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든 시든 음악이든 아니, 전 애인의 ‘자니?’ 문자를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 미술도 언제 어느 때 감상하느냐에 따라 때로 완전히 다른 뉘앙스로 읽힌다. 시간성을 거세하고 화이트 큐브 안에 작품이 감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시일지라도 그렇다. 어쩌면 아트 컬렉팅은 그런 결핍에서 추동되는지 모른다. 그 작품을 나의 모든 시간 안에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 까마득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건 며칠 전 열린 ‘Nuit Europ´eenne Des Mus´ees(The European Night of Museums)’가 부러워서다. 프랑스 문화부가 2005년 개최한 이래 매년 유럽 30개국 약 1천2백 개의 미술관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5월의 어느 날 밤,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한밤의 미술관을 찾는다. 이를테면 한밤중 튈르리공원을 통해 오랑주리로 이동하면 모네의 수련과 닮은 필립 코녜의 〈Entre Chien et Loup〉가 눈앞에 펼쳐진다. 빌뇌브 다스크의 라엠에선 심지어 손전등 하나만 들고 비장한 자세로 이사무 노구치의 오브제 사이 사이를 탐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관은 보통 6시, 늦으면 7시에 문을 닫는다. 그나마 유일하게 서울시립미술관이 저녁 8시까지 개장한다. 10년 전엔 8시까지 운영하던 부산시립미술관은 오히려 폐장 시간을 6시로 앞당겼다. 왜냐고? 당시 직장인을 위해 야간 개장한다는 부산시의 정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거셌더랬다. 솔직히 저녁 8시면 그런 의심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6시에 퇴근(‘칼퇴’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다. 정시 퇴근!)한 뒤 러시아워를 뚫고 미술관까지 도착하면 7시. 그렇게 저녁도 거른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티케팅한 뒤 숨가쁘게 전시장을 돌아야 8시 폐장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다. 느긋한 관람은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요즘은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해도 합법인 시대 아닌가. 주간 노동자가 연차를 쓰지 않고 주중에 가볍게 미술관에 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격무에 피폐해져있는 지인이 내게 이런 소리를 한 것일 테다. “전시회에 간다고? 팔자 좋네.”
세상의 거의 모든 미술관이 내세우는 단일한 목표는 문턱을 낮추고 시민과 밀착하는 것. 미술관이 특별히 시간을 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고급 문화의 성지가 아니라 무시로 드나드는 일상적 공간이 되려면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염두한 운영이 필수적이다. 진정 직장인을 위한다면 외국처럼 특정 요일을 정하고 관람 시간을 대폭 늘리는 게 나을 거다. 테이트모던은 주중에 두 번 밤 10시까지, 루브르와 오르세는 밤 9시 45분까지 연다. 우리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렇게 하고 있다. 수요일은 밤 9시.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 함정이지만.
미술관도 이럴진대 갤러리는 오죽하겠나. 매출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그들 고객이 평일 낮에 노동하는 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소비는 근원적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에서 비롯되고 낡고 지친 직장인의 ‘시발비용’만큼 강력한 게 없는데? 요즘 똑똑한 아트페어들이 저녁 프로그램에 힘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텐데? 마케팅의 측면에서는 어떨까. 한때 유럽의 갤러리들 사이에 심야 상영이 유행한 건 폴라 쿠퍼 갤러리가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시계〉를 밤늦게까지 틀어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가고시안이 더글러스 고든의 〈24시간 사이코〉를 보여주기 위해 문자 그대로 24시간 갤러리 문을 열어둔 것은 또 얼마나 화제였나. 그래서 자꾸 떼쓰고 싶다. 프로 야근러에게도 작품을 감상할 자유를 달라고. 저녁이 있는 삶을 예술로 채우고 싶다고. 작년 프리즈 서울 기간에 처음 열렸던 삼청나이트와 한남나이트가 그토록 인기였던 것은 그동안의 갈증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모르겠다. 나는 그저 술과 예술과 밤이 있던 그때 그 서울의 풍경이 그리운지도. 팔자 좋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