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하게 혹은 과감하게! 노출 트렌드가 다시 돌아왔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은근하게 혹은 과감하게! 노출 트렌드가 다시 돌아왔다

만약 2022 S/S 런웨이가 무언가를 증명했다면 그것은 피부, 즉 노출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섹시함을 되찾았다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BAZAAR BY BAZAAR 2022.03.06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Missoni, Alberta Ferretti, Balmain, Tom Ford, Nensi Dojaka, Dior, Coach, Michael Kors Collection, Miu Miu, Dolce & Gabana, Moschino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Missoni, Alberta Ferretti, Balmain, Tom Ford, Nensi Dojaka, Dior, Coach, Michael Kors Collection, Miu Miu, Dolce & Gabana, Moschino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팬데믹 이후의 삶을 우리가 언제부터 예상하고 고려하기 시작했는지, 그 명확한 지점을 규정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 2022 S/S 런웨이가 여기에 어떤 단서를 제공해줄지도 모르겠다. ‘보디 컨셔스니스(body consciousness)’라는 대담한 흐름을 내세운 이번 쇼는 지난 10년간 하이패션계를 지배해온 오버사이즈 레이어링(피비 파일로의 셀린 시절부터 몸을 감싸는 것이 쿨하다고 여겨졌던)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 곳곳에는 브라가 있었다. 잘 재단된 블레이저 아래 앙증맞은 삼각형 브라를 선보인 펜디, 실키하고 박시한 쇼츠와 연출한 크롭트 보머 등 스포티한 무드를 보여준 디올, 가슴을 가리는 테이프를 과감히 톱으로 선보인 바케라와 미소니가 그 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브라를 이번 시즌 핵심 주제로 삼았다. 미우 미우에서 그녀는 푸시업 브라와 함께 밑위가 짧은 스커트를 매치했고, 라프 시몬스와 함께 디자인한 프라다 컬렉션에서는 컬러풀한 니트 톱에 와이어를 넣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번 시즌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 예를 들면 샤넬의 부클레 미니스커트는 비키니 팬티를 감추지 않았고,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브라와 끈 장식으로 이루어진, 어깨를 날카롭게 재단한 하이브리드 의상을 선보이며 자신의 10주년을 장식했다. 로에베는 무릎에 재미있는 작은 ‘창(window)’을 내어 몸의 어떤 부분이 성욕을 자극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가 하면 뉴욕과 L.A에 기반을 둔 듀오 에크하우스 라타는 코르셋이나 크롭트 톱(허리 부분의 탈착이 가능한 디테일)으로 연출할 수 있는 티셔츠와 허벅지 앞 부분을 탈착할 수 있게끔 만든 점프수트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트랜스포머 룩을 제작했다. “기분에 따라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야해 보일 수도 있죠.” 디자이너 마이크 에크하우스가 농담조로 말했다.
이번 컬렉션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한 질문은 섹시함의 정의와 더불어 섹시하다는 게 대체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급격하게 바꾸어놓은 탓에 우리는 스웨트팬츠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마스크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현재 패션계가 신체에 집착하고 있는 것에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듯 보인다. 섹시함에 관한 오래된 정의와 함께 어떤 체형이 이상적이거나 혹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디자이너의 생각은 점차 옅어지고, 오히려 미투 운동이나 코로나19, 젠더 이슈 이후의 다양한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가 등 좀 더 거대한 문화적 변화의 흐름에 영향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지난해,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들은 그간 브랜드의 과시적인 ‘패션’쇼가 보여주던, 유행에 뒤떨어진 성 상품화와 여성의 몸을 향한 신체적 착취의 반발 속에서 영원히 자신의 날개를 접어야만 했다. 반면, 이제 우리는 전통적인 여성복 쇼로 일컬어지는 런웨이에서 남성과 제3의 성을 가진 모델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중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입는지에 대한 케케묵은 생각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의하고 드러내는 개념(그것의 의미가 몸을 천으로 계속해서 감쌀 것인지 아니면 아예 거의 헐벗는 느낌으로 갈 것인지) 또한 새로운 흐름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들이 장기간 계속된 재택 근무의 영향인지, 혹은 성과 성별, 그리고 패션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급변하는 세태를 상징하는 첫 징후인 건지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분명 여기엔 우리의 바람이 담긴 부분도 있을 테니까. 디자이너들이 팬데믹 이후를 기념하는 긍정주의를 모아 보여준 것은(여기에는 우리의 몸과 신체를 서로 맞대는 친밀감이 바이러스, 전염성 등과 큰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담겼다) 심지어 팬데믹이 계속해서 기승을 부린다 하더라도 지난 몇 년 동안 패션계에서 자주 사용해온 비유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의 경우, 의상의 방향성과 몸을 드러내는 방식에 좀 더 개인적이고도, 때로는 권위를 실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왼쪽부터) Prada, Simone Rocha, Loewe, Eckaus Latta

(왼쪽부터) Prada, Simone Rocha, Loewe, Eckaus Latta

섹시하다는 걸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섹시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관한 것이니까요. ‐ 해리스 리드
 
일례로 최근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시몬 로샤는 2022 S/S 컬렉션에 수유 브라를 선보였는데, 드레스에 크리스털 디테일이 장식된 뒤집힌 컵이 부착되어 있었다. “저는 수유 브라를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기념하고 싶었어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우유를 주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잖아요. 양육과 사랑, 안정감, 그리고 도전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녀가 말한다. “저는 이걸 하나의 옷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장식으로 강조해서 우리의 가슴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죠.” 그러니까 보석으로 장식된 이 플랩은 우리에게 가슴은 단순히 성적 대상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여기에 젊은 디자이너 그룹은 브라가 왜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며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뉴욕과 상하이에 기반을 둔 프라이빗 폴리시의 듀오 시잉 쿠와 하오란 리는 탈부착 가능한 소매가 특징인 젠더리스 브라 톱을 제안했다. 한편 뉴욕의 탈구축주의자인 바케라에게 있어 란제리는 오랫동안 집착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총알 브라와 테디 티셔츠를 보라. “우리는 항상 아우터로서의 속옷에 관심이 있었어요.” 창립자 파트리크 디카프리오의 말이다. “란제리는 정말 아름답고 복잡합니다. 침실에서만 착용하는 건 슬픈 일인 것 같았어요.” 2022 S/S 시즌, 디카프리오와 또 다른 디자이너 브린 토벤지는 모든 성별을 위한 레이스와 스터드 장식 브라, 그리고 트롱프뢰유 마스킹 테이프 톱을 내놓았다. “섹시하다는 건 자신감을 느낀다는 거예요.”라며 토벤지가 덧붙인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옷에서 자신감을 느껴요. 가리거나, 벗거나, 포멀하거나, 캐주얼하거나, 복잡하거나. 우리는 섹시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인적인 정의에 따라 모두 다르게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보다 다양한 룩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현재 우리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의 맥락은 드라마틱하게 다르다. 패션계가 이번 시즌 브라를 톱으로 소개했을 때 이 스타일은 빈티지에 빠져 있는 어린 ‘틱톡’(Tiktok) 세대 사이에서는 이미 유행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2000년대의 모든 것(이를테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자유나 패리스 힐튼)에 빠진 젠지세대, 그리고 패션과 보디 이미지의 전장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틱톡의 출현은 많은 청소년과 20대가 외적인 뷰티, 대상화, 자기 표현에 대해 가진 생각을 제공했다. 그들에게 외부로 드러내는 옷이란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정체성과 성별, 젠더, 섹스 그리고 긍정적인 보디를 탐색하는 도구로 보여진다.
돌체앤가바나는 20년 전 레이블의 아카이브 디자인을 떠올리게 하는 레이스 란제리를 선보였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에게 그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 “2022년 봄 컬렉션은 젊은 세대들이 호기심 가득 우러러 보고 있는 룩이자 2000년대 우리를 대표했던 미학을 현대적인 버전으로 재해석한 것이에요.” 그들의 컬렉션 제목 ‘#DGLight’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해시태그였다. 돌체앤가바나는 오버사이즈 데님과 로 라이즈 카고 팬츠에서 엿보이는, 넓고 편한 로고 밴드의 팬티 등을 연출하며 그들의 컬렉션이 섹시한 노스탤지어 여행 그 이상으로 ‘새롭게 섹시하고 여성스러우며, 동시에 빛나고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한다.
 
(왼쪽부터) Private Policy, Harris Reed, Vaquera

(왼쪽부터) Private Policy, Harris Reed, Vaquera

코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도 유스 컬처에 눈길을 돌렸다. 오버사이즈 아노락과 부드러운 브라렛을 매치한다든지, 여성 스케이터 크루의 이야기를 담은 HBO 시리즈 〈베티〉를 떠올리게 하는 스케이터 쇼츠를 선보인 것. “이 룩은 이번 컬렉션에서 제가 원했던 편안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에요.” 베버스의 말이다. “2022년 봄은 본능적으로 프레시한 출발과 새로운 언어를 이야기하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모두 집에서 겹겹이 둘둘 말고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서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패션계는 최근 들어 좀 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 사이즈 모델들은 런웨이에서 여전히 코트 혹은 몸을 완전히 가린 드레스 등 상대적으로 얌전한 룩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델 팔로마 엘세서가 마리암 나시르 자데와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에서 선보인 브라 톱 룩(그녀와 켄들 제너가 보여준 가슴을 반쯤 가린 브라와 스커트 콤보 룩)은 정말 근사했다. “이번 컬렉션은 여성의 몸에 대한 축복과 기념, 그리고 자신감에 관한 것이에요. 곡선미와 더불어 분명한 허리 라인이 돋보이죠.” 마이클 코어스는 언급했다. “몸통의 중간에서 드러나는 살은 허리를 보다 신선하고 모던한 방식으로 강조하고요. 저는 그동안 다양한 몸을 가진 여성들을 그려왔죠. 지금의 패션은 사람들을 그 어느 때보다 최고로 느끼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2021년 LVMH 상의 수상자 넨시 도자카가 1990년대에서 영감받은 비대칭 절개가 돋보이는 톱과 드레스는 구조적인 테크닉을 드러내는, 매우 섬세한 스트랩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 “살을 드러내지만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남성의 시선을 뺏는 가볍고 여성스러운 뭔가가 있어요.” 디자이너가 말한다. 그녀는 현재 리아나와 두아 리파, 벨라 하디드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이기도. “여성스러움을 발산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니먼 마커스의 패션 &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리사 아이켄은 브라 톱의 주요한 강점으로 편안함과 높은 활용도를 꼽는다. “(브라 톱은) 어떤 식으로든 스타일링할 수 있어요. 셔츠 단추를 풀거나 재킷을 걸쳐 연출할 수도 있고, 혹은 브라 톱 하나만을 입을 수도 있죠. 아직 트렌드를 용감하게 시도할 준비가 안 된 여성이라면 크로셰 브라를 재미있게 레이어링 해볼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브라 톱의 선두주자인 에르뎀 모랄리오글루와 웨스 고든의 캐롤리나 헤레라 등 다양한 시리즈를 준비해 두었다고. 이들이 제안하는 브라 톱은 레이디라이크적인 룩이 필요한 상황에서 룩을 모던하게 변신시키는 일종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조너선 심카이도 빼놓으면 섭섭할 레이블. 컷아웃 드레스와 레이어링할 수 있는 니트 버전 톱을 눈여겨 보길.
매치스패션에서 여성 의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리안 위긴스는 도자카나 바케라의 브라렛은 강한 테일러링이 가미된 의상이나 좀 더 가릴 수 있는 피스들과 함께 입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시어한 블라우스와 드레스 아래 매치하거나 아니면 소재와 컬러를 믹스해서 입을 수 있어요.” 위긴스의 말이다. “이런 스타일은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요. 소재는 여성의 몸을 돋보이게 하고 힘을 부여하는, 정말 근사한 패턴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성은 팔린다(Sex sells)’라는 오랜 클리셰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제안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피부(혹은 살) 자체를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유희적인 가능성이 그것이다.    
런던에 기반을 둔 해리스 리드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하는 동안 해리 스타일스를 스타일링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의상을 통해 성별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적이거나 혹은 여성적인 형태로 간주했던 기존의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리드는 살롱 스타일로 선보인 런던 패션위크 쇼에서 신부들의 업사이클링된 레이스를 활용, 몸통과 가슴, 팔 위로 드러나는 살을 강조했다. “섹시하다는 걸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섹시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관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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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황인애
    번역/ 이민경
    사진/ 브랜드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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