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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boldt Forum
Schlossplatz, 10178 Berlin
베를린의 독보적인 문화공간인 박물관 섬에 비유럽 예술 박물관인 훔볼트 포럼(Humboldt Forum)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섬에는 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국립갤러리 등이 위치하고 있어, 미술 애호가에게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미술관을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옛 베를린 궁전 터에 지어진 훔볼트 포럼은 베를린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18세기 안드레아스 슐뤼터(Andreas Schl¨uter)에 의해 바로크적인 양식으로 진화한 베를린 궁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으며, 1950년에는 동독 정부가 이념적 이유로 폭파시켰다. 이후 1970년대에 동독 인민의회 건물을 세웠다가 철거한 바 있다. 이 자리에 베를린 궁전을 복원해 훔볼트 포럼을 세운 것이다. 궁전의 모습과 역할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궁전의 파사드를 재건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는 도시 콘텍스트와 주변 건축물과의 관계뿐 아니라 궁전이 지은 시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사암으로 지어진 훔볼트 포럼은 직사각형 건축물로 삼면이 바로크시대 건축의 발자취(충실한 복원)를 담고 있는 반면, 슈프레 강을 마주보는 동쪽 면은 직사각형의 큰 창이 모던한 느낌을 전한다. 재건축을 담당한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스텔라(Franco Stella)는 궁전의 역사와 관련한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원리를 현대적 비전과 융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텔라는 훔볼트 포럼을 '궁전의 형태를 갖춘 도시'로 상상했다. 6개의 입구는 도시의 관문을 상징하며, 3개의 안뜰이 도시의 광장으로 사용된다. 건축학적인 면에서 궁전과 광장의 개념은 옛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 잡힌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였다. 신구의 조화, 즉 재건된 바로크적인 부분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부분이 품위 있게 조화를 이룬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반성을 기치로 내세운 훔볼트 포럼은 독일의 위대한 사상가 빌헬름과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Wilhelm & Alexander von Humboldt)의 정신에 영감을 받아 명명했다. 독일에서 가장 뜨겁고 논쟁적인 장소이자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무대로 손색이 없다.
사진/ Copyrights: Stiftung Humboldt Forum im Berliner Schloss
Photo: Alexander Schippel



Bourse de Commerce
2 Rue de Viarmes, 75001 Paris, France
슈퍼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회장이 이끄는 피노 컬렉션이 파리의 도심 레 알 지역에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선보였다. 피노 컬렉션은 2009년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의 레노베이션을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와 함께한 후 다시 의기투합해 역작을 완성했다. 1767년 곡물거래소로 건설된 이 건물은 파사드, 지붕 및 돔 안의 그림에 섬세한 복원 작업을 했지만, 새롭게 탄생한 미술관에 들어가 바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라운드 플로어(0층)의 거대한 콘크리트 실린더다. 지름 29미터, 높이 9미터의 회색 로톤다(원형 홀)가 당당하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안도가 복원을 담당한 사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만 봐도 첫눈에 알 수 있다. 안도는 존경을 담아 도시의 기억이 새겨진 오래된 벽 안에 새로운 공간을 세웠다. 즉 건축 안에 건축(원형 돔 중앙의 원형 건물)이 있는 구조다. 안도가 그의 저서 〈연전연패〉에서 밝혔듯 “공간 체험만이 남는 원형으로서의 건축, 그러한 원형의 공간에 가까이 가기 위한 실마리로 외부와 내부를 일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로 빚은 결과”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중심에서 추상적인 공간을 체험하게 만든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관람객이 자기 자신과 이 장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안도에 따르면, 이곳은 무(無)이자 동시에 역설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의미한다. 메인 전시실인 로톤다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반구형 유리돔(큐폴라)에서 하늘이 쏟아지는 감흥에 취할 수 있다. 안도가 선호하는 자연광과 더불어 서서히 19세기의 천장화에도 빠져든다. 건축과 콘텍스트, 유산과 현대적 창조, 컬렉션과 관람객 사이에서 대화의 여건을 조성하는 안도 특유의 건축적 접근법을 엿볼 수 있다. 로톤다의 외부 벽에 위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시실 등이 3층까지 이어지고 지하에는 오디토리움이 있다. 아름다움을 보존한 복원으로 거듭난 부르스 드 코메르스, 남서쪽의 루브르 박물관과 동쪽의 퐁피두 센터를 연결하는 현대미술의 보고로서 예술의 도시 파리에 활력을 더한다.
사진/ Marc Domage




Hauser & Wirth Menorca
Diseminado Illa del Rei, S/N, 07700, Balearic Islands, Spain
약 4만 제곱미터의 작은 섬, 일라 델 레이가 예술의 섬으로 변신했다. 스페인 메노르카의 마온 항에서 셔틀 보트로 15분 거리에 있는 이 섬은 과거 스페인 해군의 요새였지만 용도 폐기된 해군병원과 18세기 건축물이 방치되어 있었다. 병원이 폐업한 후 버려진 공간에 관심을 가진 주인공은 놀랍게도 세계 3대 갤러리로 손꼽히는 하우저&워스였다. 2014년 영국 남서부 서머싯의 농장을 사들여 자연과 농장이 어우러진 갤러리 하우저&워스 서머싯을 조성한 것처럼 하우저&워스는 특이한 장소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들은 늘 함께 일하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을 찾아왔다. 풍부한 식물군이 있는 일라 델 레이 섬에 복합예술공간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고 아르헨티나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Luis Laplace)가 복원을 담당했다. 갤러리의 널찍한 공간이나 천장의 채광창, 창문 등 디자인은 메노르카의 역사가 담긴 해군 건물들을 오마주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 네덜란드 출신의 조경 디자이너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는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사계절 정원을 만들었으며, 이는 갤러리 건물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하우저&워스의 공동 대표인 이안 워스는 하우저&워스 메노르카를 개관하면서 방문객에게 이곳의 친밀함과 마법이 전달되기를 희망했는데, 그의 선견대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섬에는 분명 친밀함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메노르카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독특한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하우저&워스 메노르카 역시 지속가능한 환경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섬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의 야외 조각을 필두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등 20세기 현대 거장들의 예술작품이 산책로를 조성하고 있으며, 전속 작가의 신작을 선보이는 갤러리와 레스토랑 칸티나 등이 휴양지처럼 아름다운 일상을 선사한다. 개관 전시로 10월 31일까지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작품이 소개된다. 유산과 보존의 가치를 품은 하우저&워스 메노르카는 로컬의 전통을 토대로 전 세계적인 관심사와 만나는 장소로 성장할 것이다.
사진/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Installation view, Sidsel Meineche Hansen, home vs owner, Rodeo, Piraeus, 2020 Credits All images courtesy the artist and Rodeo, London / Piraeus
Rodeo Piraeus
41 Polidefkous, 18545 Piraeus, Greece
2007년 이스탄불에서 처음 시작한 로데오 갤러리는 2014년 런던의 소호에 개관하면서 입지를 넓혔다. 열정적인 로데오 갤러리의 목표는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역사를 쓰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갤러리 활동을 알리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자 그리스의 피레우스(그리스의 아티카 지역에 있는 아테네 도시권 내의 항구 도시)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2017년에 열린 제14회 도쿠멘타가 카셀과 아테네에서 열리면서 최근 그리스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를 반영하듯 피레우스의 옛 산업공간에 위치한 갤러리는 로데오 런던의 위성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초 기지인 셈이다. 로데오 갤러리 측은 도시의 풍부한 역사와 수도 아테네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하며, 이곳이 갤러리의 활성화를 위한 이상적인 장소라고 판단했다. 전속 작가들은 런던과 피레우스의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한다. 물론 로데오 갤러리의 포트폴리오에는 그리스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으며, 크리스토둘로스 파나요투(Christodoulos Panayiotou) 전시가 두 곳에서 9월 말까지 열린다. 로데오 런던은 2020년 메이페어로 장소를 옮겼는데, 거의 공간에 개입하지 않은 채 오래된 타일 등의 인테리어를 고수한 이곳은 마날로&화이트(Manalo & White)의 솜씨다. 로데오 런던이 고답적인 전통이 느껴진다면 피레우스는 지중해의 정취를 더했다. 1900년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일부로 건축된 피레우스의 전 상업창고를 개조한 인물은 스위스의 건축가 에티엔 데스클루(Etienne Descloux)다. 옛 건물은 높은 천장과 두꺼운 벽돌이 특징이며, 시대의 특성을 반영한 건물의 독특한 구조를 존중하고 유지하는 차원에서 로데오 피레우스에 수용했다. 덕분에 아테네의 풍요로운 과거와 공생하는 지역에서 로데오 피레우스가 빚어내는 변혁의 에너지와 리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사진/ Stathis Mamalakis


H. C. Andersen’s House
H.C. Andersen Haven 1, 5000 Odense C, Denmark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작품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 그의 고향에서 개관했다. 이제 오덴세에서 안데르센의 창의적인 우주를 향해 매혹적인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즉 동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는 조경, 건축, 현대 전시 디자인이 결합되어 독특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한다. H. C. 안데르센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신국립경기장(2020 도쿄올림픽의 주경기장)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구마 겐고(Kuma Kengo)다. 꿈의 왕국이라고 불릴 만한 안데르센의 집은 목재와 유리로 만들어진 지상의 파빌리온이 돋보이는데, '작은 건축'을 강조하는 구마의 건축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목조 건축은 철근 콘크리트의 서구 모더니즘 건물과 달리 주위와 상생하는 생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축이라고 설파해왔다. 자연친화적인 파빌리온은 목재 구조가 노출되어 방사형의 천장이 나무 캐노피 아래에 있는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나무의 선을 강조하는 구마의 건축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H. C. 안데르센의 집은 그의 동화 〈부싯돌상자(The Tinderbox)〉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적으로 재해석했다. 카페, 어린이 스튜디오, 지상 출입구 등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나무 파빌리온은 지하 전시 공간의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있다. 지하 전시관은 안데르센의 문학세계를 공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건축, 음향, 빛, 영상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동화를 새로운 미학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구마는 건축 설계의 아이디어는 작은 세계가 갑자기 큰 우주로 확장되는 안데르센의 방식과 닮았다고 말한다. 5천6백 제곱미터의 박물관 부지에서 파빌리온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은 올해 안에 오픈할 예정이다. 여유롭게 정원을 산책하다 보면 자연의 향기를 머금은 안데르센의 집과 하나가 될 순간도 머지 않았다.
사진/ Rasmus Hjortshøj
전종혁은 2007년 카셀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방문해 마음의 안식을 찾은 이후 유럽의 예술 공간을 지속적으로 탐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