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5천 달러를 투입해 새롭게 단장한 '모마' 들여다보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4억 5천 달러를 투입해 새롭게 단장한 '모마' 들여다보기

수개월 동안 문을 닫고 약 4억 5천 달러를 투입해 새 단장을 마친 현대미술의 성지 모마. 6개월마다 상설 컬렉션의 1/3을 전면적으로 재설치한다고 공언한 모마의 올봄 전시 전경 가운데 시선을 붙든 5개의 코너.

BAZAAR BY BAZAAR 2020.05.09

New MoMA

Installation view of?True Stories?(gallery 20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An Dongsun

Installation view of?True Stories?(gallery 20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An Dongsun

# 208
모마는 큰 맥락에서는 여전히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5층은 1880년대부터 1940년대, 4층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 2층엔 1970년대 이후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기존의 학술적인 연구를 연상시키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추상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같은 예술사조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War Within, War Without’, ‘Paris 1920s’, ‘From Soup Cans to Flying Saucers’ 같은 포괄적이고 서사적이며 감상적이기도 한 주제로 각 층 안에서 갤러리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은 테마는 208호의 ‘True Stories’. 1990년대 이후 예술가들은 사진, 비디오, IT 등 발전하는 기술에 힘입어 외부 세계와 자신의 삶을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게 됐다. 
 
Installation view of?True Stories?(gallery 20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2019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John Wronn

Installation view of?True Stories?(gallery 20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2019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John Wronn

SNS 계정에 적극적으로 자아를 전시하기 시작한 대중에게 이런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뿐더러 더 깊이 와닿았다. 208호는 동시대 미술작품들의 느슨한 조합을 보여준다. 크리스 오필리의 ‘힙합 버전’의 성모마리아 〈The Holy Virgin Mary〉(1996), 볼프강 틸만스의 실제 삶에서 나온 장면들이 특유의 스타일로 배열된 이미지의 별자리, 미디어 작가인 린 허시만 리슨(Lynn Hershman Leeson)이 카메라에 대고 트라우마 같은 내밀한 고백을 하는 비디오 작품을 타임라인 보듯이 감상했다. 그리고 이 벽 앞에서 붙들렸다. 1990년대 L.A의 성 소수자 작업으로 유명한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 잘린 것처럼 연출한 발이나 손 등의 조각으로 개인적 고통을 정치 사회적으로 풀어낸 로버트 고버(Robert Gober), 그리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s Torres)의 작품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놓여 있다. 토레스는 1991년 에이즈로 사망한 자신의 파트너에게 〈Untitled(Perfect Lovers)〉(1991)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바쳤다. 서로 맞닿아 있는 시계는 같은 시간으로 달린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결국 전시 중 두 시계의 시간이 어긋”나고 하나가 먼저 멈춘다. 동시에 재설정해 분침과 초침을 맞추지만 결국 앞선 과정이 반복된다. 어떤 완벽한 연인에게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별과 상실. 에이즈 검사를 받고 두려워하는 동반자를 위해 토레스는 맞닿아 있는 시계를 그려넣은 편지에 이렇게 썼었다. “We are synchronized, now and forever.”  
 

 
Henri Matisse, 〈The Swimming Pool〉, Nice -Cimiez, Hotel Regina, late summer 1952, Nine-panel mural in two parts: gouache on paper, cut and pasted, on white painted paper, mounted on burlap. 230.1x847.8cm.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Henri Matisse, 〈The Swimming Pool〉, Nice -Cimiez, Hotel Regina, late summer 1952, Nine-panel mural in two parts: gouache on paper, cut and pasted, on white painted paper, mounted on burlap. 230.1x847.8cm.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 406
1952년 어느 여름날 마티스는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러 칸에 있는 수영장을 찾았다.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이자 비서인 리디아와 함께였다.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보면 몸이 불편했던 마티스는 그 때문에 고안한 컷아웃(Cut-Out) 작업을 하면서 리디아와 협업했다. 자신이 잘라낸 색종이를 붙일 곳을 지팡이로 가리키면 그녀가 붙이는 식이었다. 작열하는 햇빛만 잔뜩 받고 수영장에서 돌아온 마티스는 “내 풀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리디아에게 니스에 있는 한 호텔 식당에 머리 높이쯤 되는 곳에 흰 종이로 띠를 두르라고 하고 울트라마린 컬러의 종이로 수영하는 사람들, 바다 생물들을 오려 붙인다. 이때 또 지팡이로 리디아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인간과 물고기를 오가는 오묘한 형상들은 흰 띠를 넘나들며 물살을 만끽하고 있다. 어찌나 신나고 자유로워 보이는지 괜히 몸이 들썩인다. 모마의 406호 한 코너에는 마티스의 유일무이한 장소 특정적 컷아웃 작품 〈Swimming Pool〉(1952)이 재현되어 있다.(2년 후 마티스는 사망했다.) 색종이로 만든 수영장을 미끄러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돌아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Faith Ringgold,?〈American People Series #20: Die〉, 1967, Oil on canvas, two panels, 182.9 x 365.8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Acquired through the generosity of The Modern Women’s Fund, Ronnie F. Heyman, Eva and Glenn Dubin, Lonti Ebers, Michael S. Ovitz, Daniel and Brett Sundheim, and Gary and Karen Winnick

Faith Ringgold,?〈American People Series #20: Die〉, 1967, Oil on canvas, two panels, 182.9 x 365.8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Acquired through the generosity of The Modern Women’s Fund, Ronnie F. Heyman, Eva and Glenn Dubin, Lonti Ebers, Michael S. Ovitz, Daniel and Brett Sundheim, and Gary and Karen Winnick

# 503
모마의 가장 유명한 컬렉션 가운데 하나인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 리뉴얼 이전에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입체파 동지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그런데 이제 입체파의 아이코닉한 이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도 바라보자는 모마 큐레이터 팀의 제안에 따라 새로운 작품들과 매치되었다. 유혈이 낭자한 인종 폭동을 그린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의 〈American People Series #20: Die〉(1967)와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작품 〈Quarantania, I〉(1947-53)가 그것. 갤러리 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르주아와 링골드의 두 작품은 〈아비뇽의 처녀들〉이 남긴 유산에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형식적 혁신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예술과 여성의 힘에 대해 급진적으로 묘사했다는 점 말이다.”
1906년, 피카소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에서 마티스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매해 애지중지 감상하고 있던 아프리카 가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뛰쳐나가 민족학 박물관을 찾았고 거기서 아프리카 민속 공예품을 보며 예술 세계의 획기적인 변화에 대한 동력을 발견했다. 훗날 피카소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비뇽의 처녀들〉이 나를 찾아온 것은 분명 그날이었다. 단순히 그림 속 여인들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처음으로 퇴마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비뇽의 처녀들〉의 섬뜩하거나 무표정한 여인들 가운데 둘은 아프리카 부족 가면 같은 걸 쓰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비뇽’은 프랑스 남부, 아름다운 코트다쥐르의 그 아비뇽이 아니라 사창가로 이름난 바르셀로나의 거리 이름이고,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성병이 유행했다. 당시 20대 중반인 피카소의 친구들 가운데에도 두 명이나 성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몇 해 전에는 스페인에서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가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매춘부에게 차인 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참조, 윌 곰퍼츠, 김세진 옮김, RHK)
입체파의 시초이자 이후 미래주의, 추상주의 등으로 발전했으며 수많은 동시대 예술가들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림으로 꼽는 〈아비뇽의 처녀들〉의 제작 동기는 아프리카 예술과 성병, 나아가 여성이 지닌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루이즈 부르주아가 남편과 함께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후 제작한 추상화된 인물상도 그 시기 그녀가 초현실주의, 원시주의, 아프리카 예술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링골드는 1960년대 미국 전역에서 폭발하던 인종 폭동을 그리기 전에 제이콥 로렌스(모마 402호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에서 파블로 피카소까지 폭력을 주제로 삼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연구했다. 특히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가 모마에서 전시되었을 때 이 천재 화가가 어떻게 전쟁의 비극을 기념비적으로 묘사했는지 면밀하게 연구했다. 각각 다른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이다.  
 

 
Florine Stettheimer, 〈Family Portrait, II〉, 1933, Oil on canvas, 117.4 x 164 cm.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Florine Stettheimer, 〈Family Portrait, II〉, 1933, Oil on canvas, 117.4 x 164 cm.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 509
1918년 겨울, 독일의 항복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를 자축하기 위해 화가, 무대 디자이너, 시인, 미용사였던 플로린 스테트하이머(Florine Stettheimer)는 황금빛 자유의 여신상이 전면에 서 있는 뉴욕의 모습을 낙관적인 필치로 그렸다(〈New York/Liberty〉, 1918-19). 휘트니 뮤지엄에서 이 작품을 본 후 모마에서 스테트하이머의 화려한 그림들로 가득한 509호를 만났다. 그녀의 낙관대로 전쟁이 끝난 후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살아나던 1920년대 뉴욕에는 금융, 상업, 문화 자본이 모이면서 장엄한 랜드마크가 하나둘 생겨났고 그때 올라간 건물들이 현재 뉴욕의 낭만적인 풍경을 담당하고 있다. 그 시기 탄생한 아르데코 양식 건축물의 정점, 크라이슬러 빌딩이 그녀의 〈Family Portrait, II〉(1933)에서 관능적인 스틸 첨탑을 빛내고 있다. 스테트하이머는 망명한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과 뉴욕 아티스트들이 뒤섞여 현대미술의 새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미술계, 샴페인 향기로 가득한 파티의 나날, 예술적 활동으로 풍성한 패밀리 라이프 등을 페미닌하고 연극적인 스타일의 그림으로 남겼다. 또한 페미니스트로서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렸으며 인종과 성적 취향에 관한 논란을 묘사하기도 했다. 스테트하이머의 생산성 높은 예술적 삶을 만끽할 수 있는 509호는 세계적인 컬렉션이 가득한 모마에서도 가장 사랑스럽고 패셔너블한 방이다.
 

 
Donald Judd, Marfa, Texas, 1992. ⓒ Christopher Felver

Donald Judd, Marfa, Texas, 1992. ⓒ Christopher Felver

# 6F
코로나19가 뉴욕을 덮치기 전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도널드 저드의 전시가 개막했다. 그 중심에 모마의 기획전 «Judd»가 있다. 3월 1일 시작해 7월 11일까지로 예정된 이번 전시를 오픈하며 회화와 조각의 수석 큐레이터 앤 템킨(Ann Temkin)은 말했다. “도널드 저드가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발견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모마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망라한 작품을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 1960년대 초의 오브제, 드로잉, 판화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이어지는 작품 활동의 여정이 6층 공간에 물 흐르듯 펼쳐진다. 1960년대 중반에는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속이 빈 상자, 쌓기, 배열 등 ‘3차원적 작품’의 기본 어휘를 창조했다. 텍사스주 마파에서 작업을 진행한 1970년대 작품들은 새로운 단계의 스케일과 합판을 도입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유럽에서 제작된 저드 생애 마지막 10년간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Installation view of?Jud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Digital Image ⓒ 2020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Jonathan Muzikar

Installation view of?Jud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Digital Image ⓒ 2020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Jonathan Muzikar

“이들 작품의 풍부한 색채와 다양성은 저드가 계속 거부했던 ‘미니멀리스트’라는 타이틀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모마는 소개하고 있다. 뉴욕에서 저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디아 비컨에 1970년대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고, 무엇보다 소호 스프링 가 101번지에 있는 저드 파운데이션을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부티크가 즐비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1968년 소호에서 저드는 직물 공장이었던 5층짜리 건물을 사서 1층 로비, 2층 주방 겸 응접실, 3층 전시실, 4층 작업실, 5층 침실로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남편이자 부모였던 저드의 다채로운 페르소나가 층마다 펼쳐지는 셈이다.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에서 가져온 듯한 가면이 죽 걸린 삐걱거리는 계단으로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영구 설치(Permanent Installation)’라는 개념을 창안한 저드의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말이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많은 양의 글을 남긴 미술평론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했던 저드의 글은 모마 6층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라이브러리’ 공간에서 그가 디자인한 가구에 앉아 읽을 수 있다(https://www.moma.org/ 참조).
 
프리랜스 에디터 안동선은 의도치 않게 코로나19의 시차를 이용해 뉴욕에 다녀왔다. 
모마의 406호,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이 설치된 소호의 어느 건물, 스탠더드 호텔 피트니스센터에 영혼을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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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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