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혜가 입은 수트는 Shuit. 티셔츠는 Cos. 유병재가 입은 수트는 Shuit. 이너 셔츠는 Le17septembre.
〈유니콘〉은 가상 스타트업 ‘맥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피스 시트콤이다. 어디서 출발했나?
유병재: 내가 속해 있는 샌드박스도 잘된 스타트업 중에 하나이지 않나. 나와 같이 사는 유규선 매니저가 그곳 직원인데, 어느 날 형이 나한테 그러더라. 스타트업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실제로 조사를 하다 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그게 〈유니콘〉의 시작이었다. 시트콤은 크게 두 종류다. 국내 김병욱 감독님 스타일의 시트콤과 〈프렌즈〉나 〈모던 패밀리〉 같은 해외 시트콤. 우리 작품은 후자에 가깝다. 오피스 코미디는 기존에도 많았고. 어디에 차별점을 둘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최대한 세련되게 만들고 싶었다. 인지혜: 〈어쩌다 발견한 하루〉가 끝나고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유병재 작가를 리스펙트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장르라서 참여하게 됐다.
재킷, 팬츠는 Yoox. 스웨트셔츠는 Golden Goose.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관찰자 입장에서 스타트업의 어떤 점이 흥미롭던가?
유병재: 영어 이름을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 조직은 ‘수평적이다’라는 건데 사실 십수 년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식의 시행착오랄까. 예전에 한국에서 스탠드 코미디를 시작할 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데 당시엔 반말로 공연하느냐 존댓말로 공연하느냐가 논쟁거리였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영미권 문화에서 온 것이다 보니 거기서는 당연히 반말이지만 우리가 반말을 하면 이상한 것 같고. 같은 맥락으로 스타트업 역시 소위 서울대, 연·고대 나온, 우리나라 기준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경우가 꽤 있더라.
시트콤은 캐릭터 플레이가 중요하지 않나. 신하균이 분한 ‘맥콤’의 CEO 스티브는 어떤 인물인가?
유병재: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다. 부족한 사람은 아닌데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선택을 하고, 은은하게 눈이 돌아 있는 사람. 그런 연기에 신하균 씨 말고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벤처 사업과 스타트업 사업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나이 대의 인물이어야 했다. 그러면서 실제 유명인들의 사건, 사례를 많이 조합하기도 했다. 내가 짠 연표대로라면 마흔여덟쯤 되는 남자여야 하는데 실제로 신하균 씨도 마흔여덟 살이더라.
유병재: 주식만 하더라도, 작년엔 뜨거웠는데 지금은 확 줄지 않았나. 우리 작품도 딱 2022년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지금의 시대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거창하지 않은 선에서 무겁거나 날카롭지 않게.
이 프로젝트는 유병재 작가를 메인으로 인지혜 작가, 이병헌 감독, 김혜영 감독 등 요즘 핫한 창작자들이 모인 것으로도 화제였다. 공동 작업에서 오는 시너지를 실감했나?
유병재: 나 같은 경우엔 로맨스에 대해선 아예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반부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맥락이나 감정선 같은 건 인지혜 작가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지혜: 남녀의 심쿵 코드가 다르지 않나. 어떻게 해야 설렐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을 웃기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울리거나 감동을 주는 것보다 웃기기가 더 힘들고 그걸 글로 쓰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유병재 작가는 그런 쪽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작업을 함께 하면서 많이 배웠다.
인지혜: 웃기려고 상황을 던져놓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 웃을 사람은 웃고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다. ‘이 대사에 사람들이 안 웃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다음 대사에 설명을 다는 게 촌스러울 수 있다는 조언이 와닿았다.
한국의 시트콤은 이제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상태다. 시트콤의 전성시대가 왜 저물었다고 생각하나?
유병재: 김병욱이라는 스타 한 명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 아닐까. 〈순풍산부인과〉 〈똑바로 살아라〉 그 후로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우리나라 시트콤은 김병욱 그 자체다. 전 국민이 ‘시트콤은 이거야’라고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라서. 인지혜: 이 사회가 웃음에 각박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순풍산부인과〉를 다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긴 상황들이 나오는데 이제는 그걸 사람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 것 같다. 비하나 혐오에 대한 감도가 높아지다 보니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썼을 때 누군가는 불편해하지 않을까?’라는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작품 역시 “혹시 이런 대사가 불편할까?” 서로 크로스 체크를 해가면서 작업했다.
인지혜가 입은 셔츠 원피스는 Diadem. 유병재가 입은 패턴 터틀넥, 재킷, 팬츠, 레이어드한 팬츠는 모두 Prada.
두 사람 모두 첫 시트콤 도전이다. 시트콤만의 매력이 있다면?
유병재: 지금껏 스탠드업 코미디나 5분짜리 콩트 위주로 써왔는데 이렇게 긴 호흡은 첫 도전이다. 캐릭터에게 정이 쌓인다는 게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시트콤이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줄임말이지 않나. 상황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무수한 코미디를 녹이는 작업이 즐거웠다. 웃음의 밀도가 높달까? 인지혜: 16부작 드라마는 전체 연결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그런데 시트콤은 툭툭 웃음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사가 연결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또한 캐릭터 플레이이다 보니 각 화마다 주목받는 캐릭터가 있다. 맥콤이라는 스타트업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 같이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의자에 앉아서 쥐어짜는 쪽인가? 혹은 더듬이를 세우고 영감을 찾아 나서는 쪽인가?
인지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있는데, 앉아 있는다고 나오지는 않는 것 같고. 결국 마감이 동력인 것 같다.(웃음) 유병재: 과거 〈SNL〉 작가 때는 매주 대여섯 개의 아이템을 내야 했다. 그걸 4~5년 하니까 소재가 떨어질 수밖에 없더라. 그때 쓴 방법 중에 하나가 일부러 클리셰 범벅인 재미없는 콘텐츠를 골라 보는 거였다. 그러면 거기서 ‘꺾을 거리’가 떠오른달까. 물론 건설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고. 요즘은 일부러 신경을 다른 데 보내 놓는다. 축구 게임을 하면서 멍 때리다 보면 뭔가 찾아올 때가 있는 것 같다.
〈말장난〉이란 삼행시집을 낸 적 있다. ‘바자’와 ‘유니콘’으로 각각 이행시, 삼행시를 지어본다면?
유병재: 바. 바야흐로 웃음의 계절,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자. 자, 8월 26일 〈유니콘〉 많이 봐주세요. 유. 유병재. 니. 니 얼마나 잘 썼는지 콘. 콘텐츠로 확인한다.
인지혜: 박상영 작가의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유병재: 애플 TV플러스 오리지널 〈세브란스: 단절〉. 그리고 영화 〈코다〉. 요즘에는 예능 〈런닝맨〉도 보는데 11년 동안 똑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비슷한 게임을 하는데 아직도 재미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다.
니트 톱, 스커트, 로퍼는 모두 Tod’s. 골드 귀고리는 ilyand.
인지혜: 나도 그 해답을 알면 참 좋을 것 같은데.(웃음) 추측하자면 사람들이 공감하는 콘텐츠 아닐까. 유병재: 잘 모르겠다. 〈유니콘〉은 기본적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다. ‘휴먼 코미디’라는 명칭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몽글몽글하고 선한 이야기라서 대중들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
인지혜: 내가 과몰입을 잘한다. 친구 얘기를 하나 들어도 “어떡해!” 뉴스를 봐도 “저 사람 어떡해?” 혼자 걱정하고. 타인에 대한 관찰과 공감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유병재: 뻔한 얘기이기는 한데 메모하는 습관이다. 나한테 제일 소중한 건 10년 정도 모아놓은 메모 파일이다. 다른 건 없어도 살 수 있는데 그게 없으면 일단 일을 못할 것 같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인데 귀찮아서 안 적어놓은 적도 많다. 아쉽다. 그걸 다 적어 놓았으면 세상이 뒤집어졌을 텐데!
유병재: 노희경 작가.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스킬이나 기교는 흉내낼 수 있다 쳐도 결국 시선이 중요한 것 같다.
재킷, 팬츠는 Ffeff Studio. 하프넥 셔츠는 JW Anderson. 스니커즈는 Converse.
인지혜: 현실에서 만나면 진짜 짜증나고 싫을 것 같은 상사도 시트콤 안에서는 재미있게 그려질 수 있다. 웃음이란 그런 거 아닐까? 작법 시간에 배운 것처럼 희극과 비극은 같이 있고 웃음과 슬픔은 닮은 감정이니까. 유병재: 중학교 때부터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었는데, 그때부터 ‘코미디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나중에는 다른 장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 나는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이더라. 웃기는 것도 울리는 것도 놀라게 하는 것도 무섭게 하는 것도 궁금하게 하는 것도 모두 어렵다. 웃음이란, 타인의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