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건 성취하는 재미가 없잖아요.” 작은 목표를 새기며, 박성훈은 단단한 확신을 쌓아간다.
데님 세트업은 Wooyoungmi Paris.
고등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163cm정도였는데, 졸업할 때까지 20cm 넘게 자랐어요.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고백했다가 차인 뒤 키 크려고 무지 애썼거든요. 매일 스트레칭하고, 키 크는 데 좋다는 한약 지어 먹고, 우유도 매일 1000ml씩 먹고요.
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과 드라마 〈남남〉을 촬영하면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죠. 유일하게 쉬는 날, 촬영을 위해 시간을 내주었어요.
감사하게도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고 있어요. 성향이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어요.
〈더 글로리〉 시즌 2를 기다리는 팬들이 유튜브에 분석 영상을 계속 업로드하고 있어요. 전 적녹색약인 전재준의 시야로 편집된 영상이 특히 흥미롭더라고요.
그 영상 저도 봤어요! 여러 가지 상징을 해석한 글도 찾아봤는데, 촬영하면서 몰랐던 것들이 많아서 신기했어요. 예를 들어 어린 동은이 뒤에 십자가 모양이 보인다거나. ‘김은숙 작가님과 안길호 감독님이 훨씬 큰 그림을 그리셨구나’ 깨달았죠.
두 분이 전재준 캐릭터에 대해 특별히 요구한 점이 있나요?
악역이라도 관능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운동과 식단 관리를 열심히 했어요. 촬영 끝나고 무척 홀가분해서 요즘 맘껏 먹고 지내요. 시즌 2에서는 몸을 노출하는 장면이 꽤 있어 더 신경 썼거든요. 제가 언급할 수 있는 스포일러는 여기까지!(웃음)
레더 재킷, 니트, 진 팬츠, 로퍼는 모두 Dolce & Gabbana.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삼촌 결심했다. 마음먹었어 방금. 오늘부터 예솔이 지키기로. 사랑한다, 예솔아”라고 말하며, 중간중간 멈추는 호흡과 섬세하게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표현을 통해 장면의 몰입감을 끌어올렸죠. 그 대사가 〈도깨비〉의 김고은 배우가 말한 “저 결심했어요. 저 시집갈게요 아저씨한테. 사랑해요” 이 대사와 비슷하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촬영할 땐 몰랐다가 이후에 알고 놀랐어요. 매 작품마다 대본이 의도하는 바를 최대한 구현하고자 애쓰지만 이번 작품만큼 텍스트를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은 처음이에요. 김은숙 작가님이 쓴 대사는 말맛이 워낙 중요하니까요.
거친 욕설을 내뱉는 야성적인 남자지만, 순정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아서 전재준 캐릭터에 이끌린다는 반응이 많아요. 실제 모습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비슷한 점은 전혀 없어요. 오직 순애보적인 면모만 닮은 걸로 할게요.(웃음)
일명 ‘김병지 커트’라 불리는 뒷머리가 긴 헤어스타일은 소화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눈썹에 스크래치를 내고 헤어 피스를 붙이자고 감독님께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대본이 워낙 탄탄했기에 캐릭터를 분석할 때 외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패션 모델이나 팝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레퍼런스로 많이 찾아봤고요.
코트, 재킷, 탱크톱, 레더 팬츠,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전작인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는 살인마 역할을 맡았고, 압도적인 시청률의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의 ‘장고래’ 캐릭터는 누가 봐도 선한 치과의사 역할이었죠. 악역과 선한 캐릭터, 둘 중 어떤 역할에 더 이끌리나요?
악역을 맡는 게 더 어렵지만, 즉각적인 피드백이 와서 재밌어요. 제 모습이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반응을 얻기도 하고.(웃음) 제 성격이 겁이 굉장히 많고 멘탈도 강한 편이 아닌데, 악역을 연기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화도 잘 못 내는 편이라 작품 속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달까.
촬영 준비할 때 보니 스태프들과 웃음이 끊이지 않던데, 진짜 소심한 성격 맞아요?
실컷 장난쳐놓고 집에 와서 “괜히 그 말 한 거 아니겠지?” 고민하는 편이요.(웃음)
예솔 역을 맡은 오지율 배우를 무척 예뻐한다죠. 촬영장에서 주로 무슨 대화를 나눠요?
일상적인 얘기를 해요. 언젠가 아이들은 아이처럼 대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래서 성인과 똑같이 대하려 해요. 무심하게 “뭐 먹었어?” 하고 묻지, 애교 섞인 말투로 “예솔이 맛있게 먹었어요?” 그렇게 말하진 않아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항상 또래 배우들과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얼마 전 〈더 글로리〉 배우들과 춘천으로 MT도 다녀왔어요. 어린 시절 사귄 친구들과는 살면서 공통분모가 줄어 점점 멀어지지만, 작품을 통해 만난 또래 배우들과는 연기 이야기를 하면서 금세 친해지는 것 같아요. 정성일 배우만 15년 전 단역으로 만났고, 나머지 배우들은 이번에 처음 봤거든요. 모두 급속도로 엄청 가까워졌어요. 손명오 역할의 김건우 배우가 막내라 다 같이 명오를 굉장히 귀여워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죠.
코트, 재킷, 톱은 모두 Bottega Veneta.
20대 내내 연극 무대에 섰죠. 연극 〈모범생들〉, 〈프라이드〉 등에서 주로 소년 역할을 맡으며 ‘연극계의 아이돌’로 불렸다면서요.
30대 초반까지 대학로에서 열정을 불태웠어요. 중간중간 극단에 소속되기도 하고, 다양한 작품을 맡으며 연기 경험을 다질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박해수, 강기둥, 양경원 배우 모두 그때 같이 열심히 연기하던 동료들이죠.
외고에 다니다 갑자기 연기를 전공하기로 정했어요. 공부를 잘했을 것 같은데,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좋아하는 과목은 1등급을 받아도, 재미없는 과목은 손놓는 타입이었어요. 처음 연기를 택한 건 순전히 ‘재미’ 때문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친구들을 깜짝 놀래키기 위해 몰래카메라 상황을 연출하고 노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연기하는 거잖아요.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고, 입시 연기학원을 등록했죠. 아버지께서는 반대하진 않았지만, 한번 선택했으면 한 길만 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전 포기라는 걸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없고요.
데님 세트업은 Wooyoungmi Paris.
오래전 인터뷰에서 로데오 신발가게에서 알바를 하면서 매일 퇴근길 영화 포스터를 봤다는 대답을 보고 그 모습이 상상이 갔어요.
연극할 때는 출연료가 넉넉지 않으니까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세월을 꽤 오랫동안 보냈어요. 지상으로 이사한 지도 몇 년 안 됐어요. 그 시기를 견디면서 작은 목표들을 촘촘히 세우는 습관을 들였죠. 공연을 처음 시작할 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지 않고 공연만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이제 오디션을 안 봐도 한 작품이 끝나면 또 다른 작품이 들어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하고 다짐하고. ‘스타가 되고 싶다’ 같은 터무니없는 꿈만 꾸면 조금씩 성취하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때그때 목표를 자주 세워가면서, 더 잘하고 있는 사람들만 보면서 계속 달려왔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새겨온 좌우명이나 기댄 말들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말은 “Aim High, Shoot Low.” 높게 겨누고 낮게 쏴라. 현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이 말을 좋아했어요.
셔츠는 Our Legacy by Mue. 데님 팬츠는 Marni by Mue.
생생하죠. 장진 감독님이 각본을 쓴 〈택시드리벌〉이라는 연극의 ‘덕배’ 역이었어요. 20살에 학교 수업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는데, 그때 제가 숫기가 없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심했거든요. 오디션을 보고 주인공을 맡으니 달라지는 주변의 공기가 느껴졌어요. 처음엔 “쟤가 뭘 하겠어?” 이런 시선으로 다들 날 보는데, 연기에 몰입할수록 사람들이 점점 제 연기에 집중하고, 끝에 다다라서 박수를 쳐줄 때 굉장히 큰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불을 켜고 잘 정도로 겁이 많은데 영화 〈곤지암〉을 통해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고, LGBT를 다룬 연극 〈프라이드〉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앴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박성훈에게 연기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만드는 매개체인 건가요?
인간은 저마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쉽게 100% 타인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작품 속에 있는 캐릭터도 사실 처음에 봤을 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늘 존재하는데, 한 작품의 한 역할을 만나면서 소화해낼 때마다 제가 인간으로서 한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가 한 뼘이라도 커지지 않나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 과정이 무척 재미있고요.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쩝쩝박사 박성훈’이라는 타이틀의 유튜브 영상을 봤어요. 맛집 투어에 진심이던데요.
리스트가 수백 개는 되는 것 같아요. 7년 전쯤 시작했는데, 평생에 걸쳐 쌓아온 데이터를 정리했죠. 어머님이 요리를 잘하시는 편이기도 하고, 꽤 자부심이 있거든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촬영장 근처의 맛집을 발굴할 때 얻는 기쁨이 커요.
요즘 바빠서 뜸했는데, 맛집 한 군데를 갈 거예요. 진짜 좋아하는 곳으로요.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