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의 삶과 색을 담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소수민족의 삶과 색을 담다

호주 원주민 예술가 샐리 가보리는 형형색색의 작품세계로 강렬함을 선사한다.

BAZAAR BY BAZAAR 2022.10.14
 
〈Dibirdibi Country〉, 2008. © The Estate of Sally Gabori. Photo: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Dibirdibi Country〉, 2008. © The Estate of Sally Gabori. Photo: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문화의 도시 파리에 위치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는 미르디딩킹아티 주완다 샐리 가보리(Mirdidingkingathi Juwarnda Sally Gabori)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번 개인전은 호주 외부에서 진행된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샐리 가보리는 2000년 이후 호주를 대표하는 중요한 현대예술가로 손꼽힌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나 런던의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열린 호주 전시에 초청된 적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호주 외부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80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6개월 만에 전시를 열 정도로 빠르게 예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했다. 201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9년 동안 기존의 호주 원주민 예술가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름다운 색채와 생명력 넘치는 작품세계를 오롯이 파악하려면 우선 샐리 가보리의 호모 사케르적인 정체성(추방당한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4년 호주 북부 퀸즐랜드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카펜타리아만의 벤팅크섬에서 태어났다. 독특한 이름인 ‘미르디딩킹아티 주완다’는 이름에 태어난 장소와 토템 선조를 붙이는 카야딜트의 고유한 전통에 따른 것이다. 즉 벤팅크섬 남쪽에 위치한 작은 계곡인 미르디딩키가 출생지이며 그의 토템 동물인 주완다는 돌고래를 의미한다. 그의 가족을 포함해 1백20여 명으로 이뤄진 카야딜트 공동체는 벤팅크섬의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48년 사이클론과 해일이 카야딜트의 생활터전을 파괴했고, 이로 인해 샐리 가보리와 주민들은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카야딜트 주민들은 모닝턴섬 해변가의 캠프에 머물렀으며, 일시적이라 믿었던 이 피난은 결국 수십 년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모국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결국 문화와 전통에 균열이 일어났다. 1990년대부터 호주에서 원주민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오랜 투쟁을 벌인 결과 마침내 카야딜트 땅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벤팅크섬 나이나일키에 작은 기지가 세워졌다. 드디어 샐리 가보리와 원주민들은 갈망하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샐리 가보리는 2005년, 80세 나이에 그림과 처음 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의 추상화는 찬란하고 격정적인 색을 머금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과 가족의 삶, 호주 원주민(소수민족)의 숙명을 담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고향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담겼다. 40년 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벤팅크섬의 다양한 장소를 기리는 의미가 있으며, 그가 그린 장소들은 카야딜트 땅을 위해 벌인 투쟁과도 연관이 있다. 특히 그의 그림은 한계를 모르는 놀라운 상상력과 자유로운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수시로 변하는 카펜타리아만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고 체득한 삶은 풍경 속 빛의 변화를 풍요롭게 표현하는 근원이 되었다. 그는 색의 조합, 형태의 상호작용, 다양한 형식 등을 선보이며 9년 동안 무려 2천 점이 넘는 캔버스 그림을 작업했다. 2007년에는 6미터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정수라 할 수 있는 생기 넘치는 제스처와 담대함을 끝까지 고수했다. 2015년 샐리 가보리가 세상을 떠난 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11월 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비롯해 캔버스 30점을 선보인다. 딸을 포함한 다른 카야딜트 예술가들과 함께한 세 점의 공동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전시에 맞춰 샐리 가보리의 가족, 카야딜트 공동체와 협업해 예술가 샐리 가보리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 웹사이트(http://sallygabori-fondationcartier.com/)를 제작했다. 그의 풍부한 작품세계와 더불어 카야딜트의 다음 세대를 위한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 포함되었다. 자신이 속한 원주민의 역사에 심오하게 연결된 예술가의 사명과 예지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롭고 순수한 창조의 시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렇듯 사후에 유럽에서 여성(어머니), 호주 원주민, 예술가로서 샐리 가보리를 조명한다. 여전히 재발견되어야 할 인물이다.
 
Exhibition Mirdidingkingathi Juwarnda Sally Gabori. Photo: Luc Boegly

Exhibition Mirdidingkingathi Juwarnda Sally Gabori. Photo: Luc Boegly

«미르디딩킹아티 주완다 샐리 가보리»전 큐레이터 쥘리에트 레콘(Juliette  Lecorne) 과외 인터뷰.
샐리 가보리의 독창성은 작품에 본인의 삶이 독특하게 투영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샐리 가보리는 80세에 처음 붓을 잡았다. 그가 미술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샐리 가보리의 작품은 그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호주 북부 벤팅크섬에서 태어나 24세 무렵 부근에 있는 모닝턴섬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처음 모닝턴 아트 앤 크래프트 센터에 온 2005년 당시엔 그가 카야딜트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워크숍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노인들이 취미 활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세션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붓을 들어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러다 큰 캔버스에 작업하기 위해 공간을 원했다. 곧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2006년 브리즈번의 울릉가바 아트 갤러리에서 생애 최초의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통해 얻은 돈을 모아 남편과 함께 벤팅크섬으로 가는 여비를 마련했다.
80대에 다작을 한 것도 인상적이다. 창작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매일매일 모닝턴 센터에 가서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열망과 절박함이 작업의 원동력이었다. 벤팅크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항상 갖고 있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달랐다. 자매나 딸들과 달리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는 카야딜트어를 하는 마지막 세대였다. 비록 언어로 전달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문화를 후대에 계승해야겠다는 열망이 굉장히 컸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2천 점에 달하는 작품을 그렸다. 엄청나게 용감했고 과감한 사람이었다.
샐리 가보리의 작품을 보면 고향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고향이 창작의 원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의 작품과 고향의 연계성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카야딜트 사람들은 태어난 지명을 이름으로 쓸 정도로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신념이었다. 호주에 있는 샐리 가족과 자주 만나 아카이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전통과 문화의 계승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공간을 전시회에서 마련했다. 작품 〈툰디(Thundi)〉는 그의 아버지가 태어난 땅이다. 작품 중 잘 알려진 〈디비르디비(Dibirdibi)〉는 남편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나이나일키(Nyinyilki)〉는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아웃포스트(기지)를 만든 곳이다. 아웃포스트를 만들어 카야딜트 원주민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샐리 가보리의 작품은 색의 조합이 무척 아름답다. 큐레이터로서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샐리 가보리에게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창의성에 있어서의 자유다. 표현에 있어서의 자유, 색상의 진폭, 여러 레이어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에 감탄했다. 그는 호주에서 알려진 후 다른 아티스트들과 만나 협업했지만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기억에 기반한 작업, 즉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투영하고 있는데 굉장히 강력하다. 작품이 급진적이고 미니멀한 느낌도 있고, 특히 작품 자체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오랫동안 호주에 방문하지 못하다가 올해 4월에 다시 가서 모든 작품을 봤다. 색상이나 색상이 주는 움직임으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14세기 유화에 관한 기법을 본인 스스로 고안해 색상의 조합을 독특하게 가져가고 있다. 80대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담긴 그림을 그렸다.
파리에서 샐리 가보리의 작품을 본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가?
굉장히 호의적이다. 뮤지엄은 연일 꽉 차 있다. 본인들이 생각했던 호주 원주민 예술과 다른 형태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꽤 놀라워한다. 특히 샐리 가보리에게 있어서 그림의 역할이나 그의 강렬한 삶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일단 작품을 먼저 본 후 웹사이트를 통해 작가의 역사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작품의 찬란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 좋겠다. 샐리 가보리의 작품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전 세계 어떤 관람객이든 개인의 행복이나 그의 고국과 뿌리에서 비롯된 작품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전종혁은 한국과 호주의 수교 60주년 프로젝트 전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를 체험한 후 호주 동시대 미술의 힘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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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전종혁
    사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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