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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가 주목하는 두 명의 여성 신인 아티스트

목적성 없는 붓질이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회화에 고착된 관념을 경계하며 지속적으로 회화성을 탐구해온 박경률 작가의 흥미로운 실험.

BYBAZAAR2021.05.06
 

Park 

Kyung 

Ryul 



박경률 작가의 회화는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림 속 회화 요소들은 어떤 질서나 연관성을 갖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작가는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선, 면, 색으로 나타내고, 그것의 위치와 배치에 따른 구성만으로 내러티브를 일궈낸다. 원앤제이 갤러리의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는 지난 4년간 작가가 실행해온 작업을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로, 2017년 조각적 회화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작까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On Evenness〉, 2017, 캔버스에 유채, 50x70cm, 원앤제이 갤러리.

〈On Evenness〉, 2017, 캔버스에 유채, 50x70cm, 원앤제이 갤러리.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조각적 회화’라 일컫는다. 어떤 방법론인가?
조각적 회화란 회화를 회화적이게 하는 것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회화에 따라다니는 서사에 대한 강박을 비끼며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고정된 형식에 대한 질문이자 내레이션 회화의 불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이것의 핵심은 개별적 붓질을 오브제로 인식한다는 것에 있다. ‘조각적’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각각의 붓질은 독립된 공간성을 획득한다. 화면 위의 형상적 이미지부터 작은 붓질까지도 내 회화에서는 균질한 회화의 요소가 된다.
 
 
내레이션 회화와 구별되는 작품의 특징은 무엇일까?
소위 내레이션 회화에는 전면과 후면이 있고 배경과 형상 사이의 위계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회화의 규칙을 벗어난다. 화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뿐만 아니라 캔버스 천의 종류, 물성적 재료, 그림을 그리는 내 신체적 행위와 본능적 성질까지 회화적 요소가 된다. 작업이 평면을 벗어나 설치 형식으로 확장되면, 빛이나 중력, 시간 등의 비물질적 요소도 회화의 재료로 수용한다.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작업이 전시 공간에서 건축적, 비물질적 요소와 만나 하나의 오브제로서 어떤 내러티브를 촉발시킬 수 있을지 실험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On Evenness〉 설치 전경, 2019, 백아트갤러리.

〈On Evenness〉 설치 전경, 2019, 백아트갤러리.

 
평면회화에서 빠져나온 듯한 오브제 설치회화 실험의 시작은 2017년 〈On Evenness〉였다. 이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내 작업은 평면회화와 설치회화로 구분된다. 이 중 설치 작업이 ‘On Evenness’ 시리즈에 해당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On Evenness〉(2017)는 현재 작업의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단계에서 제작한 그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 작업들의 핵심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확장된 관점을 갖게 된 계기는 2017년 런던 사이드 룸(Side Room)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전시 «New Paintings»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된 벽돌 건물 안에서 진행됐는데, 조명조차 자연광으로 대체했다. 날씨가 흐리면 작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전시장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 같았다. 이후 그런 상황들이 회화의 일부로 보이면서 공간과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평면회화와 설치회화는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 
두 작업 모두 회화의 공간을 다룬다. 물리적으로 얕은 2차원의 캔버스 공간과 전시장의 깊은 공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평면회화에서는 사용하는 물성(사용하는 재료와 작동시키는 몸), 설치 작업에서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작업을 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지점이다.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나? 
언어의 형식 실험에 관심이 많다. 18세기 소설가 로렌스 스턴은 서사의 구성을 뒤바꾸면서 직관적 글쓰기에 주목했고, 19세기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글의 구조에 대한 실험을 했다. 나는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내 작업을 명확한 언어로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대신 내가 그린 수많은 이미지들이 어떻게 예술성을 획득하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대부분이 공백에서 시작하고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까지가 작업의 프로세스다.
 
그동안 ‘회화성’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다. 회화적 실험을 해나가는 이유는? 
’그리기’라는 인간 본연의 행위에 조금 더 가깝게 접근해보고 싶다. 보통 나는 아주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목적성 없이 그림을 그리고, 앞서 그린 그림과 매번 다른 조건에서 실험하면서 회화 매체의 잠재력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는 대부분 내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에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지만, 언어적 설명이나 어떤 개념 이전에, 그림을 물리적 요소로서 다루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의식적 그리기’에 대한 실험도 했다. 2013년 치매 할머니들과의 협업은 현재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치매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는 아주 오랜 시간 궁금했던 ‘무의식’에 관한 것이다. 이 용어는 예술 안에서 자주 호명된다. 이와 관련하여  〈가능성의 릴레이〉(2013〉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를 취할까?’라는 질문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치매 할머니들에게서 엉뚱하고 논리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분들의 이야기는 꽉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무의식으로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추상적 접근을 넘어 구상 안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역조건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사) 구조에 주목하게 됐고, 이후 전시에서는 그림을 읽는 구조를 제시했다.
 
〈그림 3〉, 2020, 280x230cm, 원앤제이 갤러리.

〈그림 3〉, 2020, 280x230cm, 원앤제이 갤러리.

 
처음으로 돌아가, 어떤 계기로 회화 작가가 되었나? 
어릴 때부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해력이 부족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혹은 극복하는 방식으로 마주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드로잉을 택했다. 돌아보면 나의 교과서 네 모서리는 언제나 낙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기’라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식이 됐다.
 
그림을 그릴 때 사소한 습관이 있다면? 
나는 능숙함을 경계한다. 서툴더라도 새로움을 찾는다. 물론 새롭다는 것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무언가 편안하면 쉽게 지루해진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사용하는 재료와 마주할 때 늘 위태로운 긴장감을 유지하려 한다. 익숙함에서 달아나려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습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작가로서 좋은 점은, 환희와 좌절의 순간을 자주 맞본다는 것이다. 이 순수한 감정은 타인이나 타의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나와 그림 사이의 내밀한 시간 혹은 사건 사이의 일들이다. 결국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 예술가를 자유로운 영혼이라 말하는데, 여기서의 자유로움은 45도로 눌러 쓴 화가의 빵모자처럼 나태한 삶의 표상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내 행위의 주체가 오롯이 독립된 나라는 의미다. 물론, 내가 작가인 것과, 작가로 이 사회 혹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황보선은 변화를 꿈꾼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만지고 경험하며 결핍을 채워가고 싶다.  
 
 

Shin

Min 

 
신민 작가의 작업을 좋아한다. 눈에 구멍을 낸 소녀상들 속에 연기를 피워 성범죄 피해 아동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딸기코의 딸들〉(2011),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치프라이 포대로 만든 알바생 군상 조형 작업(2013~2015), “차별과 혐오에 당당히 No를 외치자”는 의미의 문구가 적힌 유토 원형 두상 3백여 점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인 〈No〉(2017),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가 삐라를 뿌린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Flyer〉(2018)까지. 모두 성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쩐지 유약하고 서글픈 구석이 있는, 그가 만들어낸 인물에 정이 쏠린다. 그 마음만큼 인스타그램(@fatshinmin)에 눈을 뗄 수 없다. 지난 1월부터 ‘좋아하는 것’이라는 제목을 달고 사진과 글이 쌓였다. ‘모든 안면근육을 잡아당겨서 웃음명령신호를 보내는 절도 있게 팽팽히 꽉 묶은 머리’, ‘제조 막바지에 마음속으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말하면서 음식 내놓기’. 그가 좋아하는 건 그의 작품이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더니 84번째 게시물이 올라왔다. 유쾌하고 찡한 글을 설명서처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마다 그들 속에 각자 時(시)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종이와 풀과 연필과 향불로 내 식대로 만들어왔다. 찢을 수 있고 태울 수 있고 물에 녹는 종이를 여러 번 반복해서 붙여서 단단하게 만든다. 땅에 발 딛고 설 수 있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약한 존재이지만. 정성을 다해 반복해서 붙인다. 사람을 만드는 심정으로. 그리고 그 안에 마음을 넣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넣는다. 죽어도 절대로, 포기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넣는다.  


인스타그램에 번호를 붙여 연재하듯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스스로 인스타그램 중독자라고 했는데. 서비스직 일을 하면서 일과 여가 시간이 분리되지 않았다. 
모든 문제는 개인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강하게 가스라이팅하는 조직 문화에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졌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동료가 인스타그램에 매일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올려보라고 하더라. 매일매일 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오늘 83번째 좋아하는 것을 올렸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삶이 늘 괴롭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좋다.
〈좋아하는 사람 48. 조르주 멜리에스. 그의 매력적인 창작물도, 노년에 작은 문방구를 운영한 것도 내 작업에 엄청 영향을 주었다.〉


유일하게 꼽은 사람이다. 조르주 멜리에스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 영향받은 것들은? 
조르주 멜리에스의 생애는 나에게 많은 영감과 용기를 준다. 고집스러운 예술가의 견뎌내는 삶. 그의 편집 기법과 환상적인 영상은 지금 봐도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그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고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도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며 계속 삶을 살아냈다. 나는 미술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술을 배워야 밥을 먹고 산다고 해서 공대에 들어갔다. 미대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서 회화과 청강을 신청했는데 회화과의 한 미국인 교수님이 허락해주었다. 결과물을 보여줄 때마다 “어메이징! 지니어스!”를 남발하셔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가 되려면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계속 만들고 싶어서 딸기코라는 독립출판 레이블을 만들었다. 거기서 만든 종이접기, 사진기, 드로잉 잡지를 포트폴리오로 레지던시에 입주하게 되었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서비스직 일자리를 구했고, 일터의 동료들과 같이 일하면서 느끼는 것들, 생각들을 종이로 만든 사람들로 표현하게 되었다.
〈54. 작업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데모, 최소한의 행동이에요.〉
 
〈Workers〉, 20x16cm, 목판에 연필, 2020.

〈Workers〉, 20x16cm, 목판에 연필, 2020.

 
많은 이야기가 본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성, 신체, 노동과 작업을 병행하는 일들. 그래서 이 문장이 인상적이다. 
모두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편지 쓰는 걸 무척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부친 편지를 상대방이 며칠 지나서 편지함에서 발견하고 기뻐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작업도 일종의 편지 쓰기다. 목적지가 있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내 작업의 목적지는 나와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한 부분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작용들을 보는 기쁨으로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것이 당장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의 행동이기도 하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좋아하는 것 20. 크라프트지. 사람 살 같다. 계속 만지고 붙이면 솜털도 올라온다.〉
 
스티로폼, 종이, 연필, 크라프트지를 사용한다. 어릴 적 미술 시간에 바가지에 종이를 붙여 탈을 만들던 기억이 나더라. 
종이의 장점은 불안정하다는 거다. 종이의 물성은 흐릿해지고, 찢어지고, 뒤틀리고, 좀먹는다. 무엇보다 종이에는 연필로 글을 쓸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겹겹이 계속 반복해서 적을 수 있다. 사람을 만들기 좋은 재료라고 판단했다. 인간. 인간의 몸. 살. 껍데기. 형상과 그 내용물에 관심이 있다. 장기와 혈액과 뼈 말고, 마음과 정신과 생각에 관심이 있다. 사람마다 그들 속에 각자 時(시)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종이와 풀과 연필과 향불로 내 식대로 만들어왔다. 찢을 수 있고 태울 수 있고 물에 녹는 종이를 여러 번 반복해서 붙여서 단단하게 만든다. 땅에 발 딛고 설 수 있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약한 존재이지만. 정성을 다해 반복해서 붙인다. 사람을 만드는 심정으로. 그리고 그 안에 마음을 넣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넣는다. 죽어도 절대로, 포기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넣는다.
〈좋아하는 것 31. 흙 조금 가방에 넣어가지고 지하철에서 작게 맨들기. 작은 사람은 목적지 역할을 해서. 큰 사람을 맨들 수 있다.〉
 
〈Schedule Time Table〉, 160x120x15cm, 종이에 연필, 2014.

〈Schedule Time Table〉, 160x120x15cm, 종이에 연필, 2014.

 
이전의 유토 작업이 불어난 것 같은 대형 작품을 만든다. 두 작품 사이의 관계는 크기와 상관없이 아주 가까울 것 같다. 
나의 관심사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존재감 있게 보여주어 관객에게 그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사람을 만들 때에는 관람객에게 나누어주었다. 관람객들이 작은 사람 조형물을 집에 가져가 책상 스탠드 옆에,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사진과 함께 위로받는다는 이야기를 SNS에 올린 것을 읽으며 보람을 느꼈다. 물질적으로 존재감이 큰 사람 조형물을 만들 때는 거대한 크기가 가지는 힘이 있다. 그리고 큰 사람을 만들 때 큼직큼직하니 시원하고 후련한 재미가 있다.
〈좋아하는 것 78. 셀프 인터뷰.〉
 
노트에 질문과 답을 쓴다. 무엇을 묻고 무엇을 답하나? 최근 들었던 의문은? 
스스로에게 거의 매일 이걸 왜 만드는지, 이걸 왜 하는지, 이걸 어떻게 만들 건지 묻는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노동자가 제일 미워하고 의심하는 존재는 내 옆의 노동자 동료일까.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고 문제를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우리는 어떻게 인류애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 69. 공공의 땅에 내 조각이 브론즈로 놓여진다면 뭘 할까 생각하기.〉
 
고민의 답은 나왔나? 
검정 새틴 리본이 달린 머리망을 한, 분노하는 서비스노동자 군상을 만들고 싶다.
〈좋아하는 것 27. 세 명의 여성 그리거나 맨들기〉  
 
〈Flyer〉, 가변크기, 노트에 연필, 2018.

〈Flyer〉, 가변크기, 노트에 연필, 2018.

 
머리망을 쓴 여성 세 명의 뒷모습, 정색하는 여성들. 모두 세 명이다. 
세 명일 때 조형적으로 가장 탄탄해서 좋아한다.
〈좋은 것 62. 지금 나의 친구들이 내 외모를 평가하고 놀리지 않는 거. 나 낼모레 마흔인데 매번 너무 감동받음. 아직도 적응이 안 됨.〉


인스타그램 아이디에 ‘fat’이 붙은 것은 
어릴 때 친구들 때문이었다. 지금 친구들이 많은 것을 바꾸었겠다. 나의 외모와 성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남을 미워하고 경쟁하는 삶보다 연대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 행동하는 멋진 친구들. 그리고 맛있는 걸 나눠주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 82. 문장 외우기. 문장을 외운다. 계속 까먹는데 계속 외운다. 머리에 밭고랑 내기. 돌머리여서 시간 걸린다.〉


최근 외운 문장은 무엇인가?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 중에서. “하지만 어쩌겠어요, 살아야죠! 우린 살아야 해요. 긴 낮과 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꾹 참아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아 그날이 오면.”
 
아직 쓰지 않은 새로운 좋아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서 한입 베어 물기 전에 비장하게 “출소 후 처음으로 먹는 핫도그다.”라고 중얼거리기. 무언가 먹기 전에 저 멘트를 중얼거리면 엄청 맛있고 한입 한입이 소중해진다.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좋아하는 SNS 계정은 팔로를 하지 않는다. 자주 보는 것보다 생각날 때 와락 몰아 보면 감동이 더 크니까. 그렇게 몇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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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황보선, 박의령
  • 글/ 황보선
  • 사진 / 맹민화, 박경률, 원앤제이 갤러리 제공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