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용기 안에 풍선을 넣었다고? 친환경 용기의 탄생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화장품 용기 안에 풍선을 넣었다고? 친환경 용기의 탄생

뷰티 무관자라도 한 개 이상의 화장품은 사용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이 가장 까다롭고 그 비율도 낮다. 여러 가지 재질이 결합되어 있으며 세척이 어렵다는 게 이유. 불가능하다며 외면하던 이 난제를 해결해줄 획기적인 용기가 나타났다.

BAZAAR BY BAZAAR 2021.01.16
 
오늘 아침, 샴푸통과 씨름을 했다. 펌프질을 열댓 번은 해댔는데도 내용물이 나오지 않아 결국 뚜껑을 열고 물을 부었다. 생각보다 내용물이 많이 남았는지 거품이 끝없이 샘솟았다. 절약정신이 투철하지 않아도 내용물을 탈탈 털어 쓰기 위해 병을 뒤집어 놓거나 물을 부어 사용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터. 이너보틀을 발명한 오세일 역시 화장품을 사용하면서 늘 ‘어떻게 하면 남김 없이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동시에 용기 안에 남은 잔여물로 인한 수질 오염과 플라스틱 재활용을 걱정했다. 그러던 중 기내에서 본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이너보틀의 모티프를 얻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을 거꾸로 만들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어요. 물방울 모양과 비슷한 소재를 찾다가 출근길에 편의점을 들러 풍선과 콘돔을 샀죠.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요.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그런 목적으로 사는 거 아니에요.’라고 변명을 했어요.(웃음) 사무실에 와서 샴푸통에 풍선을 넣고 물을 담아 실험해봤는데 얼추 모양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당시 변리사였다. “창업까지 확신은 없었어요. 특화 법인 대표로 있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런데 지인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거예요. 그때가 만 39살이었는데 지금 안 하면 후회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국내 최대의 창업 경진대회 ‘도전 K-스타트업 2018’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아이템의 가능성 정도를 평가받기 위한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1등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풍선처럼 탄성이 있으면서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게 쉽지 않았고,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막는 밸브를 실리콘으로 제작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전문가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었어요. 실리콘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예가 없었으니까요. 논문을 찾아보고 굉장히 많은 공부를 했죠.” 그렇게 해서 획기적인 발명품, ‘이너보틀’이 탄생했다.
이너보틀의 기대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용기 안에 내용물이 남지 않는 것’, 이 알뜰한 변화가 환경오염의 주범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됐다. 플라스틱 용기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1백50억 병 이상 생산되는데 재활용률은 고작 9% 남짓. 특히 한국은 독일 다음으로 분리수거율이 높지만 재활용 비율은 전 세계 평균이 채 되지 않는다. “화장품 용기가 재활용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부에 남아 있는 내용물 때문이에요. 세척 비용이 클 뿐만 아니라 물로는 유분이 깨끗하게 씻기지 않죠.” 이너보틀은 깨끗한 외용기 덕분에 재활용이 용이하고 수질오염 걱정이 없다. 또 외형 용기의 소재나 디자인에 구애를 받지 않아 종이 등의 재질을 접목하면 완전한 친환경 용기를 구현할 수 있다. 더불어 실리콘의 수축하려는 힘 덕분에 공기가 내부로 주입되지 않아 산화나 변성의 우려도 없다. 이러한 혁신으로 인해 이너보틀은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한다. 얼마 전,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 영상은 1백30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대중들의 관심도 입증했다. “본격적으로 유통이 되진 않아서 소비자의 실제 반응이 궁금했는데, 댓글을 보면서 확신을 가졌어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너보틀은 현재 실리콘보다 효과적인 파우치 소재를 개발 중이며 펌프형뿐만 아니라 콤팩트, 튜브, 좌 타입 용기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다. 하지만 오세일의 최종 목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너보틀이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거예요. 다 쓴 용기를 분리수거함에 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환 자원을 모으고 깨끗하게 관리해 안전하게 공급하는 거죠. 예를 들어 용기에 있는 QR 코드를 인증하면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물류회사에서 공병을 회수하고 그걸 바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요. 소비자들이 본인이 쓰고 버린 화장품이 재활용됐는지, 거북이 배 속으로 들어갔는지 의문을 갖지 않고 깨끗하게 재사용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거든요.”(곧 영국에서 출시하는 브랜드는 이를 위한 시스템이 이미 구축된 상태다.) 이르면 2021년 상반기부터 화장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너보틀. 이 놀라운 창작물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해도 좋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어요. 과거에는 보기 좋고 튼튼한 용기가 ‘좋은’ 포장재였다면 이제는 내용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포장, 재활용 여부 등을 먼저 고려해야 하죠. 쉽게 찌그러지는 종이 용기가 과거의 기준에는 자격 미달이지만, 이제는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Keyword

Credit

    에디터/ 정혜미
    사진/ 정원영
    웹디자이너/ 김희진

Weekly Hot Issue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