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성모성지에 위치한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작년 가을에 완공되었다. 건축가는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Mario Botta)로 중세 교회건축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두 개의 41미터 높이 탑이 솟아 있는 웅장한 성당은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에 녹아들면서도 풍경에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건축적 기능에 집착하기보다는 완성된 공간을 통해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보타의 철학이 잘 반영된 건축물이다. 대성당의 붉은 탑은 마치 등대처럼 성모성지를 밝히고 방문객을 안내한다. 정문 입구에서 언덕을 향해 한참을 걷고 나면, 붉은 탑을 향한 걸음은 대성당 안으로 이어진다. 보타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계단”이라고 칭했던 계단을 올라야 대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설렘은 곧 감동이 된다. 대성전 안에 머물면 온화한 공간의 힘에 서서히 매료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성전은 빛과 소리로 숭고함을 빚어낸다. 배기구 기능을 겸한 두 탑은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도록 설계되었는데, 반원형의 지붕창으로 빛이 들어와 탑 하단부인 대성전 제대까지 쏟아진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빛이 들어오는데, 하지에는 빛이 제대 뒤편의 공간을 가득 채우며 '천사의 날개'를 만들기도 한다. 빛만큼 강렬한 사운드를 경험하고 싶다면 오전 11시 미사에 참석하면 된다. 노랫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대성당 건립을 위해 헌신한 이상각 신부의 말대로 “생명력이 넘치는 건물”이다. 사진/ 남양성모성지 제공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열린책들이 파주 출판도시에 세운 미술관이다. 미니멀리즘 건축을 대표하는 포르투칼 출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Alvaro Siza)가 설계했으며, 건물 형태는 고양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외형을 지닌 뮤지엄이다. 동쪽 면의 직각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서쪽 면은 유기적인 형태다. 뮤지엄 입구에 서면 곡선이 부드럽게 강조된 연회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실체를 드러낸다. 잔뜩 웅크려 있다가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의 모습을 닮았다. 출입구에 위치한 카페와 안으로 이어지는 북앤아트숍에는 열린책들의 서적이 정겹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이 카페만큼 뮤지엄의 기운을 간직한 채 안락함을 선사하는 곳은 많지 않다. 절제된 모더니즘의 수혜를 입은 전시장 내부는 이른바 백색의 향연이다. 이 백색 공간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직선과 유려한 곡선이 만들어낸 건축적 리듬과 그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광이다. 10년 넘게 이곳을 방문했지만, 전시실의 빛과 평온함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시자는 “건축에 대해 생각할 때, 무엇보다 안정성, 고요함, 그리고 존재감을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의 신념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제공

대형 터미널 같은 더현대 서울의 외관은 한국의 단청과 기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으며, 기능 속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대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의 작품답게 퐁피두센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이테크 느낌이 강한 외관의 인상과 달리 내부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위압감을 중화시켰다. 높은 유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 채광 덕분에 조경 공간은 온실처럼 아늑하고 쾌적하며 수평적 단조로움을 깨트리는 파격적인 보이드 공간은 개방감을 더한다. 입장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오픈 스페이스의 중심에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워터폴 가든이다. 12미터 높이의 인공폭포 주변에 만남의 장소처럼 휴식 공간이 꾸며져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워터폴 가든을 위아래로 살펴볼 수 있고, 지루할 틈도 없이 디자인알레가 설계한 5층의 사운즈 포레스트에 이르게 된다. 1천 평 규모의 실내 정원으로 쇼핑하는 동안 인파에 시달린 피로를 풀고 재충천할 수 있는 공간. 백화점에 이식된 자연을 누리는 더현대 서울만의 특별함이다. 사진/ 박지만

작년 9월 오픈한 스페이스K 서울은 빌딩이 빽빽한 마곡 산업단지 내 한다리문화공원에 위치해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매끄럽게 마감된 미술관은 높고 수직적인 주변의 빌딩 풍경과 대조를 이룰 정도로 낮고 수평적인 모습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먼저 격자도시 블록 일부를 비워 만든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뜻밖의 장소에 자리 잡은 소박한 공원이 도심 속 허파로 기능하고 있다. 다양한 방향에서 아치를 그리는 보행길은 자연스럽게 공원 내부로 수렴하며, 걸어 들어가면 곧 아치 형상의 미술관 입구와 마주한다. 즉 직교 도로 체계로 구성된 마곡 신도시에서 만나는 비정형의 건축물이다. 직선의 세계에서 발견하는 곡선! 곡선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이 강조된 이 지상 2층 건물은 마치 작은 언덕처럼 공원과 하나되어 있다. 지상과 건물 옥상을 연결하는 곡선의 경사로와 계단이 건축물과 공원을 어우러지도록 만든 점도 인상적이다. 유기적 생동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시민에게 계단형 광장을 제공하는 옥상공원은 미술관의 포용과 나눔을 그대로 대변한다. 전시장은 다소 아담하지만 건물 내부의 곡선과 경사진 천장이 공간적 볼륨감을 풍성하게 만들어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건물이 주는 편안함을 지속시킨다. 사진/ 신경섭
전종혁은 영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주로 평일 낮에 한가로이 미술관 산책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