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게이 인권과 역사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작가 이강승

기록하면 기억된다. 주류 역사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을 발굴해 서정적이고 유의미한 시각예술의 언어로 표현해온 이강승 작가. 한국에서 태어나 중동과 남미를 경유하여 현재 L.A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그와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BYBAZAAR2021.10.17

Everything is Connected 

2018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Garden»에서 선보인 〈무제(정원)〉, 2018. 삼베 위에 24K 니시진 금사, 데릭 저먼의 정원, 남산, 탑골공원의 흙과 캘리포니아 클레이로 만든 도기, 던지니스와 탑골공원의 자갈들, 데릭 저먼 정원에서 수집한 조각의 파편들과 말린 식물들, 91x365x35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Photo: Euirock Lee

2018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Garden»에서 선보인 〈무제(정원)〉, 2018. 삼베 위에 24K 니시진 금사, 데릭 저먼의 정원, 남산, 탑골공원의 흙과 캘리포니아 클레이로 만든 도기, 던지니스와 탑골공원의 자갈들, 데릭 저먼 정원에서 수집한 조각의 파편들과 말린 식물들, 91x365x35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Photo: Euirock Lee

지금 서울은 오전 10시인데 L.A는 저녁이겠다. 올여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재난과 치유»에서 이혜인 작가의 회화작품을 봤는데, 2017년 L.A에 있는 당신과 페이스타임으로 통화하면서 그곳의 풍경을 그린 연작이라고 들었다. 작품 제목(〈2017. 3. 14. 10:00-12:40(Seoul) / 2017. 3. 13. 18:00-20:40(L.A)〉)에는 양 도시의 시간이 적혀 있고 직사각형 캔버스가 아이폰 액정 포맷이었다. 비대면의 삶이 이토록 물리적, 시간적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할 줄은 몰랐다. 
당시 이혜인 작가와 나는 모르는 사이였는데 한 전시공간의 디렉터가 서로를 소개해줘 〈페이스타임 HD〉 연작에 참여하게 됐다. 내가 이해한 작업의 테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카메라가 켜져 있는 시간 안에 하나의 페인팅을 끝내는 룰을 정해 작업이 이뤄졌다.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팬데믹 상황에 있다 보니 그런 새로운 맥락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상황에 따라 의도하지 않았던 콘텍스트가 생성된다는 점도 예술의 흥미로운 점 아닐까.  
올봄 열렸던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는 자신이 자란 L.A 코리아타운의 독특한 유산을 활용해 퀴어 작업을 선보인 공연예술가이자 작곡가인 바지날 데이비스 작업 옆에 당신의 작업이 설치돼 그 역시 흥미로운 콘텍스트가 생성됐다. 
현장에 가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얘기를 듣고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성’이나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생각조차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했던 것들이고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서 지금 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합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바지날 데이비스의 작업 옆에 설치가 된 것 또한 내가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국경, 문화, 세대를 넘어서는(trans-national, trans-cultural, trans-generational) 관점과 시각에 부합한다.
 
Kang Seung Lee, 〈Untitled (Tseng Kwong Chi, Rome, Italy, 1989)〉, 2020, Graphite on paper, 20x20cm; framed: 41x41x4cm. Courtesy of Commonwealth and Council. Photo by Paul SalvesonKang Seung Lee, 〈Untitled (Tseng Kwong Chi, Paris, France (Notre-Dame), 1983)〉, 2020, Graphite on paper, 20x20cm; framed: 41x41x4cm. Courtesy of Commonwealth and Council. Photo by Paul Salveson
“나는 내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합”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전시공간을 퀴어링(queering)한 이강승 작업의 시작점이 아카이브라는 게 이해가 된다. 구찌의 프로젝트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부터 광주비엔날레까지 한국 퀴어 아카이브 ‘퀴어락’이 20여 년에 걸쳐 소장한 퀴어 관련 서적, 잡지, 논문 등의 표지를 스캔하고 이 이미지를 전시장 벽면을 감싸듯 설치하거나 한자리에 모아 전시장을 라이브러리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지속해서 선보였다. 
사적인 아카이브든 공공의 아카이브든 누군가가 어떠한 가치에 기준을 두고 연구하고 수집하고 고전하는 과정에서 구성된 아카이브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가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그룹이 생긴다. 아카이브에는 특정 그룹의 지식 또는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성애자 남성 위주, 서구 세계에서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 위주 그리고 어느 문화권에서건 특정 위인의 가치를 반영한다. 아카이브를 연구하다 보면 위인을 영웅화하여 기념비적인 역사를 쓰려는 시도를 곧잘 발견할 수 있다. 내 작업은 이런 주류 역사의 좁은 관점을 비판하고 그 역사 속에서 배제된 자들의 관점을 새롭게 발견해 비가시적인 삶과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선보인 당신의 작업은 거칠게 말하면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퀴어락 아카이브를 활용한 설치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 홍석천, 캘리포니아 최초의 오픈리 게이 정치인이었던 하비 밀크 등 대중에 공개된 특정 인물의 모습이나 관련 이미지를 옮긴 섬세하고 서정적인 드로잉과 자수 작업이다. 이들이 혼합된 형태로 제시되는데 소수자의 서사를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드로잉과 자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드로잉이나 자수 작업 대부분이 HIV/에이즈 역사와 관련된 작가나 사회적 인물의 삶과 작업을 다룬 것들이다. 나는 상상에서 나온 이미지를 그리지 않는다. 내 작업의 모든 이미지는 레퍼런스가 존재하는데 상당수의 드로잉 같은 경우에는 오리지널 이미지에서 인물을 지우고 자수 작업에서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자수로 새김으로써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수행한다. 이를테면 2018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Garden»에서 나는 데릭 저먼과 오준수, 각각 영국과 한국에서 게이 인권을 위해 활동했으며 90년대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삶과 흔적을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통해 기록했다. 이런 작업으로 여러 도시, 다양한 인종의 퀴어들이 1980~90년대 에이즈 에피데믹(epidemic)으로 사라진 역사를 얘기하며 ‘지우기’를 통해 그들이 남긴 고귀한 유산과 기억을 표현하고자 했다. 물론, 미술에서 가장 기초가 되며 인체의 움직임이나 노동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로서의 드로잉, 오랜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적인 매체로 여겨져온 자수의 특성에 대한 생각도 하나의 레이어를 이룬다. 재료의 사용도 중요한데, 자수 작업을 할 때 패브릭은 대부분 삼베를 사용하고 만든 지 1백 년이 넘는 순금 실로 텍스트를 새긴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 2021. 좌: Kang Seung Lee, 〈Untitled (Harvey)〉, 2020, Graphite on paper, 150x114cm. 우: Kang Seung Lee, 〈Untitled (Seok-cheon Hong)〉, 2020, Graphite on paper, 20x3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 2021. 좌: Kang Seung Lee, 〈Untitled (Harvey)〉, 2020, Graphite on paper, 150x114cm. 우: Kang Seung Lee, 〈Untitled (Seok-cheon Hong)〉, 2020, Graphite on paper, 20x3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순금 실은 어떻게 구하며,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1910년대 교토에서 생산한 실로 그러한 물품을 취급하는 딜러에게 구한다. 금을 실크 위에 직접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사용이 매우 까다롭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이런 재료의 선택조차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힌트 같은 것이라서 중요하다. 다른 이의 삶의 역사를 말할 때 ‘어떻게 제대로 체화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내 육신을 사용해서 형상화한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그런 시도를 통해서 그들의 부재인 동시에 존재 즉, 그들의 육신은 지금 여기에 없지만 기억과 유산은 사라지지 않고 함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드로잉과 자수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는 10월 말 뉴뮤지엄트리엔날레 «Soft Water Hard Stone»이 개막한다. 타이틀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이번 트리엔날레의 주제와 당신의 출품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2009년 시작해 5회째를 맞는 뉴뮤지엄트리엔날레는 휘트니 비엔날레와 함께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비엔날레 스타일 전시로 여겨지며 전 세계의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브라질 속담에서 온 제목으로 한국 속담을 빌려 전하자면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이다. 살면서 변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지 않나. 하지만 변화는 미세하게라도 일어나고 있다. 결국에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나는 이 메타포를 어떠한 변화를 한 개인의 생의 줄기를 넘어서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보자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오준수, 데릭 저먼과 관련된 드로잉과 자수 작품이 메인 작업으로 나가고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커다란 선인장 드로잉 〈Untitled (Harvey)〉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대체로 당신의 드로잉은 아이패드 크기 정도에 흑연으로만 그려져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그에 반해 선인장 드로잉은 유례없이 큰 사이즈라 의아했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오픈리 게이 정치인이었던 하비 밀크는 1978년에 살해당했는데 당시 유품 중에 그가 키우던 선인장이 있었다. 이후 밀크의 룸메이트가 그 선인장을 기르면서 줄기를 잘라내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선인장 번식이 시작됐다. 하비 밀크가 죽고 40년 후에 내 친구이자 아티스트인 줄리 톨렌티노(Julie Tolentino)가 자기 친구에게서 커팅한 선인장 조각을 받게 됐다. 결과적으로 줄리는 세 명 정도의 사람을 거쳐 하비 밀크의 선인장에서 번식된 선인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림 속 선인장은 친구 줄리의 선인장이다. 그리고 이번 뉴뮤지엄에는 실제의 선인장 화분이 등장할 예정인데 그건 줄리의 선인장에서 번식한 새로운 선인장이다. 2016~2018년 동안 방문했던 데릭 저먼의 정원에서 가져온 흙과 서울 탑골공원에서 가져온 흙을 섞어서 만든 화분에 선인장을 심었는데 지금 훌쩍 자랐다. 나에게는 이 선인장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크게 그렸다. 어떤 유산, 저항의 역사가 계속해서 다른 세대를 통해서 전해진다는 의미도 있고 동시에 이런 중요한 기억이 잊히지 않고 지속되려면 누군가의 케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 보살핌은 가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산과 기억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1977년 하비 밀크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됐을 때에도 그 이전에 그 자리에 도전한 많은 퀴어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하비 밀크처럼 성공하지 못했지만 하비 밀크가 당선되기 15년 전에도 똑같은 자리에 도전한 누군가의 시도와 노력이 보이지 않는 낙숫물이 되었을 거란 걸 알 수 있다. 
 
LA 스튜디오에서 이강승 작가. Photo: Ruben Diaz

LA 스튜디오에서 이강승 작가. Photo: Ruben Diaz

11월에 열릴 갤러리 현대에서의 전시도 기대된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개인전, 비엔날레, 아트 페어에서 쉼 없이 당신의 작업이 선보여져 좋은 평가를 얻었는데 그 연장선상이자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사실 한국에서의 전시가 개인적으로 제일 부담이 크다. 잘하고 싶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다른 퀴어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더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한국의 안과 밖에서 퀴어 커뮤니티의 기억과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소개할 것 같다. 홍콩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한 사진작가 쳉쾅치, 싱가포르계 발레 댄서 겸 안무가였던 고추산을 전유하는 드로잉 작업을 비롯해 아카이브적인 요소가 들어간 설치작업, 영상작업 등을 준비 중이다. 갤러리 지하 공간에는 퀴어 클럽을 설치할 예정이다. 게이 클럽의 역사, 그리고 클럽이 담당했던 퀴어 커뮤니티의 얘기들도 풀어보려고 한다.
미술에서의 소수자성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일군의 흑인 작가들이 대두됐는데,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과는 별개로, 흑인 작가가 뜬다니까 흑인 작가 작품을 사겠다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기고 작가의 성 정체성이 자신의 작업 주제와는 별개로 그저 레터르로 언급될 때도 있다.
요즘에 일부 컬렉터들은 작가의 인종을 가장 먼저 물어본다고 하지 않나. 자기 컬렉션이 백인 작가 일색인데 그런 게 너무 창피한 시대가 됐으니까. 어떤 면에서 아트마켓은 사회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요동치기 마련이니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흑인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리면 안 팔리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나도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퀴어 학생들과 얘기할 때 자주 소개하는 책이 있다. 사라 슐먼(Sarah Schulman)이라는 퀴어 작가의 〈The Gentrification of the Mind〉이다. 이 책은 부동산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닌 우리 마음의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해 얘기한다. 슐먼은 왜 우리는 퀴어 이론 수업이나 페미니즘 수업에서만 퀴어 이론을, 페미니즘의 역사를 얘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반 비평 수업이나 역사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져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소수자성과 소수자 역사는 사회와 역사의 일부분이다. 한국 퀴어 커뮤니티의 역사,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한국사의 일부로 논의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현실을 슐먼은 우리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말미암은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것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이 책은 이를테면 한국사 수업에서 종로와 이태원의 게이 커뮤니티의 역사, HIV/에이즈의 역사 등이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의 일부로 기술되고 논의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그게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요원해 보일지라도.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퀴어에 대한 인식은 암담했지만, 현재 많은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나. 내가 하는 작업은 어떤 면에서 보면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퀴어 작가, 연구자와 함께 큰 흐름의 일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 한다.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데릭 저먼의 기이하고 숭고한 정원을 흑연으로 그린 이강승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열심히 돈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