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예술과 여운이 있는 강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바다와 예술과 여운이 있는 강원

청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맑디맑은 가을하늘이 열릴 때는 강원도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본다.

BAZAAR BY BAZAAR 2020.10.17

GANGWON

경기도 양평을 지나 동쪽으로 조금 더 내달리면 어느 순간 강원도 원주가 열린다. 오크밸리 리조트의 멀끔하고 세련된 풍광을 젖히며 조금 더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뮤지엄산의 입구가 나온다. 뮤지엄산은 한솔문화재단이 만든 박물관이자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완성한 총 700m 길이의 선형 부지에 세운 복합공간이다. 1세대 여성 경영인으로 손꼽히는 한솔그룹의 이인희 고문이 30년 이상 수집해온 아트 컬렉션과 그만의 취향을 담아 지난 2013년에 개관했다. 모기업이 한솔제지인 만큼 상설전시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와 체험형 스튜디오 판화공방이 상설로 열리며, 일상과 밀접한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빛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는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제임스터렐관도 뮤지엄산의 중요한 주축이다. 지난 2018년에는 안도 다다오가 지은 명상관이 5주년을 기념해 새로 문을 열었다.  
 
이성옥, 〈Sound of Nature〉, 2020, Stainless Steel, Variable installation.

이성옥, 〈Sound of Nature〉, 2020, Stainless Steel, Variable installation.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뮤지엄산의 백미는 ‘단절’에서 시작된다. 매표 후 본관까지 가기 위해 길게 걸어야 하는 자작나무 숲의 플라워가든, 별안간 눈앞에 펼쳐진 뒤 고요한 기운을 안개처럼 깔아주는 워터가든, 거대한 사이즈의 압도적인 붉은 조형물 〈Archway〉는 길게 드리우는 일상의 꼬리를 확실하게 잘라준다. “이곳이라면 주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안도 다다오의 말처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뮤지엄 본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땐 이미 머릿속의 상념들이 후두둑 떨어져나간다. 안도 다다오 특유의 건축 화법인 노출 콘크리트의 내부로 일단 발을 디디면 전시관이든 전시관으로 가는 복도든, 층을 오르내리는 경사진 길이든, 박물관 안의 모든 공간에선 적극적인 관람자가 되어야 한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끼고 돌았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통유리창 밖의 풍광 때문에 그 앞에 박힌 듯 앉아 있었던 시간도,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만큼이나 가치 있다. 아예 작품 안으로 푹 들어가 체험하는 제임스터렐관에서의 관람까지 끝내고 나면 ‘단절 뒤의 소통’이 비로소 손에 잡힌다.  
 
뮤지엄산은 공간과 부지,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설계된 관람 진행 루트가 모두 감상의 영역이다. 때문에 뮤지엄산의 가장 완벽한 관람 방법은 이 공간을 홀로 향유하는 것이다.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안락함을 주는 명상관에서 3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면, 이 시간과 공간을 조용히 나만 누리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고 만다. 가장 관람객이 적은 요일과 시간을 추리해보는 일밖에 할 순 없겠지만….
 
원주에는 꽤 유명한 테라스 카페가 많다. 드라마 촬영지나 SNS 속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의 발길이 넘나든다고 해서 두 군데 정도 둘러봤지만, 뮤지엄산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길이라면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공간으로 감흥을 얻긴 힘들다.
 
백남준, 〈Communication Tower〉, 1994, Mixed Media, 193.0x193.0x520.0cm.

백남준, 〈Communication Tower〉, 1994, Mixed Media, 193.0x193.0x520.0cm.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을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켰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90킬로미터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방법을 추천했지만,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기분 대신 구불구불한 44번 국도로의 드라이브를 선택했다. 30분 정도의 시간만 양보하면 배경음악도 필요 없는 설악산의 압도적인 풍광을 보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은 조각가 김명숙이 설립한 사설 미술관이다. 리드미컬한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밝고 경쾌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김명숙의 평생 작품과 작업실이 한 공간에 자리 잡았다. 더불어 김정숙, 윤영자, 김영중, 이운식, 조성묵, 박병욱, 김경승 등의 근현대조각계 굵직한 이름들의 대표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이나 조각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작품과 공간이 서로 닮아 완성되는 아름다움은 충분히 전달된다. 교보타워 사거리 벌집 모양의 ‘어반하이브’ 빌딩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김인철은 5천 평 부지의 밭 위에 그만의 철학으로 미술관을 지었다. 대관령터널 공사 과정에서 나온 돌 파편과 콘크리트를 거칠게 쌓아 올려 만든 담은 바람과 비를 맞으며 적절히 풍화되고 작은 풀과 이끼가 생기면서 주변 자연 경관과 허물없이 어우러진다. 그 덕에 돌을 깨고 흙을 반죽하는 모든 과정이 조각의 일환이라고 여기는 조각가의 작품도 공간 속에 녹아든다. 가을 하늘만큼 깨끗한 오후의 햇빛이 울산바위를 향하고 있는 이 미술관의 창 안으로 길게 들어올 때는 조각작품 하나하나의 질감이 특히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강원도 거의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세 시간을 내리 달려와서인지, 온실 같은 근현대 조각관 안쪽에 서서 물의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바다를 마주한 절벽 끝에 서 있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나지막한 돌담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너른 정원의 쉼터에 앉아 여유를 헤아려보는 기분도 가을 그 자체다.
 
바우지움조각미술관에서 나와 속초든 양양이든 묵을 곳을 향해 떠날 때에는 문베어 브루잉 앞을 꼭 지나가게 된다. 맥주 한 통을 테이크아웃해 바닷가가 보이는 조용한 나만의 방을 찾아간다면 여행의 여운이 훨씬 더 길어진다.  
 
프리랜스 에디터 손기은은 혼자 떠나는 여행에 익숙하고 어떤 곳에서든 제일 예쁜 것을 즐거이 좇는다.
 
INFO
뮤지엄산 |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전시: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상설전시).
«한국미술의 산책Ⅵ: 판화» 9월 29일~2021년 2월 28일까지.
바우지움조각미술관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온천3길 37
전시: A관 근현대조각관-«근현대 조각계 대표작가 대표전»(상설전시) / B관 김명숙조형관-관장 김명숙 작품전(상설전시)
아트스페이스-«이성옥 초대전», 10월 31일까지.
문베어 브루잉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원로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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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손기은
    사진/ 뮤지엄산,바우지움조각미술관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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