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 재미있다. 〈구미호뎐〉의 연상선상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용지와 함께 찍는 화보라고 해서 나름대로 시안을 찾아봤었다. 용지와 내가 이번 드라마에서 구미호 콤비로 나온다. 캐릭터가 참 좋은데 드라마에서 미처 다 표현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다. 화보에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는데 오늘 콘셉트와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신기하다.
<전설의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구미호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꽤 많았지 않았나. 이번 <구미호뎐>은 무엇이 다른가?
김범: 남자 구미호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새로운 것 같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여우가 5백 년을 살면 남녀 구분 없이 사람으로 둔갑하고, 1천 년을 살면 하늘의 힘을 쓸 수 있는 ‘천호’가 된다고 한다. 이동욱 형이 연기한 이연이라는 캐릭터가 천호이고, 나는 백 년 정도 살아서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변신을 할 수 있는 구미호다. 김용지: 그에 비하면 나는 아주 새내기 구미호다. 구미호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적인 감각이 많이 남아 있는 친구랄까? 되게 욱하는 캐릭터다.
김용지가 입은 벨벳 드레스는 Gucci. 귀고리는 Chrome Hearts.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범이 입은 프릴 셔츠, 재킷은 Gucci. 귀고리는 Chrome Hearts.
김범: 작가님이 굉장히 디테일 하다. 대본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 전설은 물론 외국의 전설까지 함께 첨부되어 있다. 덕분에 머릿속으로 그림이 쉽게 그려졌다. 무엇보다 구미호 하면 일단 엄청나게 화려한 느낌이지 않나. 의상이나 헤어도 여러 번에 걸쳐 테스트를 한 뒤 비주얼을 만들었다. 사람을 홀리는 장면 같은 데서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제스처나 표정을 꺼내려고 노력했고. 김용지: 영화 〈트와일라잇〉도 도움이 됐다. 인간보다 속도도 빠르고 다이내믹한 동작 같은 걸 참고했다.
김범: 구미호 역할에 정말 딱이구나! 김용지: 얼굴이 너무 작다!
시퀸 드레스는 Alexandre Vauthier by Net-A-Porter. 반지는 모두 Codiciar. 롱 부츠는 Roger Vivier.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후 3개월 정도 같이 호흡을 맞췄는데. 서로를 어떤 파트너라고 생각하나?
김용지: 내가 연기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까 현장에서 ‘어떻게 하지?’ 하고 있으면 오빠가 슬쩍 와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설명해주고 간다. 드라마 속에서 그런 것처럼 실제로도 많이 따르고 있다.(웃음) 김범: 용지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운 친구라서 난 그저 옆에서 그걸 잘 꺼낼 수 있도록 조금씩 조언하는 정도인 것 같다. 그러면 금세 캐치해서 순발력 있게 표현한다. 똑똑한 배우인 것 같다. 게다가 그냥 딱 봐도 구미호랑 닮았지. 현장에서 만나면 언제나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서 좋다. 사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연기라는 것도 시대마다 변한다. 내 경우에는 10여 년 전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그때의 연기술이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더 오래 연기하신 선배들이 보시기엔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웃음) 요새 연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그 표현 방식에서 훨씬 자유로운 것 같다. 부럽다.
실크 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부츠는 Givenchy.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전에 한 경력 많은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자신이 프레임 안에서 어떤 앵글로 잡힐지 너무 잘 아는 것이 비극”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범: 정말 그렇다. 김용지: 진짜? 김범: 그래서 용지가 가끔 뭘 물어봐도 “몰라도 된다”고 넘기는 게 있는데, 정말로 몰랐으면 좋겠어서 그런 거다. 사실 사람의 성향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관심이 없다면 안 보는 건데, 나는 어릴 때부터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조명팀, 카메라팀, 감독님께 가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물어보는 타입이었다. 그런 게 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야 하는 거지.
김범이 입은 재킷, 팬츠는 Givenchy. 셔츠,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용지가 입은 재킷, 팬츠는 Sportmax. 웨스턴부츠는 Rachel Cox.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범: 계산에 어긋나는 걸 싫어한다. 특히 일을 할 때는 1부터 10까지 다 신경을 쓰는 타입이다. 변수가 많은 일이라 사실 이쪽 일을 하면 안 됐는데….(웃음) 어릴 때는 스트레스가 컸지.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그래도 서른이 넘고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아, 그래도 여전히 변수는 싫다.(웃음)
용지 씨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실제로 그런 성격이기 때문인가?
김용지: 자유롭다. ‘눈치’라는 단어에 대해 사람마다 정의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이러면’, ‘내가 저러면’ 하면서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 특히 연기할 때는 더. 내가 생각한 걸 최대한 100% 다 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게 틀렸을지라도, 남들과 다를지라도 말이다.
김범이 입은 재킷, 팬츠는 Givenchy. 셔츠,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용지가 입은 재킷, 팬츠는 Sportmax. 웨스턴부츠는 Rachel Cox.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성격대로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은데. 김범: 스트레스는… 그냥… 안고 간다. 해소법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받아들이며… 나의 업보려니….(웃음) 김용지: 테니스! 서울 밖으로 여행을 간다거나 운동을 한다. 어찌 됐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편이다. 특히 공을 치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비워지는 게 좋다. 아직은 테니스 꿈나무지만 그래도 열정은 넘친다.
거의 반년 가까이 애정을 쏟고 있지 않나. 올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이 될 텐데 〈구미호뎐〉이 끝나면 무엇이 남았으면 좋겠나?
김용지: 사실 나는 이렇게 빨리 그리고 많이 작품을 하게 될지 몰랐다. 운이 좋게도 큰 작품을 여러 편 찍었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 이제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내가 온전히 배우라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을 마치고 나면 스스로 ‘내가 정말 배우구나’ 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작품이 내게 좋은 마침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범: 소집해제 이후 숨 고르는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곁에서 지지해준 친구들, 회사 식구들, 우리 팀, 현장 스태프들까지… 다 같이 열심히 준비한 작품인데 드라마가 잘되어서 이분들의 노력이 빛을 봤으면 좋겠다. 다 같이 잘돼야 한다. 그래야 내가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