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발걸음을 즐겁게 하는 서울 도심의 건축물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눈과 발걸음을 즐겁게 하는 서울 도심의 건축물들

일상의 회복을 꿈꾸는 언택트 시대, 건축물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BAZAAR BY BAZAAR 2021.05.19
 
 
브릭웰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시소 서촌은 일명 브릭웰로 불린다. 얇은 벽돌로 쌓아 올린 외벽과 중앙의 소소한 정원이 인상적인 이곳은 인스타그래머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서촌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부상했다. 건축사 사무소 SoA(Society of Architecture)와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Loci)가 설계했다. 대림미술관 부근, 서촌 특유의 좁은 골목으로 발을 옮기다 보면 통의동 백송터와 인접한 브릭웰을 만날 수 있다. 좁은 골목 안에 세련된 건물이 비밀 아지트처럼 숨겨져 있는 사실에 먼저 놀라고, 브릭웰이 나무 밑둥만 남아 있는 백송과 이웃끼리 대화하듯 친밀하게 이어진 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바로 작은 정원에 매료된다.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중정이자 쉼터다. 1층 정원에서 고개를 들면 4층 건물을 관통하는 지름 10.5미터의 아트리움과 시원하게 뻥 뚫린 하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브릭웰이 '벽돌 우물'을 뜻하는 것처럼 우물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즉 작은 연못을 지닌 정원의 정중동에 심취하다가 곧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정원의 기운과 함께하게 된다. 더불어 브릭웰의 내부는 중정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어 건물이 정원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둥글게 회전하는 동선을 따라 올라가면 안쪽을 향해 테라스가 있어서 각층마다 다른 정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벽돌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이 건물의 숨구멍처럼 생기를 더하는데, 특히 4층의 글래스하우스는 풍부한 빛을 공간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4층 테라스의 의자에 잠시 앉아 서촌의 빛과 바람을 만끽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사진/ 신경섭 


문화비축기지
2010년대는 재생 건축이 화두였다. 그 열풍은 40여 년간 석유비축기지로 사용했던 산업화시대의 유산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재생 건축이 과거 건축물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롭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마포(성산동)의 문화비축기지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탱크를 해체하고 유리로 된 벽체와 지붕을 얹은 파빌리온, 매봉산 암벽과 콘크리트 옹벽이 어우러져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야외 공연장, 파빌리온과 공연장의 탱크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외벽에 활용해 재생을 넘어 재창조로 나아간 커뮤니티센터 등은 존재 자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린 복합문화공간에 홀로 있으면 탱크의 거대함과 적막함이 피부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히 다가온다. 이곳이 지닌 역사적 가치나 건축의 의미도 소중하지만, 석유 탱크 안은 굉장히 생소한 경험을 준다. 또한 일부만 남은 콘크리트나 녹슬고 부식된 탱크의 철판 등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존재와 소멸, 시간성을 체험하게 만든다. 기억의 힘을 상기시키는 이 공간을 긴 여운이나 영감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위로의 건축’이라고 칭하고 싶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유리 천장이나 탱크에 비가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나 빗방울의 흐름이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낸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건축물이 빗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돋보이며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문화비축기지 제공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
서울 청담동 명품 거리에 네 개의 검은 화강암 기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 나타났다. 일찍이 검은색의 회화적인 가능성을 탐구했던 화가 피에르 술라주가 ‘우트르누아르(초월적인 검은색)’라고 명명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이 검은 존재는 빛과 만나 조형적인 힘을 발휘하고, 투명한 유리와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마치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의 속성처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유혹하는 건축물은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다.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도메니코 돌체는 “돌체앤가바나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은 모두 유니크하다. 이 스토어 역시 서울만을 위해 디자인되었고 어떤 스토어에서도 같은 디자인을 볼 수 없다.”며 서울 스토어의 차별점을 내세운다. 즉 돌체앤가바나의 창의성과 DNA를 담은 서울 스토어는 유일무이하다. 공동 설립자 스테파노 가바나 역시 “우리의 스토어가 항상 혁신적이고 색다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시에 스토어가 위치한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기를 소망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방문하는 스토어에 따라 매번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라고 소개한다.
 
검은색에 매료되어 스토어에 들어오면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공간 구조에 놀라게 된다. 장 누벨의 건축 미학은 단순히 외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일 나선형 경사로가 소용돌이처럼 매끄럽게 연결되며 4층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품 거리를 거닐던 발걸음은 스토어 안에서 산책하듯 한가로이 흘러가게 된다. 누벨은 각종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지역에서 미적 차별화를 고민하였고, 독특한 층 구조와 블랙 나선형 경사로로 돌체앤가바나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담아낸 것이다. 고객은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배치된 메인 디스플레이를 통해 돌체앤가바나 컬렉션을 관람하면서 걸어 올라가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회전하듯이 올라가면 유리를 통해 외부가 한눈에 들어오거나, 검은 화강암 기둥 안쪽 공간에 제품을 진열한 작은 코너룸이 마련되어 있어 잠시 발을 멈추고 쉬어가듯 관람할 수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무의 음영, 잿빛 콘크리트 등을 세련되게 활용한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돌체앤가바나의 화려하고 우아한 제품을 돋보이게 만든다. 돌체가 “고향 시칠리아 섬과 패치워크에 보내는 찬사”라고 칭했던 돌체앤가바나 2021 S/S 여성 컬렉션 ‘패치워크 디 시칠리아(Patchwork di Sicilia)’ 등을 만날 수 있다. 누벨의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내부 공간은 “우리에게 패션이란 바로 유니크함, 열정 그리고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는 가바나의 신념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부터 반원형 캐노피가 있는 건물 위 테라스의 모던한 공간까지 곳곳에 누벨의 인장이 찍혀 있는 이 건물은 가히 ‘뉴노멀 시대의 건축’이라 부를 만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누벨이 서울에 방문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의 도전적 과제가 있었다고 토로한다. “첫 번째 도전은 스토어에 나선형 경사로를 구현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도전은 코로나로 인한 원격 작업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진행한 첫 건축 작업이었다. 이 건축물은 전파를 타고 여행하고, 스크린을 통해 웅장한 구조가 세워지고, ‘GoToMeeting’을 통한 소통으로 완성된 프로젝트다.” 전 지구촌을 고립시킨 역경조차 누벨의 모험정신과 열정을 막을 순 없었고, 그의 숨결을 품은 건물은 섬광을 발하고 있다.
 
빛의 건축가, 장 누벨과의 인터뷰
2008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로 루브르 아부다비,카타르 국립박물관 등 설계로 유명하다.
©Albert Watson

©Albert Watson

 
리움 미술관,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 등 작업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지만, 건축물이 위치한 지역의 특성, 시기에 따라 각자만의 고유하고 완전히 색다른 매력이 있다.
 
돌체앤가바나 스토어 작업을 할 때 어떻게 브랜드의 철학을 반영했나? 
돌체앤가바나의 아이덴티티인 우아함, 패션, 다채로운 소재를 염두에 두고 서울 스토어 건물에 이를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목표는 건축물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올 블랙에 가까운 매장을 만드는 것, 그리고 건축물 안에서 돌체앤가바나의 다채로운 세계가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 외관의 검은색은 매우 강렬하다. 검은색이 아름답고 숭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의 메인 컬러를 왜 블랙으로 결정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강렬한 대비가 필요한 공간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는 블랙이 아닌 다른 컬러를 사용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를 찾는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하기를 희망하나? 
일반 건축물과 다르게 패션 스토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 스토어를 작업할 때는 이 공간에서 우연한 만남이 생기거나 자아성찰을 유도하는 등 특별한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사진/ 돌체앤가바나 제공


전종혁은 영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주로 평일 낮에 한가로이 미술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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