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 기자가 말하는 배우 윤여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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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 기자가 말하는 배우 윤여정

똑같은 세 글자인데 어떨 때는 삐죽하고 어떨 때는 뭉클한 이름.

BAZAAR BY BAZAAR 2021.02.25
 

윤여정 

 
한국에서 온 미나리의 정령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
 
여섯 살 외손주 ‘데이빗’(앨런 김)의 불평에 순자(윤여정)는 묻는다. “진짜 할머니 같은 게 뭔데?”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고….”
 
2012년 〈바자〉 12월호에서.

2012년 〈바자〉 12월호에서.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가족영화 〈미나리〉의 진짜 같지 않은 할머니 윤여정이 미국 영화상 시즌을 사로잡았다. 영어 제목도 한국말을 그대로 옮긴 ‘Minari’다. 영화를 첫 공개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관객상을 시작으로 미국영화연구소(AFI)의 ‘2020 올해의 영화 톱10’, 전미비평가위원회 여우조연상·각본상, 노스캐롤라이나 비평가협회 작품상·여우조연상·각본상 등 2월 7일까지 받은 영화상이 59관왕.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이 이 중 20개다. 출연 배우 전체가 받은 미들버그영화제·뉴멕시코비평가협회 앙상블상 2개는 별도로치고다.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가 연기한 순자는 미국에 이민 간 딸(한예리) 집에 머물러 온 할머니. 미국서 자란 꼬마 데이빗에겐 “한국 냄새 나는(smells like Korea)” 외할머니다. 순자는 한국서 싸들고 온 마른멸치·고춧가루를 붙들고 딸 모니카와 우는가 하면, “산에서 온 이슬물”(미국 음료수 마운틴듀를 순자는 이렇게 부른다)을 마시며 레슬링 중계를 즐긴다. 심장이 약해 뛰놀지 못하는 데이빗이 동네 미국 친구에게 자랑스레 전파하는 화투도 순자가 가르쳐준 것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현지 리뷰엔 “〈미나리〉의 사랑스러운 할머니”(〈버라이어티〉)에 대한 애정이 물결친다. 시사지 〈타임〉은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리자 “베테랑 배우 윤여정의 반짝이고 입이 거친, 극중 가족의 어른 역할이 후보에 못 올랐다”고 실망했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윤여정이 오스카 후보에 올라야 한다
 
(〈더 데일리 비스트〉)는 과장 섞인 염원까지 나왔다. 
 
사실 한국 관객에게 〈미나리〉 속 윤여정은 낯설지만은 않다.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 거침없는 입담 뒤에 배어나는 잔정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예능에서 이미 맛깔나게 변주돼온 그만의 매력이다. 3월 한국 개봉 후 영화를 보고선 미국의 극찬 세례가 어리둥절한 이도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윤여정 역대 최고 연기는 아닌데?’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다. 〈미나리〉는 올해로 배우 데뷔 56년 차인 그가 독보적으로 구축해온 연기 세계의 일각처럼 보인다. 예순에 늦바람 난 〈바람난 가족〉의 시어머니부터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하녀〉의 터줏대감 가정부, 〈돈의 맛〉에서 젊은 남자를 탐하는 재벌가 안주인, 버림받은 목숨들을 제 손으로 거둬주는 〈죽여주는 여자〉의 박카스할머니까지. 그간 윤여정의 대표작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끝’까지 세게 밀어붙인 캐릭터가 꼽혔다. 삶의 최전방을 향해 몸을 내던진, 시대성을 머금은 생생한 인물들.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그에 비해 〈미나리〉의 순자는 평범한 한국 할머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딸의 가족이 정착한 미국 아칸소의 낯선 시골에다 심는다. 그런데 어디에 살든 지켜내는 그만의 일상성이 바로 순자란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갖는 상징이자 비범함이다. 순자는 이름도 그저 순자다. 직접 파낸 지하수로 농장을 일구려는 젊은 사위 제이콥(스티븐 연), 먼저 자리 잡은 한인사회 속에 안착하길 원하는 딸 모니카와 다르다.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마다 “미나리는 한국의 허브”라는 설명이 붙게 만든 ‘미나리’란 제목처럼, 순자는 한국에서 했던 그대로 아칸소의 깊은 숲속 개울가에 미나리밭을 일군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 미나리는 ‘원더풀’.
 
이란 대사와 함께 미지에 대한 포용과 호기심, 삶에 대한 긍정을 빛나게 발산한다. 한국에서 온 질긴 생명력의 향기로운 허브가 가족의 삶을 결국 미국에서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리라 믿으며.
 
그러니까, 윤여정이 연기한 건 어디서든 살아남는 낯설고도 신비한 생명력 그 자체다. 미나리의 정령이랄까. 이민자 가족이 아니라 신화적 부족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그는 땅의 영령을 받들고 일족을 이끄는 제사장 같은 캐릭터였을 것이다. 극중 가족이 흔들릴 때 그의 육신이 흔들리는 설정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마치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처럼 훗날 그것을 극복할 힘을 마련하는 것도 그다. 〈미나리〉 말미 윤여정이 뿜어내는 기이한 연민과 초월의 기운은 한 번도 본 적없는 새로운 감각에 가깝다. 온 가족이 엉겨 붙은 뜨거운 아수라장 속에서 그는 당장 시들어버릴 듯한 모습으로 다른 이들의 기운을 길어낸다.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이 노련한 배우는 그런 함의를 질박한 외할머니 캐릭터에 감쪽같이 감춘 채, 땅에 발붙인 삶의 일부로 녹여낸다. 명감독들의 영화에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정이삭 감독은 그에 대해 “윤 선생님(영어를 주로 쓰는 정이삭 감독은 호칭만큼은 한국말로 했다)은 저격수처럼 어떤 이야기든 정확히 캐치한다. 많은 부분을 배웠다.”고 했다.
 
그건 나는 미션이에요. 전형적인 할머니,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전형적인 엄마 나 그런 거 하기도 싫어요. 내가 조금 이렇게 다르게 하고 싶어요.
 
윤여정이 지켜온 이 “필생의 목적”이 일흔넷 그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글/ 나원정(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


 
2017년 〈바자 아트〉 10월호에서.

2017년 〈바자 아트〉 10월호에서.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셨다.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이 턱없이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의 꿈같은 일을 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로 만드셨다. 2009년 〈하녀〉라는 작품으로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을 동경해왔다. 누구처럼 보다 나답게만 생각하며 살았던 내게 ‘윤여정 선생님처럼’이라는 워너비를 만들어주셨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현명하게, 지혜롭게, 유연하게 삶을 살아내신다. 미국 연기상 20관왕. 선생님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이리라. 얼마나 많은 축하 문자와 전화로 정신없으실까. 축하 문자도 조심스럽다. 소심한 마음으로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문자를 보내본다. 대뜸
 
다른 사람 다 문자 오는데 너한테만 안 와서 궁금해하던 참이다. 삐진 건 아니구.
 
답신이 왔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알고 있는 윤여정 선생님은 20관왕을 수상하셨지만 언제나 우리가 사랑하는 윤 선생님으로 있어주신다. 나는 더 궁금해진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윤여정이라는 사람이. 전도연(배우)


 
윤여정은 오로지 윤여정이다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면서도, 언제나 마음에 불편한 이질감을 품고 있었어요. ‘선생님’이라는 이 고루하고 지루한 단어를 가져다 붙이기에 이분은, 이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고유한 오라로 빛나는 화려한 배우거든요. 이 호칭에는 존경의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지금도 필드의 그 누구보다 인상적인 배우의 삶을 걷고 있는 분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저는 너무 이상했어요. 〈미나리〉 촬영을 위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선생님은 ‘여정’ 혹은 ‘YJ’로 불렸는데, 그때 저는 거기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을 ‘여정 씨’라고 부르리라 마음을 먹었죠. 관록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은 이 사람에게 거추장스러운 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제는 그걸 다 덜어내고 진짜를 보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함께한 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연민보단 유머를 이분의 삶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그의 연기와 일상의 일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일도 저는 여정 씨를 응원하려 합니다. 한예리(배우) 


 
윤여정 선생님과 2008년에 처음 만났다. 그 후 세 편의 영화를 함께 하며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중 두 작품을 윤여정이란 배우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배우들〉은 평소에 만나면서 느낀 그분의 솔직한 매력과 놀라운 유머감각에 반해 ‘이런 여배우의 실제 모습을 나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첫 단추가 되어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만들게 된 작품이다.(그때까지 윤 선생님은 연기 외에는 대중에게 평소의 사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었다.) 〈죽여주는 여자〉는 누군가를 모델로 삼기보다 윤여정이란 배우가 표현하는 박카스할머니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으니 감독인 나에게 이토록 자극과 영감을 주는 배우를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윤 선생님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란 작품으로 수많은 연기상을 받으며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와중에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쿨’한 우리의 윤여정 선생님은 들뜨지 않고 한마디 하실 뿐이다.
 
Life is full of surprises!


이재용(감독)
 


[관련기사]
스티븐연, 김도훈, 김초희가 말하는 윤여정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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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홍장현 영화사,국외자들,안주영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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