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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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다

정원의 아름다움은 꽃과 풀의 색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조경가 정영선은 알고 있다. 땅을 주시하고 맨손으로 흙을 다지고 시간을 견디고 난 후에 들려오는 노래. 그 듣기 좋은 화음이라는 것을.

BAZAAR BY BAZAAR 2021.06.10
 
흙을 매만지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

흙을 매만지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

어떤 종을 심을지 분류해둔 그림.

어떤 종을 심을지 분류해둔 그림.

 
«정원 만들기 GARDENING»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 피크닉. 전시장이 문을 닫는 월요일 아침, 꽃 무더기와 함께 조경가 정영선이 옥상을 찾았다. 작업이자 조경의 일환으로 꾸린 옥상 정원을 손보기 위해서다. 모종 한 판을 훌쩍 들어 바쁜 걸음으로 화단에 걸쳐 놓고 이미 생명이 뿌리내린 곳 사이사이 여백에 새로운 색채를 심어넣는다. “땅을 아이 다루듯 쓰다듬어야 해요.” 맨손으로 흙을 두드리고 어루만지니 여리여리한 꽃대가 우뚝 선다. 꽃인지 잡초인지 그냥 봐서는 구분도 안 가는 것을 순식간에 쑥쑥 뽑아내고 시든 것들은 손톱으로 톡톡 끊어낸다. 흙을 가득 머금은 손을 보이며 웃는다. “내 손이 그냥 손이 아니에요. 가위손이지.” 조경가가 회심으로 가져온 흰 작약은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화단에 자리한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앉아서도 본다. 주먹보다 더 큰 꽃을 펑펑 피워낸 작약의 제자리를 찾는 움직임이 묵직하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조금씩 멎는다. 하늘에는 아직 구름뿐이다. 호미를 내려놓고 숨을 돌리는 조경가에게 날씨가 야속하지 않느냐 물어본다. “일하는 사람들이 날씨 탓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뙤약볕보다는 오만 배 나아.” 껄껄 웃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땅을 고르는 정영선 조경가.

땅을 고르는 정영선 조경가.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피크닉의 옥상 정원.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피크닉의 옥상 정원.

 
조경의 화두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봄과 겨울이 다르고, 올해와 10년 후가 다르다고요. 
조경이라는 것이 당장 한 상태로 확정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우리 집 정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때는 아침이에요. 아침에 해가 뜰 때 정원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분위기로 바뀌는지 보는 일. 하루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지금 모습을 일 년 후에 와서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 거예요. 더 무성해지고 더 빽빽해지고 또 어떤 부분은 교체될 수도 있고. 땅속에서 싹이 올라오고 자라면서 꽃이 피고 시드는 과정을 전부 다 읽고 이해한 느낌을 정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날씨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등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현장은 단 한 군데도 같은 곳이 없어요.
 
오늘도 정원을 매만지셨죠.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변화를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피크닉엔 처음에 식물을 덜 심었어요. 자기완결적으로 끝을 내는 작업이 아니니까 적당히 내 일거리를 내가 남겨둔 거예요. 때가 되면 갖다 넣어줘야지 이런 식으로.(웃음) 대부분의 정원들이 생각했던 대로 시간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어요. 자연 재해나 관리 부재, 사람이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조경은 결국 그 공간을 소유한 사람의 몫이 가장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호텔은 금방 사람이 바뀌어요. 느닷없이 일본식으로 바꿔달라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웃음) 초반에 관이 주도하는 공사를 많이 했어요. 지방에서 온 이들이 많으니 향수를 상징하는 장독대 조형물을 놓으라는 지시를 하거나 담당자가 바뀌면 그들 한마디에 가로수고 뭐고 다 갈아엎어야 했어요. 우리가 만드는 터전의 풍경과 삶의 자세는 그렇게 결정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점점 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거죠. 우리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분위기였으니까.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전경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전경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전경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전경

 
예술의전당,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예술과 역사의 공간 외에도 병원이나 대규모 도시 조경, 도시 재생과 맞닿아 있는 선유도공원까지 폭넓은 작업을 하셨어요. 큰 카테고리 안에서의 작업 방식은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조경에서 제일 신경을 쓰고 싶은 공간은 병원입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위로가 될 수 있는 공간. 환자를 돌보는 가족과 의사, 간호사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선유도는 원래 있던 정수장 시설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대적 흔적이니 잘 살려보기로 했죠.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땅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주변 환경을 전부 꼼꼼하게 봐야죠. 개인 정원은 주어진 작은 공간에 생명을 심는다면 앞에 언급한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에서 국토 전체의 한 가닥 한 가닥을 정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아파트든, 병원이든, 예술 공간이든 땅과 가장 잘 맞는 풍경을 찾으려고 해요. 가능하면 한국적인 것을 재해석해 현대생활에도 충분히 아름답고 그윽하고 멋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조경가 님이 작업한 곳들에서 공간이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엿보입니다. 
제일 중요하지요. 팬데믹이 더욱 그 사실이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 철학자 특히 임마누엘 칸트의 글을 읽어보면 그 당시 정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생각할 힘도 기르고 스트레스도 없애고. 우리가 만나는 녹색 공간은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치유의 공간은 집이 될 수도 있어요. 비싼 소나무로 정원을 꾸미라는 것이 아니라 한 포기의 풀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슬이 맺힌 모양을 본다든지, 잊고 있었는데 꽃이 하나 쓱 올라온다든지.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여백이 많아도 좋아요. 상추 하나면 어떤가요? 더불어 지내고 대화하는 시간이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최초의 여성 기술사이시죠. 조경이라는 분야에 이름이 막 붙을 즈음 어떻게 이 길을 찾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서양 선교사가 만든 학교와 사택이었던 우리 집, 서양인들이 사는 집 정원에 풍성하게 핀 꽃들. 여러 풍경 속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가꾸던 과수원 풍경이 꿈결같이 뇌리에 박혀 있어요. 아버지는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꽃을 무지하게 좋아하셨어요. 너무 가난한 시절이었는데 돈을 아껴 정원에 꽃을 심으셨죠. 제가 대학 가 있을 때 어머니한테 편지가 왔는데 ‘못 살겠다’고, 아버지가 돈을 털어 동양란을 백 개 사는 바람에 먹을 쌀도 없다 할 정도로.(웃음)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이 일을 하게 되었나 봅니다.  
 
색의 조합이 한눈에 보이는 구상도.

색의 조합이 한눈에 보이는 구상도.

 
피크닉에 전시된 정영선 조경자가 직접 쓴 강의 원고.

피크닉에 전시된 정영선 조경자가 직접 쓴 강의 원고.

 
아버지의 영향일까요? 조경가가 되기 전 기자와 교수로 일하셨어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고 존경해요. 국민학교 다닐 때는 동요집을 사주시더니 중학교에 들어가니 그게 당나라 시집으로 바뀌었어요. 과수원에 앉아 사과꽃이 날리는 걸 보면서 시를 읽고 외웠어요. 시화전과 백일장에 나가면 늘 상을 받았어요. 집에서는 당연히 문학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농대에 가겠다고 하니 분란이 일고. 아버지의 지인이 박목월 시인이신데 그분이 “괜히 문과의 나쁜 물 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농대를 보내라고 설득을 해주셨어요.(웃음) 잡지사 다닐 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차도 사주시고 그랬죠. 농과대학을 다니며 시심을 기르는 게 나을 거라 하셨지만 결국은 조경을 하게 되었어요.    
 
박목월 시인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네요. 조경가 님을 ‘땅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하니까요. 
정원을 만드는 것, 조경은 자연을 상대하는 하나의 예술로 봐야 해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닙니다. 끝없이 설계를 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려면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영감의 원천은 시집이에요. 예전에 아버지가 주신 당나라 시집은 이제 아주 너덜너덜해요.
 
50년 이상을 일하셨습니다. 처음 했던 작업을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늦게 환경대학원에 갔는데 졸업반 무렵에 경연이 하나 있었어요. 경주 불국사 앞 호텔을 철거하고 그 공간을 불국사 영역으로 확장하는 일이었어요. 팀을 짜서 기획안을 냈는데 덜컥 우리가 돼버린 거예요.(웃음) 건축 쪽 사람들은 테크닉과 디테일에 중점을 뒀다면 저는 옛날 사찰은 이랬고 경관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풀었는데 그게 당선된 거죠. 여름방학 내내 합심해서 작업을 하고 경주에 가 시장한테 보고하고 그렇게 일을 마쳤어요. 아주 오랜 세월 지나고 가서 보니 “이곳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학생들이 만든 것입니다”라고 새겨진 돌이 하나 놓여 있더라고요. 아이고. 눈물이 나려 하네요.
 
선유도 공원 전경.

선유도 공원 전경.

 
선유도 공원 전경.

선유도 공원 전경.

 
많은 작업물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을까요?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으며 작업할 수 있었던 희원이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나를 크게 키워준 일이기도 하고. 우리 직원들과 일한 선유도공원도 그래요. 어떤 사람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선유도공원에 방문했다가 위로를 받아 살았다고 편지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사실 이놈이 더 좋고 이놈이 덜 좋고 하는 게 없어요. 다 애정이 가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개인 공간 작업도 그렇고요.
 
이번 전시 «정원 만들기 GARDENING»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정영선이라는 조경가와 우리나라 조경의 한 부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를 보면 폭격으로 대피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그 상황에서 여주인공이 덜덜 떨면서도 조루에 물을 받아 창가의 화분에 뿌려줘요. 나는 이제 대피하러 가는데 얘한테 물을 줘야 되겠다. 나의 반려로서 존중하고 사랑하고 쓰다듬고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거창한 건 없어요. 마당이 없고 옥상이 없어도 작게나마 시작해볼 수 있는 작은 단서를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아까도 나무를 설명하며 얼마 전에 본 프랑스 영화를 말씀하셨어요. 
다큐멘터리나 영화, 전시를 맹렬하게 봐요. 돈도 적게 들고 간단한 방법이니까요. 집에 앉아 정원 서적을 들여다본다? 그런 건 없어요. 프랑스 어떤 지방에서 어떤 건축물을 짓는지 화단에는 어떤 꽃이 있는지 언뜻 보이는 것들로 공부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커피 한 잔 들고 정원으로 나가는 거지 뭐.(웃음) 나가서 애들이 잘 잤나 하고 둘러봐요.
 
희원 전경.

희원 전경.

 
작업이 없을 때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집에서도 정원 일 하기 바빠요. 종일 해도 모자라요.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이만큼. 어차피 힘들어서 종일 풀 뽑는 일은 못 해요. 집 정원이 커서 할 게 너무 많고요. 사실 하루 종일 일이 없는 날이 드물어요. 잡초 뽑는 데 인부도 불러봤지만 우리나라 식물이 어느 게 잡초인지 구분이 잘 안 되다 보니 풀을 깎으라고 하면 다 깎아버려요.(웃음) 정원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돈 받아도 못하는 일이에요.
 
집 정원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어떤 나무가 서 있는지 그려보게 되네요. 
정원은 여러 개가 있어요. 집 앞쪽, 뒤쪽, 옆쪽. 우리나라는 나무를 지나치게 많이 심는 경향이 있어요. 다 그늘이고 그늘이 지면 대책이 없어요. 이 그늘 아래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실험하고 있어요. 해가 안 드는 쪽에는 이끼랑 고사리를 심고 양지 바른 곳에는 꽃을 심고. 어떤 색이 어울릴지 연습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앞마당 요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꽃만 딱 심어놓았어요.
 
50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 아직 현장에 계신 건 일의 즐거움 때문이겠지요. 
아직도 현장에 나가는 건 지금까지의 내 일을 믿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예요. 그런 믿음으로 일을 맡겼는데 소홀히 하면 “야가 왜 이리 하나” “얘가 맛이 갔구나” 이 소리 들을까 봐.(웃음) 나뿐 아니라 누구나 자기 일을 열심히 해요. 옆에서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고 주어진 기회가 다 좋았던 것뿐이에요.
 
앞으로 조경을 유심히 살펴보며 정영선이라는 이름을 찾게 될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잘못 걸렸어.(웃음) 이때까지 비교적 사생활은 지키면서 묵묵히 지내왔는데, 이번에 전시하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말이 그렇지 앞으로 덜해야죠. 이제는 나이가 드니까 그렇게 사랑하던 꽃 이름도 생각이 잘 안 날 때가 있어요. 이 마당에 내가 무슨 욕심을 더 부려요. 그냥 즐기는 거죠 뭐. 물려줘야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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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표기식,양해남(희원,선유도 공원,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웹디자이너/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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