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이후 버려지는 자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언제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환경 디자인을 공부하며 패션과 환경 문제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 년에 약 1백70만 벌의 의류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고, 이러한 쓰레기는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디자이너로서 어떤 옷을 만들어야 될지 고민이 많아졌다. 잔여 쓰레기가 고스란히 후세에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환경에 해가 덜 되는 옷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 연예인 커플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드레스가 온갖 매체에 기사화된 적이 있다. 드레스의 브랜드와 가격 등의 정보가 담겨 있었는데 웨딩드레스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드레스에 몇 천만원씩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제품을 빌려 입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그런 제품도 3~4회 정도 입으면 때가 타 폐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한 번 입더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소재로 웨딩드레스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옥수수 전분 소재 원단의 드레스를 만들었다. 2006년 이에 대한 전시를 열자 친환경 드레스에 대한 수요가 생겨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사용하는 소품 모두 친환경적이다. 사실 결혼식을 치를 때마다 버려지는 청첩장과 부케의 수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이런 소품도 친환경적으로 제작할 수 없을까 고민 끝에 재생지로 만든 청첩장과 재활용 가능한 부케를 만들었다. 부케와 부토니에는 뿌리가 살아 있어 결혼식이 끝난 후 화분에 옮겨 심을 수 있다. 결혼식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신혼여행 또한 생태여행이나 공정여행으로 꾸려, 결혼식의 A부터 Z까지 친환경으로 실천할 수 있다.
‘친환경’과 ‘웨딩드레스’라는 조합이 신선하고 낯설다.
소재적인 측면에서의 친환경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한 번만 입는 옷이 아닌, 수명이 긴 지속가능한 웨딩드레스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 간직하면서 수선해 입을 수 있게끔 말이다. 실제로 신혼여행, 돌잔치 등의 행사에 드레스를 원피스로 리폼해서 입는 경우도 많고, 한 커플은 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이전에 맞춘 드레스를 꺼내 입고 사진을 찍어 보내오기도 했다.
초기엔 옥수수 전분 섬유(PLA)를 사용했지만 실제 결혼식 드레스는 PLA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열에 약한 소재라 잘못 다릴 경우 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한지 섬유와 쐐기풀 섬유, 유기농 면과 실크 등을 사용하고 있다.
환경 공부를 하고 난 후 더 이상 옷을 많이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거의 유니폼처럼 옷을 돌려 입는 편이다. 대학생 때는 패션 공부를 하다 보니 항상 신상품을 입어야 하고, 계절마다 새 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는 이상한 철칙 같은 게 있었는데, 뒤돌아보니 아무 소용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들로부터 외면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가치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철학을 배웠다.
결혼식에 대해 바뀌었으면 하는 인식이 있다면?
많이 바뀌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결혼식 자체에 과시적인 측면이 남아 있다. 결혼식은 여러 사람 앞에서 부부됨을 약속하는 자리이자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다 보니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결혼식이 가지는 의미에 더 가치를 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