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리브스는 영화 〈테넷〉을 보고 절망했다. 〈클로버 필드〉 〈렛미인〉 〈혹성탈출〉 3부작을 성공시키고 배트맨 시리즈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배트맨 역할로 점찍어둔 로버트 패틴슨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에 나온 것이다. 다행히 패틴슨이 〈더 배트맨〉에 출연하면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퇴폐적이고 음울한 이미지의 패틴슨이 그만큼 이 작품에 절대적인 캐스팅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배트맨만큼 인간적 고뇌가 가득한 히어로가 어딨나. 슈퍼맨은 아예 인간 아닌 외계인이고 배트맨의 가장 반대쪽에 서 있는 아이언맨은 매일이 즐거운 히어로다. 웹슈터를 쏘며 뉴욕의 빌딩 숲을 여행하는 스파이더맨은 또 어찌나 해맑은지. 배트맨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엔 다 가진 백만장자. 그러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상한 무기나 만들고 밤만 되면 퀭한 눈으로 고담시 뒷골목을 배회하는 반쯤 미쳐버린 외톨이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쯤 지난 어느 때다. 서툴고 혼란스러운 초짜 배트맨이 고담의 밤거리를 질주한다. 때마침 너바나의 ‘Something in The Way’가 흐른다. 커트 코베인과 꼭 닮은 배트맨이라니. 맷 리브스가 배트맨의 어둠을 어떤 농도로 해석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는 낮 장면이 거의 없다. 모든 일은 해 질 무렵 혹은 심야 혹은 어스름한 새벽에 벌어진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자경단 배트맨의 시간을 보여줄 뿐 브루스 웨인에겐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 한마디로, 이 영화는 빌런 ‘리들러’를 추적해나가는 밤의 ‘탐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매우 누아르적인. 원작 코믹스의 휘황찬란한 초록색 대신 〈조디악〉의 킬러 마스크를 쓴 리들러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버클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 배트맨은 〈좋은 친구들〉처럼 싸우고 곧 〈차이나 타운〉 같은 역설에 직면한다. 그리고 〈대부〉 시리즈의 마이클 콜레오네처럼 고뇌한다. 이 영화의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다. 만약 마블 히어로물 같은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하고 극장에 갔다면 3시간짜리 러닝 타임이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반대로 배트맨의 진성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이 영화만큼 배트맨 그 자체에 집중한 작품도 없다. 영화는 아주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존재의 발자국 소리, 비명 같은 굉음을 내며 점점 피치를 올리는 배트 모빌의 엔진 소리 같은 것들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신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무섭다. 〈다크 나이트〉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조커였다면 이 작품에선 그조차 배트맨의 것이다. 게다가 탐정이다. DC 코믹스의 DC는 원래 ‘Detective Comics’의 약자다. 배트맨은 거기 등장하는 여러 탐정 캐릭터 중에 하나로 탄생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탐정 배트맨에 집중한다는 것은 배트맨의 기원을 그만큼 존중한다는 뜻이리라. 이 영화의 제목은 다른 무엇도 아닌 ‘THE’ 배트맨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