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주목 받은 펜디 전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주목 받은 펜디 전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속 시공간을 넘나드는 루카스 게쉬안드트너와 펜디의 창조적 교감

BAZAAR BY BAZAAR 2023.01.10
 
2022 디자인 마이애미에 설치된 펜디 부스. 〈필로 포트레이트〉 연작이 놓인 «트리클리니움» 전시 전경. 트리클리니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 개의 긴 의자’라는 뜻이다.

2022 디자인 마이애미에 설치된 펜디 부스. 〈필로 포트레이트〉 연작이 놓인 «트리클리니움» 전시 전경. 트리클리니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 개의 긴 의자’라는 뜻이다.

마이애미 비치 인근 프라이드 파크에서 열린 제18회 디자인 마이애미 전시장을 거닌 이들은 각양각색의 오브제가 놓인 부스들 가운데 오직 새하얀 광목 천으로만 둘러싼 공간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올해 펜디가 오스트리아 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루카스 게쉬안드트너(Lukas Gschwandtner)를 초청해 완성한 바로 그 전시다. 일상적 사물의 용도를 색다른 의미로 치환하는 작업을 이어온 예술가는 소란한 페어 현장을 안락한 휴식처로 만들었다. 당장 몸을 뉘고 싶게 만드는 기다란 세 개의 롱 체어가 놓인 이 전시의 이름은 «트리클리니움(Triclinium)». 다소 생소한 이 단어는 고대 로마 주택에서 격식 있는 만찬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긴 의자를 배치한 장소를 뜻한다. 편안한 자세로 호사스럽게 식사를 즐겼던 로마인의 관습은 2022년 마이애미에서 동시대 현대미술 언어로 새롭게 구현되었다.  
 
1925년 로마에서 탄생한 패션 하우스 펜디와 1995년생 아티스트 루카스 게쉬안드트너의 협업은 매해 예술의 시대적 의제를 반영해온 디자인 마이애미의 주제를 관통한다. 2008년부터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전시를 선보여온 펜디는 지난해 ‘휴먼카인드’라는 주제에 걸맞게 아프리카 보츠와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마베오(Mabeo)와 함께 아프리카 특유의 공예적 디자인을 입은 가구로 구성된 ‘콤파’ 컬렉션을 선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2022 디자인 마이애미의 주제는 ‘The Golden Age: Looking to the Future’. 큐레토리얼 디렉터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데로(Maria Cristina Didero)는 ‘황금시대’를 행복과 조화로 점철된 최상의 상태로 상정했고, 전 세계 디자인 갤러리와 브랜드들은 이를 재해석한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펜디는 루카스 게쉬안드트너가 2021년 벨기에 브뤼셀 마니에라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필로 포트레이트(Pillow Portraits)〉 시리즈의 연속선상에서 이번 전시를 완성했다.
 
회화 속 인물의 자세를 취한 예술가 루카스 게쉬안드트너.

회화 속 인물의 자세를 취한 예술가 루카스 게쉬안드트너.

황금시대를 소환한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떠오르는 젊은 예술가 루카스 게쉬안드트너의 미학적 세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가구는 실용적 쓰임을 지닌 물체 그 이상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층적 의미를 갖는 매개체에 가깝다. 2018년 오스트리아 내각사무처 예술 및 건축 부서의 지원을 받아 고안한 설치작품 〈비너 마스(Wiener Maße)〉가 대표적인 예다. 여러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을 법한 원형 의자를 중심에 두고, 이를 파빌리온 형태의 스틸 프레임으로 감싼 다음 석고 틀과 캔버스 천을 쌓아 완성한 건축적 작품은 런던의 전시 공간 레이븐 로(Raven Row)와 랜트 스트리트에서 디자이너 저메인 갤러처(Jermaine Gallacher)가 연 개인전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개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온갖 주제로 이성적 대화를 나누는 살롱 컬처에 영감받아 완성한 작품. 그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 단어와 시간에 대한 인식을 사유하게 만드는 플랫폼을 구현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점은 그의 모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구는 인체 사이즈에 맞춰 제작된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여 가구를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의 제스처를 연구하는 제작 방식을 따른다. 역사적 맥락을 끌어들여 가구라는 사물 이면의 의미를 포착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그의 작업의 근간이다. 
 
Antonio Canova, 〈Paolina Borghese Bonaparte come Venere vincitrice(Pauline Borghese Bonaparte as Venus Victrix)〉, 1804~1808. © Galleria Borghes. Photo: Luciano Romano

Antonio Canova, 〈Paolina Borghese Bonaparte come Venere vincitrice(Pauline Borghese Bonaparte as Venus Victrix)〉, 1804~1808. © Galleria Borghes. Photo: Luciano Romano

트리클리니움을 구성하는 주요 작품 〈필로 포트레이트〉는 예술가가 오랜 기간 관심을 둔 요소를 아우른 결과물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베개’와 ‘초상화’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루카스 게쉬안드트너는 누워 있는 여성의 자세를 입체적으로 연구했다.
 
제게 한가로이 누워 있는 여성을 소재로 다룬 역사 속 초상화와 조각들은 언제나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저는 이 여성들이 어떤 자세로 누워 있었는지, 몸짓과 움직임을 이해하고 이를 제가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번역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제 작업은 회화를 직물의 형태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롱 체어 위에 층층이 쌓인 캔버스를 의복처럼 입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누구든 천 조각에 팔을 끼우면 즉시 그가 영향받은 작품 속 여성의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인체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마치 ‘의자를 입는’ 개념과 다름없다.
처음에 그는 〈필로 포트레이트〉의 형태적 모티프를 영국 옥스퍼드주의 한 교회에서 우연히 본 스툴과 베개가 결합된 의자에서 얻었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 로마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펜디 아틀리에는 물론 빌라 메디치, 바티칸 박물관, 보르게세 미술관 등 로마의 예술적 명소를 둘러보며 여러 작품 속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뮤즈로 삼았다. 특히 그는 19세기 신고전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가 1805년 완성한 조각상 〈비너스로 분장한 폴린 보나파르트(Pauline Bonaparte as Venus Victrix)〉에 크게 영향받았다고 밝혔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 보나파르트(Pauline Bonaparte)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 그 밖에도 르네상스시대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회화 〈고독〉 등이 영감을 주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한 채 무언가를 골똘히 사유하는 모습이다. 재료로 사용한 캔버스는 모두 펜디 아틀리에에서 공수한 것. 이는 표백하지 않은 코튼 소재로 의상 제작에 사용되는 ‘칼리코’를 활용했다. 또한 그는 전시장 한편에 펜디의 피카부 백을 독창적 시선으로 해석한 조각도 배치했다. 석고 캐스팅 기법으로 백의 모습을 본뜬 다음, 파손된 틀만을 남겨두어 지층에 새겨진 화석처럼 피카부 백의 형태와 구조를 노골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예술과 패션의 창조적 순간을 응축한 작품이다.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펜디 피카부 백의 모양을 마치 고대 유물처럼 본뜬 작품.

과거에 영향을 받은 예술작품은 많다. 하지만 2022 디자인 마이애미룰 통해 펜디와 루카스 게쉬안드트너가 빚어낸 트리클리니움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품에서 오직 형태만을 차용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신선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관람객은 작품이 내포한 역사, 계급, 성별에 대한 구체적 맥락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오직 눈앞에 보이는 작품을 통해 자기만의 서사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예술의 초월성을 실감하며, 오직 자신의 감각을 해석하는 경험과 마주하게 된다. 한때 누군가가 최상의 상태에서 스스로를 발견했던 사물 주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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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Robin Hill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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