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디자인 마이애미에 설치된 펜디 부스. 〈필로 포트레이트〉 연작이 놓인 «트리클리니움» 전시 전경. 트리클리니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 개의 긴 의자’라는 뜻이다.
1925년 로마에서 탄생한 패션 하우스 펜디와 1995년생 아티스트 루카스 게쉬안드트너의 협업은 매해 예술의 시대적 의제를 반영해온 디자인 마이애미의 주제를 관통한다. 2008년부터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전시를 선보여온 펜디는 지난해 ‘휴먼카인드’라는 주제에 걸맞게 아프리카 보츠와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마베오(Mabeo)와 함께 아프리카 특유의 공예적 디자인을 입은 가구로 구성된 ‘콤파’ 컬렉션을 선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2022 디자인 마이애미의 주제는 ‘The Golden Age: Looking to the Future’. 큐레토리얼 디렉터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데로(Maria Cristina Didero)는 ‘황금시대’를 행복과 조화로 점철된 최상의 상태로 상정했고, 전 세계 디자인 갤러리와 브랜드들은 이를 재해석한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펜디는 루카스 게쉬안드트너가 2021년 벨기에 브뤼셀 마니에라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필로 포트레이트(Pillow Portraits)〉 시리즈의 연속선상에서 이번 전시를 완성했다.

회화 속 인물의 자세를 취한 예술가 루카스 게쉬안드트너.

Antonio Canova, 〈Paolina Borghese Bonaparte come Venere vincitrice(Pauline Borghese Bonaparte as Venus Victrix)〉, 1804~1808. © Galleria Borghes. Photo: Luciano Romano
그의 말처럼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롱 체어 위에 층층이 쌓인 캔버스를 의복처럼 입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누구든 천 조각에 팔을 끼우면 즉시 그가 영향받은 작품 속 여성의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인체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마치 ‘의자를 입는’ 개념과 다름없다.
처음에 그는 〈필로 포트레이트〉의 형태적 모티프를 영국 옥스퍼드주의 한 교회에서 우연히 본 스툴과 베개가 결합된 의자에서 얻었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 로마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펜디 아틀리에는 물론 빌라 메디치, 바티칸 박물관, 보르게세 미술관 등 로마의 예술적 명소를 둘러보며 여러 작품 속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뮤즈로 삼았다. 특히 그는 19세기 신고전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가 1805년 완성한 조각상 〈비너스로 분장한 폴린 보나파르트(Pauline Bonaparte as Venus Victrix)〉에 크게 영향받았다고 밝혔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 보나파르트(Pauline Bonaparte)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 그 밖에도 르네상스시대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회화 〈고독〉 등이 영감을 주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한 채 무언가를 골똘히 사유하는 모습이다. 재료로 사용한 캔버스는 모두 펜디 아틀리에에서 공수한 것. 이는 표백하지 않은 코튼 소재로 의상 제작에 사용되는 ‘칼리코’를 활용했다. 또한 그는 전시장 한편에 펜디의 피카부 백을 독창적 시선으로 해석한 조각도 배치했다. 석고 캐스팅 기법으로 백의 모습을 본뜬 다음, 파손된 틀만을 남겨두어 지층에 새겨진 화석처럼 피카부 백의 형태와 구조를 노골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예술과 패션의 창조적 순간을 응축한 작품이다.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