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 캠코더에 테이프는 재사용하고 있다.
버리지 않고 계속 쓰는 이유
내가 6mm 캠코더를 처음 썼을 때부터 이미 신형 6mm 캠코더는 나오지 않았고 테이프도 생산이 중단된 상태였다. 캠코더는 중고 시장, 테이프도 남대문시장에서 사서 썼다. 힘들게 수소문해서 구했고 추억을 기록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 소비 패턴
새로운 룩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더라도 굳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요즘은 렌털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촬영에 꼭 필요하면 빌려 쓴다. 생필품을 제외하고 옷이나 신발처럼 나 자신을 꾸미는 데 돈을 써본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구매하려다 단념한 물건 아이패드. 콘티도 그리고 회의할 때 바로 자료를 찾아서 보여줄수 있다는 점이 편리하고 쿨한 감독처럼 보일 것 같아 혹했으나 펜과 종이, 갖고 있는 휴대폰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단념했다.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
꼭 필요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좋은 소비라 생각해 당장 생활이나 작업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사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내 자신에게 너무 각박한 건가 싶어 기분 전환에 도움되는 약간의 충동적인 소비는 허하고 있다. 다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기분이 안 좋을 때 혼자 카페에 가 케이크를 두 개(나) 주문해 퍼먹고 나면 한결 나아지는. 비슷하게 귀여운 열쇠고리를 사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사는 건 좋은 소비라는 생각이 든다. 이 행위를 쉽게 질릴 만큼 반복하는 건 나쁜 소비다.
오래 쓰는 물건이 주는 즐거움
오래 쓸수록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인격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 설정 버튼이 익숙해지는 즈음에는 ‘내가 얘랑 많이 친해졌구나, 우리 이제 친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작동이 잘 안 되는 날에는 카메라에 대고 “너 왜 그래 오늘? 미쳤어?” 화내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친구와 미운 정 고운 정 들 듯이 물건과 오랜 친구가 된다는 점? 그런 점이 재미있지 않나 싶다.
정다운(다큐멘터리 감독)


‘존 시스템’처럼 옅은 색부터 진한 색까지 그러데이션을 맞춘 20년 이상 입은 청바지.
버리지 않고 계속 쓰는 이유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문구를 철석같이 믿는다. 중학생 때 디자이너인 친척 언니에게 옷을 왕창 물려받았는데 고가이거나 독특한 옷을 보며 앞으로도 버리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수십 년을 돌고 돌아가며 입느라 버릴 새가 없었다. 청바지가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더더욱 사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
최근 구매하려다 단념한 물건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려다 손을 멈췄다. 우선 물가가 심각하게 비쌌다. 평소에 건강을 위해 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한 끼만 덜어내도 내 몸과 재산, 환경까지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
남이 써보고 좋아서 추천한 물건을 필요할 때 사는 건 좋은 소비, 남이 산 것이 예뻐 보여 무작정 따라 사면 나쁜 소비.
버리지 못한 물건의 지속가능성
몸무게가 버틸 동안 입다가 친척 동생이나 친구들의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옷을 물려받았는데 새것보다 안 좋다는 생각보다 당시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옷들이 멋지다고 느꼈다. 부디 그 마음을 아는 사람에게 전해져 오래오래 대물림되면 좋겠다.
오래 쓰는 물건이 주는 즐거움
시대가 다른 물건이 서로 놓여 뿜어내는 공기가 있다. 오래된 물건이 없다면 억지로 만들 수 없다.
박의령(〈하퍼스 바자〉 피처 디렉터)


10년 전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구입한 핀봉, 8년 전 런던 리버티 백화점에서 구입한 머천트 & 밀스의 줄자, 직원에게 선물 받은 가위 그리고 언젠가부터 늘 함께였던 샤프 펜슬.
버리지 않고 계속 쓰는 이유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늘 책상 위에 자리하고 있고 여전히 유용하게 쓴다. 이사를 가거나 쇼 백스테이지같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결코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오랜 시간 곁에 있기 때문일까? 마치 애착인형 같은 소중한 마음이 생겼다.
평소 소비 패턴
좋아하는 물건은 계속 끼고 사는 편. 즉 잘 버리지 못한다. 다만 이제 집이고 사무실이고 무언가를 놓을 공간이 협소해진 까닭에 새 물건을 들이는 일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 얼마나 쓰임새 있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 또 고심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
날 위한 물건이든 남을 위한 선물이든 중요한 키워드는 단 하나, 취향이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의 첫 생일에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기자기한 마음을 담아 이런 저런 물건을 넣은 꾸러미를 선물했는데 고스란히 서랍에 잠들어 있다. 좋은 소비는 몇 해 전 방문한 레스토랑에서는 경험했다. 특정 메뉴를 고를 경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기에 냉큼 그 메뉴를 선택했다. 별거 아니지만 선한 영향력에 동참한 듯해 무척 기분 좋게 식사를 끝냈다. 이후 잉크 역시 연말 기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버리지 못한 물건의 지속가능성
핀봉은 고무줄이 다 해져서 튼튼한 엘라스틱 밴드로 수선을 했다. 샤프펜슬은 심만 생산된다면 영원히 쓸 수 있고, 무뎌진 가위 날은 계속 갈아주면 된다. 줄자의 숫자는 희미해졌지만 손때 묻은 그대로 읽는 노하우가 생겼다.
오래 쓰는 물건이 주는 즐거움
존재 자체가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이혜미(‘잉크’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