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부산에서 미술관 투어를 하고 싶다면?

이우환의 예술론을 빌려 표현하자면, 부산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도시다.

BYBAZAAR2020.10.09

BUSAN

김아영, 〈돌아와요 부산항에〉, 2012, ‘어느 도시 이야기’(2010-2020) 중에서, 3채널 비디오, 약 5분.

김아영, 〈돌아와요 부산항에〉, 2012, ‘어느 도시 이야기’(2010-2020) 중에서, 3채널 비디오, 약 5분.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산. 부산(釜山)이라는 단어를 풀이하자면 이렇다. 바다가 먼저 떠오르지만 산이 더 흔한 곳, 동해이자 남해, 마천루와 공장, 마린시티와 달동네, 누군가에겐 고단한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일상을 잊게 하는 도피처. 이 도시의 복합성과 다층성은 한국의 여타 도시와는 사뭇 다른 정취를 조성한다. 부산은 나 같은 서울촌놈에게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다. 물론 이런 사념은 부산역에서 영도로 가는 택시를 잡아타는 순간 금세 잊히고 만다. 부산의 도로 위에서는 늘 멀미를 달게 된다. “부산에서 운전을 마스터하면 세계 어디를 가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산 사람들이 특별히 카레이서의 기질을 타고났다기보단(전혀 아니라곤 말 못하겠다) 이곳의 역사성 때문이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서울 같은 계획도시처럼 길이 먼저 나고 사람이 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들고 집이 생기고 그 다음에 길이 났다. 눈앞이 빙빙 돌며 여기가 부산인지, 그리스의 산토리니인지, 페루의 마추픽추인지 구분할 수 없어질 즈음에 비로소 영도다리를 건넜다.
 
이요나, 〈En Route Home〉, 2020, 스테인리스스틸, 오브제, 가변크기.

이요나, 〈En Route Home〉, 2020, 스테인리스스틸, 오브제, 가변크기.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온 모더니즘 시인 김광균은 영도다리 난간에서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영도다리-소월에게’)”던 소월을 떠올렸다. 김언수의 소설 〈물개여관〉의 ‘수레’도 영도 남항동 골목에서 생각에 잠긴다. “선원들의 방수복, 빨래를 했음에도 여전히 페인트와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작업복, 철가루 때문에 녹이 슬어 붉게 변한 깡깡이 아줌마들의 작업복, 술집 아가씨들의 요란한 팬티와 브래지어 그리고 아이들의 앙증맞은 양말과 반바지까지. 이 골목의 삶은 빨랫줄에 매달린 옷가지들처럼 피곤하고 후줄근하다. 너무나 피곤하여 비가 내려도 빨래를 걷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인생에 늘 화가 나 있는 사내가 깡깡 망치질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영도항의 한 창고. 원도심 일대, 부산현대미술관과 함께 2020부산비엔날레의 한 챕터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물개여관’을 토대로 8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 세계를 펼쳤다.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9월 20일까지는 온라인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올 수 없었던 데이브 헐피시 베일리는 본인이 사는 캘리포니아 근처에 있는, 한국전쟁 중 한국을 배경으로 했던 1970년대 TV쇼 〈M*A*S*H*〉의 촬영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했으며(〈세 부적절한 서술체계 속의 부산 주변〉), 이요나는 영도항 창고 천장에서 받은 영감으로 스테인리스 파이프 미로를 만들고 곳곳에 침대, 카스라이트 맥주 캔, 두루마리 휴지 같은 일상적 물건을 배치했다(〈En Route Home〉). 권용주는 방수포, 포장 천막, 스티로폼, 고무 바 등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로 작업한 조각 〈폭포〉를 선보였다. ‘수레’는, 아니 그 많던 조선소 깡깡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긴. 카스 한 캔 하면서 여전히 여기에 공존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까웠던 개인의 삶이 사회 징후를 내포한 집단으로, 정치적 현상이자 문화적인 풍경으로, 역사적 사실로, 마침내 상상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데이브 헐피시 베일리, 〈세 부적절한 서술체계 속의 부산 주변〉, 202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점토, 아코디언북, 혼합매체, 가변크기.

데이브 헐피시 베일리, 〈세 부적절한 서술체계 속의 부산 주변〉, 202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점토, 아코디언북, 혼합매체, 가변크기.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이번 전시를 인체에 비유하자면 문학은 뼈대, 시각예술은 장기와 뇌, 음악은 근육과 조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문필가 11명, 시각예술가 67명, 사운드아티스트 11명이 부산 곳곳에 자신만의 예술적 레이어를 쌓았다. 이를테면 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는 부산 남포동 일대를 배경으로 〈결국엔 우리 모두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되리라〉를 썼다. 건축가가 식당에서 복국을 먹다가 독이 올라 사망한 사건을 사설탐정이 쫓는 내용이다. 이는 김아영의 비디오 아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되고 대만 뮤지션 무코! 무코!의 실험음악이 된다. 분홍색의 귀여운 복어가 부유하는 듯한 람한의 디지털 페인팅 〈Case_01_01(독소)〉를 봤기 때문일까. 딱히 죽고 싶었던 건 아닌데 홀린 듯 대연동 초원복국 앞이었다. 미나리가 듬뿍 담긴 지리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아, 김기춘이 왜 이곳에서 회동을 주관했는지 알 것 같은 맛. 초원복국은 부산을 대표하는 복요리 전문점이지만, 1992년 이른바 ‘초원복집 도청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김기춘을 비롯 부산의 유력자들이 이곳 지하방에서 뜨끈한 복국을 마시며 거국적인 대화를 나눴다.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부산, 경남, 경북까지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등장하는 세기의 펀치라인. “우리가 남이가”. 이 스캔들은 두 가지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맛있기에 이곳에 모였는지 궁금해진 미식가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것. 이 녹취를 공개한 정주영 후보 측이 오히려 역풍을 맞아 민자당의 김영삼이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된 것. 복국 사망사건을 쫓던 사설탐정이 끝내 마주한 범인만큼이나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김희천, 〈탱크〉,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2분.

김희천, 〈탱크〉,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2분.

부산에 왔으면 해운대구와 수영구를 오가는 갤러리 호핑을 빼놓을 수 없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택시에 올랐다. 이번엔 고통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과 고은사진미술관, 최근에 문을 연 F1963이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모여 있다. 요트경기장 근처 조용한 아파트 단지 뒤편으로 들어가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사진 전문 갤러리 고은사진미술관이 나온다. 11월 25일까지 사진가 이명호의 «[드러내다]»가 열린다. 망미동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F1963은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카페와 서점, 예술 전문 도서관, 막걸리 바와 펍 그리고 두 개의 갤러리가 붙어 있다.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석천홀에선 기획전 «부산: 시선과 관점»이 막 끝이 난 참이다. 맞은편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선 곧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이 시작될 것이다. 무엇보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모노하의 정신을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이우환이 직접 디자인했다.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시리즈가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관이 구겐하임이나 모마, 에르미타주가 아닌 바로 이곳인 것도,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나오시마의 이우환미술관과는 다른 시퀀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이 공간을 이우환 자신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 전경.

건립 당시 부산시는 이우환에게 시민공원의 목 좋은 터를 부지로 제안했다. 고가도로의 심란한 풍경을 배경으로 시립미술관 직원들이 이따금 담배를 피우던 구석진 공중화장실 자리를 택한 건 순전히 그의 의견이었다. 그는 왜 고가도로의 병풍 역할을 자임했을까? 알 것도 같다. 해 질 무렵, 한때 부산의 예술가들이 ‘문화 폭력’이라며 건설 반대를 부르짖던 광안대로 연결 고가도로 그림자가 이우환 공간의 외벽을 캔버스 삼아 일렁이듯 여울졌다.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이곳 부산에서 유난하게 사무치던 순간에.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코로나 이후 로컬 미술에 관심을 갖고 지방의 갤러리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INFO
부산비엔날레 | www.busanbiennale.org
초원복국 대연본점 | 부산시 남구 황령대로492번길 30
부산시립미술관 | 부산시 해운대구 APEC로 58 부산시립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로 452 번길 16
F1963 |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F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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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손안나
  • 사진/ 최용준,부산비엔날레(작품)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