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허세와 가식이 싫다고 말한다. 솔직함으로 승부하고자 한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힙한 거, 쿨한 거 싫어요”라고 쓰여 있다.
정훈: 쿨하고 멋진 것보다는 서정적인 것을 좀 더 좋아한다. 산울림, 비틀스 같은 음악도 들었지만 우리가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음악은 플라이투더스카이, 임창정, 럼블피쉬처럼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이 액세서리화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악을 듣는 것보다 SNS에 보여주기 위해 늘어놓는 행위들. 취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왜곡된 힙스터 마인드가 싫었다. 힙한 건 유행을 따르지 않는 건데 오히려 유행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 음악의 방향과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잔나비는 서정적이고 언제나 뜨겁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악에 담으려 한다. 그래서 슬로건으로 정했다.
싫어한다고 강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좋아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정훈: 그냥 딱 마음으로 와닿는 것. 특히 음악은 ‘잘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기술을 썼구나’ 이런 데이터로 들리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마음을 만져주는 노래를 좋아한다. 경준: 우리 모두 애초부터 성향이 비슷하다.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있다. 정훈이가 말한 대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과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1집과 2집 음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잔나비가 사랑 노래만 하는 밴드는 아니지 않나.
정훈: 꼭 연애에 관한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과 평화 할 때 보편적인 의미의 그런 사랑. 우리가 만드는 사랑 노래가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니까 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2집 <전설> 후반부 곡에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담았다. 나름대로의,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 철학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부분에 대해 별로 반응이 없는 건 너무 허영에만 사로잡혀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
대중이 곡을 좋아하는 것과 밴드를 좋아하는 건 굉장히 다른 일이다. 그 사이를 줄이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나?
정훈: 정확하게 요즘 하는 고민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잔나비가 앞으로 할 음악이다. 지금까지 많은 평가를 받고 반응을 얻었던 일을 뒤로하고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사랑 노래를 주로 부르는 밴드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일종의 솔직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다 꺼내서 들려주는 밴드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들어줬으면 하는 노래는?
영현: ‘신나는 잠’. 음반 만들면서 가장 힘들게 작업했다. 노력? 노고가 드러나는 곡이다.
정훈: 2집에서 ‘신나는 잠’ 이후로 끝까지 연결되는 음악들. 깨어 있는 시간을 얼마나 후회 없게 보냈느냐에 따라 잠이 잘 오거나 안 오거나 하더라. 음반 작업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그때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다. ‘나쁜 꿈’, ‘새 어둠 새 눈’도 인생을 조금 더 사랑하고 운명을 더 사랑하자는 이야기다.
도형: ‘조이풀 조이풀’. 소리 지르면서 되게 재미있게 만든 노래이고, 청춘들이 필요로 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아 좋아한다.
경준: 2집 음반 첫 곡인 ‘나의 기쁨, 나의 노래’. 음반에서 맨 첫 곡과 끝 곡이 중요하다. 보통 타이틀 곡을 집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음반의 첫 곡을 들으면 한 음반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다.
결: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더 많이 들어서 기왕 한 김에 완벽한 1등이 되면 좋지 않을까.(웃음)
디지털 싱글이 익숙한 요즘, 손에 쥘 수 있는 12곡으로 꽉 채운 음반은 오랜만이다.
정훈: 우리는 조금 유난스러운 친구들이다. 28살 먹었는데도 출퇴근하듯이 모여서 같이 밤새 합주하고 작업한다. 개인 생활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맨날 만난다. 작업실에서 같이 살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니까 단체로 시대의 흐름을 놓친 거다. 몇 년 조금 놓쳤다고 사람들이 달라지더라. 예전에는 우리에게 열심히 사는 친구들,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러고 사냐, 꼰대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열심히 살면 뭐든 할 수 있어,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어, 이렇게 살았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이번 음반에 더 담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책이 유행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좋지 않겠나?
1집에 비해 가사가 구체적으로 변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야성적이기도 하고 정제된 단어들의 조합이 보인다. 감성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할 거야, 우리의 언어를 들려줄 거야, 라고 하는 것 같다.
정훈: 우리나라 옛 음악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가사를 많이 듣는다. 여러 말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들을 갖다 쓰고 싶지 않다. 이때까지 사람들이 쓰지 않았던 단어들에 대해 고민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가사를 쓸 때 어느새 가사로 생각하지 않고 접근한다. 글로 먼저 써두고 목소리를 붙여본다. 잠깐 연기를 배웠는데 그 도움도 크다. 연기를 하면서 평상시 말투와는 다른 말을 쓸 때 노래도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형: 정훈이가 쓴 글을 받아서 읽고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게 재미있다. “이거 맞지?” 했을 때 맞다고 하면 희열을 느낀다.(웃음)
결: 아버지가 시인이다. 그래서 나도 가사를 쓰면 잘 쓰겠지 했는데 아니더라. 친구라서가 아니라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잘 쓰는 것 같다.(일동 웃음) 속으로 생각해왔는데 말로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잔나비의 음악을 ‘빈티지 팝’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나?
정훈: 인터넷에 밴드를 시작할 때 들어야 할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이라는 답이 달린다. 거의 1970~80년대 밴드다. 심지어 60년대 밴드도 있다. 결국은 클래식이라는 거다. 자연스럽게 그때 음악을 듣게 되고 심지어 요즘 음악들보다 훨씬 더 익숙하게 느낄 때도 있다. 잔나비를 ‘복고 밴드’, ‘뉴트로 밴드’라고 부르면 타이틀 곡은 어느 정도 그런 시류를 의식하고 만든 거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음반의 모든 곡을 통틀어서 우리 음악이 클래식으로 규정되길 바랐다. 비틀스, 비치 보이스는 복고가 아니다. 그런 음악에 대한 동경을 담았고, 그 뿌리에서 나온 음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잔나비의 음악이 클래식 같은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 행사와 페스티벌, 이런 유명세가 잔나비의 음악적 경로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훈: 우리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하는 게 너무 재미있지만 그 음악을 사람들이 알아주면 훨씬 더 좋겠다는 마음으로 성립된 밴드다. 지금의 인기와 유명세가 방송을 통해 누린 것이더라도 음악을 만드는 데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 된다. 음악의 목표는 아니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는 힘을 얻는다.
할 수 있는 것이 여럿 늘었을 테다. 무엇을, 어떤 것을 더 하고 싶은가?
정훈: 1집 <몽키 호텔>에 전체적인 콘셉트가 있었다. <몽키 호텔 2>도 지금 작업 중인데 연결되는 스토리를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다. 늘 영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여건이 안 되니까 못했다. 예전에는 실현시키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제 조금씩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경준: 공연하는 걸 정말 좋아하고 우리만의 콘서트를 꾸미는 걸 좋아한다.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실현시킬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마치고 녹음이 잡혀 있다고 했다. 벌써 새로운 걸 만들고 있나?
정훈: 이것저것 막 하고 있다. 2집을 내고 나서 다섯 명 다 탈진 상태가 돼서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3집을 2집 고생한 1.5배만 더 하자고 했다. 그러면 더 좋은 결과물이 있을 거라 가정하자고. 모두 1.5배 더 고생하겠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바로 시작했다. 아직은 구상하고 이것저것 해보는 단계다. 2집 때 못 했던 작업들도 녹음하고 있다.
밴드라면 전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는 있을 것 같다.
도형: 밴드의 숙명이라고 해야 하나.
정훈: 특히 우리나라에서 밴드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책임감이 있지 않을까 한다. 밴드 신 자체가 무너져서 살리고 싶어하는? 70살이 되어서도 같이 연주하고 오랜 팬들과 함께 노래할 수 있으면 그때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전설이었다고.(웃음)
서로의 사이에서 뭔가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었나? 마냥 친구가 아닌 우린 밴드라는 공동체에 대한 확신 같은 것 말이다.
도형: 공연 때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 있다.
정훈: 반짝 하면서 다섯 명이 뭐 하나를 공유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럴 때 되게 짜릿하다.
옆 사람의 가장 좋아하는 점이 뭔가?
경준: 도형이는 밴드 안에서 모두의 행복함을 맡고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다.
도형: 정훈이는 친구들에게 장점을 잘 알려준다. “너는 이거 잘하니까 이거 해.”라고 하면 정말 잘된다. 그래서 이 친구 옆에 있는 게 편하다. 내 친구의 기운이 그런 것 같다.
정훈: 결이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순박한 친구다. 결이가 밴드에 들어오고 나서 엄청 끈끈하게 뭉쳤고 아직까지도 결이의 역할이 가장 크다. 말로 나눈 것들을 가장 먼저 실천으로 옮긴다.
결: 영현이는 맛있는 걸 잘 사준다. 커피도 잘 챙겨주고. 멤버들한테 돈을 안 아낀다.
영현: 경준이는 가장 모범적이다. 우리가 깜빡하는 걸 잘 챙겨준다.
혼자 있을 때 어떤 걸 즐기나?
경준: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영화나 TV를 본다. 인생 자체가 재미없는 사람이다.
도형: 요즘에는 풀 냄새가 좋다. 집 앞 벤치에 앉아서 향기를 맡으며 잔나비에 대한 댓글을 찾아본다. 연주에는 문제가 없는지, 잔나비 기타, 잔나비 건반 이렇게 쳐봐서 안 좋은 글 있으면 신고하고. 안 좋은 건 상관이 없는데 비방하는 글이 있다 그러면 신고하고.(웃음)
정훈: 경준이랑 비슷하다. 작업실에 박혀서 영화 보거나 결이랑 운동 간다.
결: 스케줄 없을 때는 운동하러 간다. 있을 때도 가끔 몰래 간다.(웃음) 이제 운동이 밥 먹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영현: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닌다. 혼자 나갔다가 결국은 멤버들 불러내서 훠궈 같은 걸 먹는다.
잔나비의 음악은 “언젠가는 다 사라져 전설로 남을 청춘의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지금 청춘인가?
도형: 청춘은 푸른 봄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여전히 처음 음악 할 때처럼 행복하고 즐겁다. 그래서 푸르른 봄,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영현: 지금도 청춘이고, 나중에도 청춘일 것 같다. 계속 열정을 갖고 한다면.
정훈: 청춘은 열정인 것 같다. 열정이라는 건 지금 ‘쓰잘데기’ 없고 거추장스러운 것 같지만 그게 없어지는 순간 길을 잃을 것 같다.
결: 꿈이랑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청춘이라 생각한다. 몸은 청춘이 아니지만 나이 들어도 청춘일 수 있지 않나.
경준: 비슷하다. 정리를 하자면 나이가 들어도 계속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려고 하다 보면 그것도 청춘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나. 그래서 20대뿐만 아니고 30대 청춘, 40대 청춘, 다 올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