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살아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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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살아요

달걀 노른자에서 달걀 흰자가 됐다. 누군가는 밀려난 거라 말했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에 정착하고 생긴 일.

손안나 BY 손안나 2022.08.09
 
2년 전 역병으로 전 세계가 뒤집혔을 무렵 처음으로 이사를 고민했다. 상수동 방앗간이던 우리 집은 순식간에 섬이 됐다. 거실 한복판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문득 외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2021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떠난 2명 중 1명은 2030세대이며 그 숫자가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이 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주거 환경에 욕심을 버리고 서울에 남느냐, 경기도에서 쾌적하게 살면서 매일 아침 출근 지옥에 시달리느냐. 당시의 나는 모든 낡은 것들에 질려버린 상태였다. 오래된 베란다는 결코 빈티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운치 있게 느껴지던 집 앞 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내 인생도 그런 것 같았다. 진보는 없고 그저 하루하루 보전하며 서서히 헐고 너절해지는 기분. 결국 후자를 택했다.
49년 동안 경기도민으로 살았다는 박해영 작가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민의 설움을 토해냈다. 염미정은 비싼 택시비를 치르지 않기 위해 막차에 목숨을 걸고 배차 간격이 족히 30분은 더 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한다. 염기정은 “경기도민에겐 어디를 가든 서울 나들이니까 약속 장소 편하게 정하라”는 말에 ‘삼청동’을 말하는 눈치 없는 것들을 욕하며 흥분하기도 한다. 물론 누군가는 염창희의 여자친구처럼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누가 멀리 살래?”
이 드라마에 다소 과장이 섞였을지라도, 세 남매의 거주지가 서울이었다면 이야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은 분명하다. 경기도로 이사한 나도 그랬다. 단지 행정구역상의 주소지가 바뀌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소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서울을 떠난 뒤 나의 일상도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경기도에 살면서 생긴 변화들:
1. 늘 피곤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출퇴근의 비효율성에 대해 고찰한다.
2. 대체로 시간을 낭비한다.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이동하면서 보낸다는 인터넷 밈에 결코 웃을 수 없다.
3. 약속은 가능한 주중에 해결한다. 만약 어떤 경기도민이 당신을 만나러 주말에 서울로 나온다면 잘해주자.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뜻이니까.
 
내가 이사를 결심했을 무렵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그랬다. 한번 서울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그러니 여기에 남으라고.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결코 하지 못했으리라. 누군가는 나에 대해 노른자에서 흰자로 밀려난 거라고 말했다. 무엇이 나를 밀어낸 걸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밀려났을까?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놀랄 만한 얘기를 하나 해주자면, 경기도에도 사람이 산다. 일단 나는 서울이 아닌 곳에도 이토록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집 근처 화훼농장에서 식물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평양냉면, 동네 미술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산이 얼마나 빨리 계절 옷을 갈아입는지 구경하는 일. 서울에 살았다면 결코 몰랐을 작은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길바닥에 흘려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사색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서울 사는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밀레가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린 시점이 파리의 교외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뒤라는 사실 또한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새삼 깨달았다.
조르주 페렉이 〈공간의 종류들〉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면 나는 “안정되고 고정되고 범할 수 없고 손대지 않았고 거의 손댈 수 없고 변함없고 뿌리깊은 장소들이 존재하기를” 바랐으며 “기준이자 출발점이자 원천이 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곳으로 왔는지 모른다. 서울은 내게 그런 장소가 되어주지 못했다.
교외에 산다는 건 자잘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자잘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서울이든 경기도이든 주머니 사정 뻔한 월급쟁이에게 헤테로토피아는 없다. 몇 년 뒤의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서울을 떠나온 나의 시도를 부질없는 짓이라 폄하하고 싶진 않다. 페렉의 말대로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 하루도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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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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