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로 출판사
포스타입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만화 〈지영〉이 정식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기존의 문법을 완전히 벗어나 성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에는 작가가 생전 출판을 위해 새로 그린 버전, 미공개 에피소드와 에세이가 수록됐다. 〈지영〉은 ‘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요구하지도, ‘창녀’라는 ‘팔자’를 비극적으로 과장하지도 않는다. 지영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가난이 그 일을 하게 만든 이유인 건지, 자신을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그간 성 판매 여성에게 쏟아졌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일하다 얻는 재미는 재미로, 짜증과 지겨움은 짜증과 지겨움으로, 강간은 폭력으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몰두할 뿐이다. 독자는 이를 통해 지질함과 미움과 연민이 혼재하는 시선 등이 뒤엉킨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 〈지영〉의 미덕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된다.

몽스북
〈유난하게 용감하게〉
선택의 순간 앞에서 망설이다 후회를 남기는 대신, 과감히 결단을 내리는 데 재능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다. 〈하퍼스 바자〉의 패션 에디터로,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쉼 없이 일해온 저자 김윤미는 딸 시우가 10살이 되던 해 돌연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주하자마자 팬데믹이라는 변수를 맞닥뜨리게 되고, 세 가족은 타지에서 더욱 밀착한 시간을 보내며 불확실한 일상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배워 나간다. 책은 저자와 딸 시우가 2년여간 써 내려간 에세이가 번갈아 구성되며, 마치 교환 일기를 주고받는 듯 친밀한 인상을 전한다. SNS로 언뜻 곁눈질해 보면 이 가족의 일상은 그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문제가 봉착할 때마다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낙천적인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담대한 태도가 담겨있다.

필로우
〈망각 일기〉
25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써온 사람에게 일기는 어떤 의미일까? 시와 소설, 산문의 경계를 아우르며 수많은 작가들의 존경을 받는 작가 세라 망구소. 그녀에게 일기 쓰는 일은 하루의 단상이나 감정을 서술하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일에 천착해온 작가는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인식의 변화를 마주한다. 불과 며칠 전 일을 잊는가 하면, 아주 오래 전 유년의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 등 기억에 대한 개념이 전복되는 경험을 겪게 된 것이다. 세라 망구소는 내면의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와 글쓰기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하며 〈망각 일기〉를 썼다. 책 속에는 사적인 일기가 인용되지 않는다. 대신 오직 삶과 자기고백적 글쓰기에 대한 단단한 사유가 응축해 있다. “(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라는 구절에서 망각 또한 삶을 직면하는 자세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