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긴 그림자를 놓고 간 건데
아침에 사랑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적고 있었는데 거실 창밖에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밤의 밖처럼
내가 아는 감정은 모두 믿을 수가 없다
아무런 상황도 벌어지지 않으면 우는 것이 민망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침에 적는 것이 의미 없고
나는 거실을 거닐며 모른 척하였다
오늘 우리 긴 여행을 가기로 했었지 혼잣말을 하면서
친구 집에 두고 온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떠올리면서 가방 안으로 들어가겠는 다짐을 하면서
친구가 옆에 있는 것처럼 표정으로 말했다
밤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혼자가 되면 모든 기억이 과거의 일같이 느껴지지만 미래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아
이렇게 많은 표정을 이해하는 사이였나
멍하니
이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야 지금은 그런 순간이 아니다 나는 사랑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적고 있었다
아니다 아무 일도 아니다 라고
창밖에 다시 빛들이 채워졌다 세상이 작은 뜰이라도 되는 양
하늘에 태양과 비슷하게 생긴 우주선이 있었다
미사일처럼 빛들이 날아들고 폭발했다
아무 일 없이
마음을 저격하는 눈부심
너무 아름다운 아침이어서 문제야
눈을 감았다 떴다 사랑할 때 나는 매일 저 우주선을 보았어 타고 날아가고 싶었어 아마도
나는 노트에 적은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어 나는 거기 들어가야 했으니까 라고
사실은 적지 않은 감정을 나에게 읽어주었다
글/ 이우성
결국에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 내가 좋아하는 맛,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 사랑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핑크색을 좋아하니까 사랑은 아마 핑크색일 것이다. 나는 달달한 떡볶이를 좋아하니까 사랑은 아마 맵고, 달고, 쫄깃한 맛일 것이다. 나는 원을 좋아하니까 사랑은 아마 동그랗지 않을까. 감정도 그럴 것이다. 날이 서 있고 뾰족한 사람들. 이 판에서 너무 많이 봤다. 나에게도 한때 그런 면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동그란 사람이 좋다.
당신의 첫 번째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는 꽤 난해하다. 그 중에도 사랑시가 있었나?
모든 시는 사랑시다. 시인은 매우 샤이한 집단이라 “좋아해”라는 말 한마디를 부끄러워 한달까. 그러다 보니 돌려 말하는 것뿐이다. 올해 출간하는 나의 두 번째 시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 혼자 사는 집에 모처럼 엄마가 오셨다. 청소를 해주셨는데 소파 아래에서 긴 머리카락이 나왔다. “우성아, 이거 네 머리카락이 아닌가 보다”라고 하셨다. 조금 있다가 엄마가 또 다른 방을 청소하다가 “이 머리카락도 네 머리카락이 아닌가 보다” 하셨다. 이것도 내게는 사랑시, 연애시인 거다. 첫 번째 시집은 난해하고 어려웠다. 굳이 쉽게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두 번째 시집에는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담겼다. 예전엔 시를 쓸 때 내 감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시를 읽는 사람들의 감정에도 귀를 기울여보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게 일종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믿는다.
2012년 첫 번째 시집이 나온 뒤로 딱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온다. 그사이에 연애관이 바뀌었나?
당시엔 연애를 많이 했기 때문에 ‘어차피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데 영원한 게 있겠어?’라고 믿었다. 누구나 현실에 따라 때가 되면 만나고 헤어지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는 거라고. 타이밍의 문제인 거라고. 사랑을 세속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세속을 떠난 건 아니지만(웃음) 적어도 올바르게 살려는 마음가짐을 위해 노력한달까.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에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 20대 때 불 같은 연애를 했던 사람들은 40대에 천천히 가는 것 같고, 20대 때 차분하게 연애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40대가 되어서 거침없어지는 것 같더라. 만약 어떤 사람이 20대, 30대, 40대의 연애관이 동일하다면 그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 아닐까. 물론 나도 내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 그냥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라고는.
한창 쓸 때는 그랬다. 퇴근하고 나서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책상에 앉아 시를 쓴다. 그게 나에겐 마음을 가다듬고 스트레스 해소하는 과정이다. 매일매일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애인도 내 옆에 없을 거고 시도 내 옆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일기나 편지가 그렇듯 사랑 고백이라는 것도 발화함으로써 문학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당신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사랑 고백은 무엇인가?
스무 살 때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경상도 사투리처럼 “오다 주웠다”라고 툭 던지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무심히 꽃을 건네는 행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않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좋아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안에 들어 있는 오묘한 정서가 좋았다. 지금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고백을 한다면 꽃을 한번 ‘툭’ 건네는 대신 매일매일 다정하게 지속적으로 건네고 싶다. 한 번 아첨하면 아부지만 일이 년 지속하면 그건 진심이다. 이제는 고백의 형태보다 고백 이후에 그 감정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
며칠 전에는 새를 묻고 왔다
굳어가는 새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너는 정원을 청소하는 중이었고
죽어버린 새를
손에 쥐고 있는 내게
너는 뭘 하느냐 물었지
새가 멈췄어,
너무 놀라서 얼결에 그렇게 답해버렸다
그후로 무엇인가
자꾸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네가 했던 말이고
맞아, 그냥 다 생각이야,
이건 나의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정원의 나무에는 새들이 많았다
날아가고 또 날아가도
새들이 다시 가지에 앉고,
또 어떤 새는 떨어지고, 그냥 그랬다
‐ 황인찬, ‘낮 동안의 일’(〈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 2019)
그러니까 우리에게 왜 시가 필요할까? 왜 필요하냐고? 외로우면 죽으니까. 최근에 혼자 멍하니 있다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먹는 것도 잘 먹고, 같이 놀아줄 친구들도 많고, 심심할 시간도 없는데. 말하자면 인간은 1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0.5다. 그래서 나머지 0.5가 필요한 거고. 사람이 혼자 두 손을 잡지 않고 둘이서 한 손씩 맞잡고 걷는 이유는 그 절반의 손이 나의 0.5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외롭든 외롭지 않든 그저 우리는 절반인 상태로,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