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뱅크시가 '뱅크시'하는 법

침묵하는 대신 발언하기를 택했다. 예술 테러리스트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방법.

BYBAZAAR2020.08.12
뱅크시의 행동은 항상 뉴스거리가 된다. 이 명제는 틀린 적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뱅크시 당했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1974년 출생, 영국 출신의 가명 미술가, 영화감독 겸 그래피티 아티스트. 검색창을 통해 나오는 이 정보가 어쩌면 우리가 뱅크시에 대해 아는 전부다. 익명의 힘에 꽁꽁 둘러싸인 그는 디스토피아적인 장소 곳곳에 그래피티 예술을 그려 넣음으로써 우리가 처한 현실을 풍자한다. 미술품이 낙찰되자마자 파쇄기를 작동시켜 작품을 파괴한 것은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해온 그가 걸어온 또 다른 행보가 있다.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해오며 중요한 정치적 이슈 또한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 웨일스 남부의 한 벽을 장식한 그림엔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고 기뻐하는 소년이 있다. 하지만 하얀 가루를 자세히 보면 그것이 눈송이가 아닌 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철강도시의 공해를 풍자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뱅크시의 방식이다. 그래피티를 통해 노숙인이 머무는 벤치를 루돌프가 이끄는 썰매로 둔갑시켜 버밍엄 지역 노숙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해 유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도 뱅크시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작품을 올리며 다음과 같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히 이번 문제에 대해 흑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이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문제다. 유색 인종은 시스템에 의해 좌절당하고 있다. (중략). 파이프가 부서지면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의 집으로 물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말이다. 잘못된 제도는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지만, 이를 고치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아무도 그들을 아파트 위층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백인들의 문제다. 백인들이 고치지 않는다면, 누군가 위층으로 올라와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철거된 에드워드 콜스턴(17세기 영국의 노예 무역상) 동상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향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브리스톨의 한가운데 비어 있는 초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시작된 글은 “동상을 그리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를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 동상을 강에서 꺼내 제자리에 둔 뒤, 목에 케이블을 걸어 이를 끌어내리는 모습의 청동상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끝난다. 뱅크시는 이어 해당 글을 묘사한 그림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하였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로서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2015년 가자 지구에 잠입하여 벽에 새긴 문장을 살펴보면 그의 입장은 확고히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듯하다.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힘 있는 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다. 중립이라는 것은 없다.” 이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는 단테의 말이 떠오르기도 하는 문장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소신껏 발언하는 것, 그것이 뱅크시가 ‘뱅크시’하는 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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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 사진/ Getty Images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