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아트 디스트릭트로 떠오른 한남동

재개관을 앞둔 삼성미술관 리움 근처로 해외 유수 갤러리 지점과 특색 있는 소규모 화랑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남동이 새로운 아트 디스트릭트로 떠오르고 있다.

BY손안나2021.10.05
 

ART DISTRICT HANNAM

Joel Shapiro, 〈Untitled〉, 2019, Painted bronze, 71-3/4" x 65-1/2" x 31-1/2" (182.2cmx166.4cmx80cm), All installation view images Joel Shapiro, Pace Gallery, Seoul, 2021. Photo by Sangtae Kim © Joel Shapiro / Courtesy Pace Gallery페이스 갤러리 전시장에서 테라스로 향할 때 관람객이 마주하는 풍경.
Pace Gallery Seoul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7


조엘 샤피로의 조각이 갤러리의 공간을 무대로 우아하게 춤을 추듯 놓여 있다. 특히 3층 테라스의 파란색 브론즈 조각은 한남동 거리의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특별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지난 5월 확장 개관한 페이스 갤러리 서울의 이영주 대표는 “미국에 뿌리를 둔 갤러리지만 한국적인 디자인을 가미하여 독창적인 공간을 만든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페이스 갤러리 서울을 확장 이전하면서 어떤 점에 주력했나? 
원래 이 건물 르베이지 2~3층엔 한식당과 피자집이 있었다. 전시공간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보니, 높은 층고 확보를 비롯해 전시에 효과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최고의 건축가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지만 코로나19로 해외 건축가를 초빙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10년 전 이 건물을 만든 조민석 건축가를 찾아갔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뿌리를 둔 갤러리이지만, 한국적인 디자인을 가미하여 한국지사만의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었고 보람을 느낀다.
이 공간에서 만난 재미있는 관객 혹은 고객은 누구인가? 
빛을 주제로 연 그룹전 «벤딩라이트»에 수많은 젊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특히 LED 피스를 이용해 수만 가지 색의 변화를 보여주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인기가 많았는데, 그 작품을 깊이 감상하기 위해 오랜 시간 전시장 바닥에 앉아 빛의 변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이번 «조엘 샤피로»전에서는 인체의 움직임을 캐치한 샤피로 조각의 형상을 몸짓으로 흉내내는 관람객들을 보며 예술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향유하는 풍경이 흥미로웠다.
서울의 아트 신에서 한남동 일대의 갤러리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형성된 오랜 역사의 삼청동 갤러리 신과 다르게 한남동 이태원 일대의 갤러리들은 좀 더 젊은 관람객 층을 타깃으로 한다. 삼청동이 한국 원로 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선보인다면, 한남동은 현재 미술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발 빠르게 소개하는 데 특색이 있다. 해외 본사를 둔 갤러리들이 세계 미술의 중심인 뉴욕, 런던 등지에서 활약하는 동시대 작가들을 한남동에서 소개하고, 젊은 오너가 운영하는 화랑들은 한국 신진작가들의 전시를 감각적으로 선보인다.
관람객이 이 공간에서 어떤 새로운 풍경을 즐기길 바라나? 
건물 전면을 에워싼 열 그루의 대왕참나무가 갤러리에 진입하는 관람객에게 작은 정원으로서의 통로를 마련한다. 이 공간을 통해 갤러리 화이트박스의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향유하길 바란다.
 
파운드리 서울 계단. @노경
Foundry Seoul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23
 
파운드리 서울은 오는 10월 이건 프란츠의 개인전을 준비하며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윤정원 이사는 프란츠의 다채로운 추상 회화와 설치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특유의 높은 층고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지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보이드 공간은 그가 추구한 ‘관객 경험’을 가능케 하는 장소다.
 
파운드리 서울을 지으면서 고집한 건축적 요소는 무엇인가? 
‘관객 경험’이다. 메인 공간이 지하에 위치하기 때문에 층고와 조명에 특히 신경을 썼다. 7.5m 높이의 보이드 공간은 자연광과 흡사한 효과의 바리솔 조명을 천장 전면에 적용하여 더욱 풍부한 관객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실험적인 매체와 형식을 다루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바이파운드리는 기존의 화이트 큐브와 달리 벽면 전체와 천장이 알루미늄 타공 패널로 이루어져 창의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공간에 개관전의 헤닝 스트라스부르거의 작품이 처음 설치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여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갤러리 공간을 준비해왔다. 도면으로만 상상해오던 전시공간이 완성되고 베를린에서 도착한 헤닝 스트라스부르거의 작품이 처음으로 설치되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신축 건물이었기 때문에 건물이 완전히 안정화되어 있지 않아 사실 고생도 많이 했다. 개관 첫 주엔 갤러리 오픈 직전에 몇몇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대기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아찔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인가? 
10월 7일 오픈하는 미국 작가 이건 프란츠(Egan Frantz)의 아시아 최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계속되어온 그의 예술적 탐구와 실험의 여정을 지하 2층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공간과 높은 층고의 보이드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이 시대에 갤러리라는 오프라인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예술 활동은 굉장히 인간적인 행위다. 아티스트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조명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감상자는 아티스트가 담은 모든 과정의 결과물을 직접 마주하고, 아티스트가 전달하는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며 작품에서 전해지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작품이 들어서는 순간에 그 공간의 공기가 바뀐다고 믿는다. 그만큼 현장에서 작품이 전달하는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방증일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전 세계 미술계가 한마음이 되어 온라인 플랫폼 개발에 최선을 다했고 그로 인해 유용하고 재미있는 툴이 많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아티스트와 관객을 이어주고 작품의 전달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갤러리야말로 예술적 활동이 오롯이 완성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쇼윈도를 통해 Mira Dancy의 〈Sunspoke Searing See-Thru〉가 보인다.

쇼윈도를 통해 Mira Dancy의 〈Sunspoke Searing See-Thru〉가 보인다.

Various Small Fires Seoul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79 
 
VSF 서울의 에스더 김 바렛 대표가 갤러리 공간을 물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1층 전시장’이었다. 이 공간의 쇼윈도를 통해 동네 주민들이 지나다니다가 작품을 감상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수많은 한인들이 세탁소나 네일 살롱을 운영하듯, 과거 이곳이 한남동 토박이들의 단골 네일 살롱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는 이 공간이 지닌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페디큐어 소파 자국을 그대로 살려 한남동 친화적인 1층 갤러리로 변주했다.
 
VSF 서울을 개관할 때 갖고 있던 예술적 비전은 무엇인가?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 미술계에 입성하고 든 생각은 미술계 전반이 매우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이때부터 L.A에 형성된 한국 커뮤니티를 통해 정체성의 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정체성과 관심사를 연결하기 위해 서울에 두 번째 지점을 열었다. 이제는 미국과 유럽의 많은 갤러리가 그들과 그들이 모르는 세계의 일부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우리를 인식한다.
이 공간을 갤러리로 탈바꿈시키면서 어떤 점에 집중했나? 
공간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1층 전시장이었다. 갤러리의 문턱을 낮추어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공간 내외부는 모두 L.A 본사와 같은 색과 조명을 사용해 통일감을 주었고, 두 갤러리가 하나의 브랜드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L.A와의 연결성에 이어 한남동 공간의 역사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래 이 공간은 오랫동안 네일 살롱이었고 한남동 토박이들은 여전히 그곳을 기억한다. 대중문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수많은 세탁소와 네일 살롱은 대부분 한인이 운영한다. 이 공간의 역사가 한인 이민자 역사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래서 바닥에도 에폭시만 깔아 페디큐어 소파 자국이 남아 있는 살롱 바닥을 그대로 보존했다.
이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남동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상이 즐겁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거리를 지나며 우리와 쇼윈도를 통해 소통한다. 독서당로를 지나치며 출퇴근하는 친구들이 전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거나 우리가 그날 입은 옷에 대해 칭찬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 갤러리의 테라스에 앉아 아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학부모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 모든 순간이 우리가 이 지역 커뮤니티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관람객이 이 공간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라나? 
내가 처음 연 VSF L.A는 VSF 서울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현재는 5배 이상으로 커졌지만 말이다. 서울에서 이 규모에 끌린 건 ‘인간적인 규모’의 공간에서 예술가와 관람객이 나누었던 친밀한 교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초기 VSF L.A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논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신중하게 선별한 서술과 아이디어를 통해 이곳에 들른 관람객이 인간적이고 친밀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장인희의 〈Crack of Time〉과 〈Emerging 002〉이 걸려 있는 1층 갤러리.지하 2층엔 설치작품 〈Dazzling Moments〉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Galerie Bhak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40길 19
 
28년 역사의 박영덕화랑은 지난해 12월 갤러리 이름을 BHAK로 바꾸고 청담동에서 한남동으로 이사했다. 경영을 일임받은 장남 박종혁 대표는 그 이유가 BHAK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청담동에서 이뤄낸 아트 벨트를 한남동에서 이어나가는 것이다.
 
옛 박영덕화랑이 자리했던 청담동을 떠나 한남동으로 이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3년 박영덕화랑 개관 당시 청담동은 미술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후 실험적인 젊은 작가와 대표 중진작가들의 활발한 전시 활동 및 주변 갤러리들과의 시너지를 더해 청담동 화랑가를 형성한 바 있다. 한남동은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갤러리들이 주목한 지역이다. 청담동에서 이뤄낸 문화 벨트를 한남동에서도 이어나가보고자 이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실제로 국내외 다양한 취향과 스타일의 갤러리들이 동 시기에 함께 전시를 개최하고 있어 서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을 구상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청담동 공간에선 넓은 평수에 확 트인 시야가 돋보이는 전시를 주로 기획했다. 하지만 뉴욕의 많은 갤러리들을 다니면서, 또한 그곳의 많은 아트 디렉터와 소통하며 느낀 건 규모나 크기와 관계없이 갤러리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높은 층고를 통해 공간감을 살렸고 반듯한 화이트 큐브가 아닌 곡선 형태의 독특한 벽을 통해 관람객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지하층은 1층과 달리 어두운 컬러의 벽을 설치하여 같은 작가의 전시라도 다른 느낌을 주고자 했다. 올해 2월 베를린에서 귀국한 지심세연 작가의 개인전 «火+暴»은 그런 의도가 적중한 전시였다. 지심세연 작가는 도구 없이 손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핑거페인팅 기법이 특징이다. 1층에서 작가의 신작을 전시하고 지하층에서 리셉션 대신 테크노 음악 DJ와의 협업으로 작가의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진행해서 온·오프라인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울의 아트 신에서 한남동 일대의 갤러리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크게는 국내와 해외 미술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한남동 일대에는 페이스 갤러리, VSF, 타데우스 로팍 등 해외 최고 갤러리들의 지점과 가나아트, 박여숙화랑, P21, 갤러리 바톤 등 국내 주요 갤러리는 물론 파운드리 서울 같은 힘 있는 신생 공간이 함께 위치하고 있다. 저마다 개성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글로벌 아트 신과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공간들이다. 단순히 해외 작가들의 국내 전시에 그치지 않고 국내 작가들의 해외 무대 진출에도 힘을 쓴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두보라고 하겠다.
  
아트 디스트릭트로 떠오른 한남동아트 디스트릭트로 떠오른 한남동
Gallery Joeun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3
 
재개관을 앞둔 리움미술관 앞 한적한 골목, 지난해 유엔빌리지길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갤러리 조은에서는 탕크(Tanc), 김병주, 이재훈이 참여한 세 번째 한남동 앙상블 전시 «Ensemble at Hannam 3rd»가 한창이다. 조은숙 대표는 “하나의 작품처럼, 하지만 작가마다의 개성과 작품성을 살리기 위해 설치의 묘미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하며 작품을 감상한 다음, “갤러리 중정에서 꽃과 새와 나비의 풍경도 부디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고 귀띔했다.
 
갤러리 조은을 이전하면서 어떤 예술적 목표가 있었나? 
갤러리 조은은 2016년 1월 유엔빌리지길에서 개관한 뒤 한남동의 중심 갤러리로 발돋음하면서 좋은 기획전시를 여는 갤러리로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예술적 목표는 “한류의 정점이 곧 한국 미술”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미술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한남동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터’에 대한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한남동에 자리 잡기 전에 인사동, 북촌, 평창동 등 여러 곳을 둘러 보았지만 한남동을 만나고는 서슴없이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동 갤러리를 운영하며 생긴 일종의 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전 특별전이었던 «오세열: Ingenuous genius»다.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고객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소장하는 작품”이라며 작품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르고 도록에 기록해둔 적이 있다. 갤러리스트는 그런 장면에 큰 보람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관람객이 이 공간에서 발견하길 바라는 새로운 풍경이 있다면? 
새롭다기보다는 언제나 긴장하면서 추구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동선이다. 애초에 이 공간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것도 동선 디자인이었다. 또한 갤러리의 중정에 나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만 발견할 수 있는 꽃과 새와 나비의 풍경을 부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아주 먼 미래에도 미술관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뉴욕 모마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10 am is when you come to me 2006〉을 마주한 순간을 대체할 만한 경험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