바다를 만들었던 아이들은 씩씩하게 아픔을 극복해간다. 이렇게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은 6학년 봄이 될 때 로라를 안타깝게 떠나보내고, 외양간은 헐려서 흔적만 남은 공터가 된다. 엔딩에서 "함께 지냈던 기쁨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는 아이들의 노래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이들의 성장과 치유를 담은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 학교가 행복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자신의 학교생활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고레에다의 카메라는 봄반 아이들의 울고 웃는 얼굴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담아냈다. 비결은 피사체(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속적인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 3년간의 성장과 변화를 비디오카메라로 직접 촬영했기에 가능했던 것. 그는 생각날 때마다 혼자 찾아가 아이들과 하나가 되었다. 함께 급식을 먹고 방과 후에는 친구처럼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 역시 그가 촬영이나 취재로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다. 소를 통해 상실과 이별을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건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진솔한 마음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통한 변화는 찍히는 대상이나 찍는 연출자, 양쪽 모두에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고레에다가 〈또 하나의 교육〉을 촬영하면서 얻은 지혜와 노하우는 훗날 극영화를 연출하면서 발군의 기량을 펼치는 토대가 된다. 도쿄에 방치된 네 아이들의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2004), 떨어져 사는 형제가 함께 사는 날을 꿈꾸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처럼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의 영화 세계는 정점에 이른다.
 

불합리한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1991년  
 
당시 일본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복지를 다루고 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의 죽음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53세)와 하라시마 노부코(47세), 두 사람은 살아생전에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복지 정책자와 사회적 약자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두 인물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환경청 국장 야먀노우치는 1990년 12월 미나마타병 인정 소송에서 국가 측 담당자가 된 후 자살을 선택했고, 생활보호 대상자 하라시마는 호스티스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난치병에 걸리자 헐벗은 상황에 내몰린다. 1990년 무렵 복지와 생활보호를 소재로 방송을 만들려고 고심하던 고레에다는 죽은 두 사람의 서늘한 숨결과 흔적(문서, 일기, 녹음 테이프 등)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숨겨진 원인을 찾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준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고백한다’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2016)에 따르면, 원래 의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취재 중에 자살한 호스티스의 고백이 담긴 테이프를 발견하고 나서, 그녀와 생활보호를 끊은 구청복지과 공무원이 대립하는 방송을 구성했다. 촬영 준비에 들어간 단계에서 갑자기 야마노우치의 자살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이는 고레에다에게 숙명처럼 다가왔다. 언론은 늘상 그렇듯이 엘리트 관료의 자살을 선정적으로 다루었지만 고레에다는 그를 직접 조사하는 과정에서 열정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두 인물의 인생을 반추하는 동안, 가해자 복지 행정과 피해자 시민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묘사할 만큼 복지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레에다는 대척점에 선 사람들로 긴장을 일으키는 구조 같은 수월한 방식보다는 죽은 이들의 사연에 진솔하게 귀를 기울였다.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는 방식으로 수정하면서 더 힘있는 작품이 완성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복지 정책, 소외와 공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반전에 가까운 진실로 큰 울림을 준다. 올곧은 이상주의자 야마노우치가 환자와 정부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과 하라시마가 복지사무소에서 성차별을 당하거나 생활보호 중지 신청서를 쓰도록 강요받은 일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두 사람은 소신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목의 ‘그러나...’처럼 냉혹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놀라운 사건을 담담하게 파헤쳐나가는 고레에다는 정상을 가장한 사회 뒤에 숨겨진 이면을 밝힌다. 즉 복지가 무너진 시대의 자화상이자 두 사람을 향한 애도다. 이 다큐멘터리는 방영된 후 20회 재방송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레에다는 47분의 방송에 담지 못한 야마노우치의 삶을 알리기 위해 〈그러나... 어느 복지 고급 관료 죽음을 향한 궤적〉(1992)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고레에다의 이런 탐구정신과 독특한 시선은 훗날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유족을 다룬 〈디스턴스〉(2001)로 이어진다.
 

공해를 통해 드러난 일본 사회의 고질병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1992년  
 
영화의 오프닝은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굴뚝으로 시작한다. 관객을 압도하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과 징조. 이 연기는 일본 최악의 공해 재난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환경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인 츠치모토 노리아키 감독의 〈미나마타: 피해자와 그들의 세계〉(1971)를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1950년대 중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바닷가 마을 일대에 칫소비료공장에서 유출된 수은 중독으로 인해 신경질환(‘춤추는 고양이병’이라고 불림)이 발병했다. 이 참상에 주목한 츠치모토는 1970~80년대에 미나마타병 환자와 관련된 일화를 지속적으로 영상에 담아 경각심을 높였다. 공해(公害)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해준 이 역사적인 다큐멘터리처럼 1990년대에 치열하게 작업을 하던 고레에다 역시 대기오염에 관심을 가졌다.
이 작품의 아이러니한 제목은 사실상 대기와 수질의 오염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암시한다.(심지어 일본 열도는 오늘날 방사능 오염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제철소, 주민들과 피해자들, 환경청 공무원의 입장에서 지바현에 위치한 가와사키제철소의 공해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제철소는 디즈니랜드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일본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당시 약 3만 명이 공장과 관련된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제철소는 지바현뿐 아니라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이끈 주인공이자 동시에 공해와 차별 구조를 잉태한 장본인이었다. 제철소가 들어선 이후 공해병을 앓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천식을 호소한다. 일찍이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얘기했던 ‘호모 사케르(법의 보호망에서 배제된 존재)’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국가로부터 ‘버려진 국민’이나 다름없다. 환경 약자에 대한 행정을 통해 90년대 초에 일본의 격차사회(사회 불평등)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더불어 마을사람들과 제철소의 17년째 이어지는 공해병 재판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회사와 피해자의 대치나 길항보다는 공해 문제의 상징적인 인물을 비중 있게 다룬다. 1960년대 공해대책기본법을 만들어 공해행정을 발전시킨 공로자였지만 훗날 공해재판에서 기업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한순간 배신자로 낙인 찍힌 공무원 하시모토 미치오다. 그는 인터뷰에서 기업과 피해자, 양쪽으로부터 비판에 시달린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법률 개정으로 공해병에 시달리면서 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고레에다의 카메라는 마치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1970년대 다큐멘터리에서 경직된 폴란드 사회의 권력자들(국가 제도와 공산주의)을 보여준 것처럼 어두운 그늘을 지닌 한 인물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고레에다의 시선으로 1990년대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공무원의 얼굴을 바라본다. 반성 없는 하시모토에게 침을 뱉기보다는 경제성장이 우선인 시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 역시 공해의 피해자가가 아닐까 고심한다. 엔딩의 순간까지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피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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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전종혁
    에디터/ 손안나
    사진/ 바다출판사,서울국제환경영화제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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