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가 있는 풍경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에드워드 호퍼가 있는 풍경

도시인의 일상을 통해 고독과 상실을 묘사했다고 알려진 에드워드 호퍼는 풍경화를 그릴 때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뉴잉글랜드의 끝도 없는 바다를 자그마한 화폭에 거침없이 담아내는 호퍼를 상상한다. “나는 투명한 눈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손안나 BY 손안나 2023.04.24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캔버스에 유채, 102.1x127.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the Friends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60.54.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캔버스에 유채, 102.1x127.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the Friends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60.54.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전형적인 도시의 일상을 통해 초현실에 가까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에드워드 호퍼의 이중적 감각은 20세기 초 미국의 식당, 카페, 기차, 호텔 방 등을 묘사한 작업에서 극대화되었다.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인 그림 속 인물을 보고 현대인들은 도시인의 고독과 상실을 떠올렸다. 그런 그가 시골이나 해안가 풍경 같은 전원을 묘사한 작품에서는 그토록 평온하고 낙관적이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진 않다. 호퍼는 애디슨 미국 미술관의 관장이던 찰스 헨리 소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언제나 자연을 매개로 삼는 일이며, 어떤 오브제와 대면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이는 반응을 화폭 위에 포착하는 일이다. 그 순간은 세계가 나의 관심이나 상상적 재현과도 부합하는 때이다.”(〈에드워드 호퍼〉, 롤프 귄터 레너) 생전 그가 존경했다는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처럼 그 역시 자연과의 접촉에서 자연이 인간의 안에 있으며, 인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을까. 국내서 처음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 이승아 학예사는 호퍼가 진정으로 편안하고 자유로웠을 때는 풍경화를 그리는 순간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5-30. 캔버스에 유채, 64.5x51.8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65.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5-30. 캔버스에 유채, 64.5x51.8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65.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국내에서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첫 개인전이다. 그동안 전시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대여료와 보험료 등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사실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오랜 세월 한국 관람객이 에드워드 호퍼를 원해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세계적 명화들을 소개하는 걸작전으로 기획을 풀어내겠다고 선언한 상태였고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다음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뒤따랐다.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결론은 호퍼였고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 연락할 것. 휘트니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또 가장 많이 연구한 기관이다. 때마침 휘트니도 «Edward Hopper’s New York»이라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순회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4년간의 대화 끝에 이번 전시가 마련됐다. 어찌 보면 기적적인 순간인 것이, 휘트니가 다른 기관에 호퍼의 작품을 일부 대여해준 적은 있어도 이렇게 대규모로 호퍼의 작품을 움직인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와의 계약 이후에도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문의가 왔었다고 알고 있다. 휘트니가 모든 제안을 거절하면서 순회 가능성은 철회되었고 결과적으로 호퍼의 순회전은 오직 서울시립미술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방금 언급한 휘트니 미술관의 «Edward Hopper’s New York»전은 말 그대로 작가와 도시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전시다. 2백여 점의 도시 중심 작품을 연도별, 테마별로 정리했고 몇몇 그림엔 구글 지도까지 곁들여졌다. 
호퍼는 뉴욕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나약이라는 교외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훗날 성인이 되어 뉴욕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어떻게 보면 뉴욕이라는 테마 아래 작가의 활동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도 휘트니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첫 개인전을 비롯하여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회고전도 모두 휘트니에서 열렸다. 호퍼는 삽화가로서 오랜 기간 활동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때의 드로잉과 삽화를 대대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서울 전시는 어떤 점에 주목했나? 
전시 제목인 ‘길 위에서’를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호퍼의 65년간의 화업에서 특이한 지점이 뉴욕을 본인의 제2의 집처럼 삼으면서도 미국 동북부의 뉴잉글랜드 지역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는 점이다. 청년기에는 미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며 인상주의를 독학하기도 했다. 우리 전시는 호퍼의 궤적을 따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 코드 등 그가 여행했던 각 지역을 소주제로 삼았다. 도시에서의 일상과 전원의 풍경으로 거듭 회귀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넓어졌는지 다루고자 했다.
 
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 1950, 사진: 조지 플랫 라인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Frances Mulhall Achilles Library and Archives, Sanborn Hopper Archive, Gift of The Arthayer R. Sanborn Hopper Collection Trust EJHA.0913. © Estate of George Platt Lynes

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 1950, 사진: 조지 플랫 라인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Frances Mulhall Achilles Library and Archives, Sanborn Hopper Archive, Gift of The Arthayer R. Sanborn Hopper Collection Trust EJHA.0913. © Estate of George Platt Lynes

특히 파리 여행이 그로 하여금 예술가로 살겠다는 소명을 굳힌 변곡점이지 않나. 정착하여 학교를 다니거나 누군가에게 사사를 받은 게 아니라 그저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며 독학했다는 점이 호퍼답다고 생각했다. 
청교도 집안에서 보수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호퍼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도 바로 이때다. 삽화가이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서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보던 그였다. 호퍼는 파리 여행 이후 처음 야외 작업을 시도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풍경화나 인물화의 모태가 된 캐리커처 드로잉도 이때부터 그렸다. 여러 모로 중요한 시기였다. 뉴욕에 집중했다는 «Edward Hopper’s New York»에서도 파리 여행 기간의 작업이 심도있게 다뤄졌다.
호퍼에게 길이나 철도, 여행, 잠시 쉬어가는 장소, 혹은 떠남과 머무름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길 위에서’라는 제목이 단순한 장소 이동만을 의미하진 않을 거라 짐작한다. 
이번 전시의 영제가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인 것도 그런 이유다. ‘길 위에서’를 영문으로 직역하면 ‘on the road’나 ‘on the way’겠지만 이는 서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곳저곳을 왔다갔다하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에 어딘가로부터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뜻인 ‘from A to B’를 가져왔다. 작가로서 호퍼의 커리어는 초년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결혼을 하고 40대가 되어서야 트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드로잉을 괜찮게 하는 판화가 정도였고 아내 조세핀과 만나고 밝은 빛, 투명한 빛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작가로 인정받았다. 길은 그가 어떤 장소로 향하는 과정에 놓여있던 물리적인 의미의 길이기도 하지만, 그 길을 오고 가면서 습득한 것들과 그를 통해 본인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낸 과정을 아우르는,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전시 포스터로 〈철길의 석양〉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철로변 집〉 〈주유소〉 〈4차원 도로〉 〈좌석 차〉 〈호텔의 창〉 등 여정의 분위기가 담긴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철길의 석양〉은 우리 전시의 딱 가운데, 일상이 있던 도시 뉴욕(From City)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뉴잉글랜드(To Coast) 중간 지점에서 보여질 예정이다.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5~6년 사이 아내와 기차를 타고 자주 여행을 다니던 시기의 작업으로 그 여행에서 받은 영감이 다시 화폭으로 이어진 셈이다. 어찌 보면 이번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호퍼의 작품 외에 그가 그린 풍경화도 다수 전시된다.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번 전시를 보고 나면 관람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내가 아는 호퍼는 이게 아닌데’, 혹은 ‘내가 몰랐던 호퍼의 깊이와 넓이가 이 정도였구나’.
 
에드워드 호퍼, 〈독서하는 조 호퍼〉, c.1935-40. 종이에 콩테, 목탄, 38.3x56.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293.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독서하는 조 호퍼〉, c.1935-40. 종이에 콩테, 목탄, 38.3x56.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293.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말한 대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호퍼의 고정적인 이미지는 풍경화가 아니라 연극 무대 같은 인공적인 배경에 무감한 배우처럼 놓여있는 도시인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극적인 그림들은 그가 삽화가로서 오랫동안 트레이닝 해오면서 체득한 결과물이다. 그 붓질과 색감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내 관점에서는 다소 답답하게도 느껴진다. 오히려 풍경화가 더 호퍼답다고 생각한다. 호퍼는 시골마을 출신답게 어린 시절부터 직접 카누잉을 즐기고 물을 좋아하고 자연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가 그린 서정적이고 전원적인 그림들이 요즘 같은 인스턴트 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퍼를 연구하면서 내 가슴을 친 작품은 언제나 그런 풍경화들이었다.
〈오전 7시〉의 왼쪽 수풀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기이하지만 오른쪽 건물은 따뜻하고 평화롭지 않나. 그걸 보고 ‘아, 이 사람 천생 도시인이구나’ 싶었는데. 
그 작품은 자연과 문명의 대비가 극명해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전원적인 풍경들은 〈오전 7시〉와 아주 다르다. 마치 전통적인 풍경화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호퍼가 풍경화를 그릴 때 가장 행복했을 거라고 믿나? 
풍경을 그릴 때 가장 편안했고 자신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충실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큐레이터 캐서린 쿠에 따르면, 호퍼는 사우스 트루로에 별장을 짓고 거의 30여 년 동안 매해 여름 그곳에 머물었다. 뉴욕에서의 일상을 벗어나서. 호퍼의 작업실이 있던 케이프 코드가 지금은 유명한 휴양지이지만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호퍼가 머물 때만 해도 인구가 6백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었다고 하더라. 멕시코 여행을 떠날 때도 쿠에게 인적이 드문 지역만 골라 추천받았다고 한다. 관광지의 화려함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가장 조용한 곳에서 가장 평범한 순간들의 반짝거림을 찾아 다닌 것이다. 호퍼는 하찮고 일상적인 것들을 비범하게, 아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연극 무대’에 올려놓은 듯 표현하여 특별함을 선사한다. 흔한 길 모퉁이(〈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마천루의 지붕(〈도시의 지붕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 방식은 풍경화에서 빛을 발한다. 남들은 지나칠 수 있는 헛간이나 모래언덕 같은 전원적인 풍경에 집중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가 빛과 그림자를 얼마나 유려하게 썼는지 살펴보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 에칭: 종이, 24.4x27.9cm. 휘트니미술관, 뉴욕,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 기증 31.691. © 2023 Heirs of Josephine N. Hopper/Licensed by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 에칭: 종이, 24.4x27.9cm. 휘트니미술관, 뉴욕,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 기증 31.691. © 2023 Heirs of Josephine N. Hopper/Licensed by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말한 대로 ‘가장 평범한 순간들의 반짝거림’을 표현하는 열쇠는 ‘빛’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빛은 모네나 고흐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것과 상당히 달라서 재미있다. 
인상주의에서 빛을 쪼갠다면 호퍼의 빛은 어둠과 더불어 명암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드로잉 스케치를 보면 어떤 면의 색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아주 세부적으로 메모해놓았다. 마치 연극 무대의 프롭을 만들듯이 면밀하게 계획해서 구현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작품이 아니라 작품명이다. 〈이층에 내리쬐는 햇빛〉, 〈오전 7시〉처럼 딱 그때의 시간과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빛에 대한 제목들.
팬데믹 기간에 마이클 티저랜드라는 작가가 “지금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한동안 호퍼는 바이러스 시대의 작가로 ‘밈’화되었다. 〈뉴요커〉지의 애덤 고프닉은 최근 휘트니 전시에 대해 “코로나 이후 우리가 놓쳤던 것을 상기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팬데믹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호퍼의 작품을 다르게 볼 여지가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작품이 현대인의 고독감을 담아냈다는 평에 대해서 호퍼 본인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 
호퍼는 본인을 ‘내면을 그리는 화가’라고 정의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말도 자주 했다. 고독이 아니라 하찮은 어떤 것이 밝게 빛나 보이면서 심상을 건드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고독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적 사실주의 작가’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아메리칸 마그리트’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데 키리코의 닮은꼴’이라고도 칭한다. 당신이라면 그의 간략한 프로필을 어떻게 정의하겠나?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대기만성형 인재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고루해 보일 만큼 거듭되는 그의 작가적 시도를 보면 느낄 것이다. 이 사람 진짜 노력파구나. 호퍼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했다. 삽화, 드로잉, 풍경화, 판화, 수채화까지 하나하나 축적되어 지금 우리가 아는 호퍼의 이미지가 탄생했다. 사람들이 이 여정을 함께하며 감동을 느끼면 좋겠다. 휘트니에서 놀랐던 게, 쉽게 지나칠 법한 러프한 스케치 하나에 다들 코를 박고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울 전시에서도 그런 광경을 목격한다면 정말이지 기쁠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1914. 캔버스에 유채, 61.6x74.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96.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1914. 캔버스에 유채, 61.6x74.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96.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호퍼의 그림에는 소실점이 캔버스 밖에 있다”는 표현처럼 그의 작품은 암시로 가득 차 있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당신은 어떤 상상을 펼쳐보았나? 이를테면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볕을 쬐는 사람들〉 속 사람들이 보는 건 어쩌면 진짜 풍경이 아닌 그림 속 풍경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펼쳐본 적 있다. 호퍼는 1916년에서 1919년 사이에 미국 북동부 지역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야외 스케치를 시도했다. 험한 해안가 앞에 캔버스를 두고 그린 그림인데 온통 파란 색이다. 바다와 하늘이 그 작은 캔버스에 집약적으로 들어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화폭에서 다루는 빛의 온도가 대단히 사실적이다. 어떤 이들은 그 작품을 보고 대체 울릉도와 뭐가 다른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그 지역에 잠시 살아본 나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바로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와 온도를 전달받은 느낌이랄까.
큐레이터로서 그리고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당신은 호퍼의 작품에서 어떤 탁월함을 발견했나? 
평범한 비범함, 지극히 평범한 것을 비로소 크고 위대하게 만드는.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 전문에 쓰인 “나는 투명한 눈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문장에서 가져 왔다. "숲에서, 우리는 이성과 믿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어떤 것도 내게 떨어질 수 없다고 느낀다. 치욕도, 재앙도, (내 눈을 남겨두고,) 자연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맨땅에 서있는 내 머리는 밝은 공기에 잠겨서 무한한 공간으로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은 이기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투명한 눈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의 존재의 흐름은 나를 순환한다. 나는 신의 일부이거나 입자이다. ‐ «자연», 랠프 월도 에머슨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에 매료되는 편이며 화면에 도사리는 모호한 가능성을 추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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