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뮤지션, 시인과 에디터가 북클럽을 연다면?
'바자'가 연 가상의 북클럽에 초대합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BOOK CLUB
독서는 가장 매혹적인 유희이며,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그보다 흥미진진하다. <바자>가 북클럽을 열며, 영화감독과 뮤지션, 시인과 에디터가 고른 책을 소개한다.
피처 디렉터 손안나
북클럽을 연다면 첫 책으로 고를 책 소피 칼의 <시린 아픔>.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현대미술가 소피 칼의 사진집이자 에세이이며, 동시에 하나의 개념미술 작품이다. 작가는 자기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로서 타인과 고통을 공유하는 개념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것이 15년 뒤 책의 형태로 생명을 얻은 거다. 이 책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기 92일 전부터 하루 전까지의 편지를 역순으로 담은 ‘고통 이전의 날들’과 “5일 전, 사랑하는 남자가 날 떠났다”로 시작해서 “99일 전,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떠났다”로 끝나는 ‘고통 이후의 날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호텔 영수증, 편지, 메모, 심지어 세계 지도까지 덧붙이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폰트의 컬러까지 서서히 달라지는 그야말로 출판 예술의 정점이다.(소담출판사 만세!) 언젠가 북클럽을 연다면 여느 모임처럼 흥미진진한 서사나 유명한 아포리즘에 집중하는 대신 모호하면 모호한 대로 애매하면 애매한 대로 이미지와 느낌을 공유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으므로 단연 이 책을 최우선으로 꼽았지만 솔직히 꺼드럭대기 위함도 있다. 남편은 내가 책을 사다 나를 때마다 읽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모으냐며 핀잔을 주곤 하는데 다 이렇게 쓰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다. 내가 ‘북호더’가 된 건, 관심사에 속한 대부분의 책이 아주 빠르게 절판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러니 <바자> 북클럽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절판되었다고요? 저의 손때 묻은 책을 돌려가며 읽도록 합시다. 엣헴.
표지에 홀려 샀지만 다 읽지 못한 책 현대미술가 김성환의 <말 아님 노래>. 발췌독에 머문 조르조 아감벤의 <내용 없는 인간>과 함께 올해 안에 기필코 완독하리란 목표를 품고 있다.
계절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 존 디디온, 수전 손택을 잇는 지성적인 에세이스트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 “내 직업은 의료 배우, 환자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의료 배우란 의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환자 역할을 맡아 어떤 질병의 표준 증상들을 연기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어떤 학생은 사무적인 어투로 형식적인 질문만 하고 어떤 학생은 한자와 대화하며 그의 부모가 어떤 약을 복용했고 무슨 질병 또는 사고로 사망했는지까지 알아낸다. 공감의 차이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에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인터뷰가 업인 내가 견지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만나고 싶은 작가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인생의 절대량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늘고 길거나 굵고 짧거나, 어느 쪽이든 다 써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 것인가?” <여자와 여자의 세상>을 쓴 스즈키 이즈미는 스스로의 논리에 따르면 인생의 절대량을 너무 빨리 소모했다. 누드 모델, 핑크영화 배우, 연극배우, 각본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며 소설을 쓴 그는 1970년대에 신문, 잡지, 단행본, 영화, 무대, TV 등 거의 모든 미디어에 등장하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이었고 1986년 자살로 36년 7개월의 뜨거운 삶을 마감했다.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 이언 매큐언의 <속죄>. 나는 이 소설을 마치 리디북스 보듯, 깊은 밤 주먹을 입에 물고 꺽꺽 울면서 읽었다. 로비 생각에 가슴이 저릿해질 때면 <어톤먼트>를 돌려보길 수십 번. <속죄>의 두 번째 장은 원래 공상과학 단편소설이었다는 작가의 인터뷰에 감흥되어 팬픽을 써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살려내고 싶었다. 오오, 나의 로비… 불쌍한 청년이여…. 이언 매큐언은 지상 최고의 ‘웹소’ 작가다.(죄송합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 만화가 와야마 야마. 함께 작업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작업을 옆에서 훔쳐보고 싶다는, 그래서 가장 먼저 만화의 뒷이야기를 알고 싶다는 오타쿠적 욕망 때문이다. P.S. 존경하는 문학동네 선생님들, 현지에서 9월 8일 발매한다는 <여학교의 별> 5권은 언제 ‘정발’되나요?
위로받은 책과 구절 이승훈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 중에서 시 ‘우리가 할 일은 웃는 것이다’. “웅성거리는 삶 헤매고 떠도는 삶 술에 취해 주정도 하고 실수도 하는 삶이 세계입니다 고상한 영혼 따윈 없죠 형이상학도 없습니다 모두가 언어죠 후회도 언어 기쁨도 언어 모래도 언어 지금 저리는 팔도 언어 어제 들른 카페도 언어 당신도 언어입니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고 당신의 한계죠 당신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눈을 볼 수 없고 당신은 지금 추운 들판, 거리, 마른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시야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시야가 세계이고 세계의 한계죠 결국 사유는 미친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본질 따윈 버리세요 잊으세요 망각하세요 세계와 거리를 두지 마세요 그저 사세요 영혼 따위에 속지 마세요 진리를 찾지 마세요 삶이 그대로 진리입니다 당신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진리죠 오전엔 눈이 오고 오후엔 해가 납니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책 아따맘마 같은 얼굴로 인생의 비극을 논하다니 반칙이다.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
내 인생의 고전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나. 국어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장래 희망란에 소설가, 세 글자를 적은 내게 낡은 책 한 권을 선물해줬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였다. 당시 나는 김애란, 이기호, 박민규 같은 젊은 작가들에 빠져 있었고 그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감각을 체험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 심장이 모자랐다.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책장을 연 건, 부끄럽게도 서른이 넘어서였다. 글쓰기가,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진 못하지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믿음에 앞서 나는 한 소녀에 대해 생각했다. 2시간이 넘는 시골길을 걸어서 통학하던 소녀는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늘 공상을 했고 자연스럽게 소설가를 꿈꿨다고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1986년 7월 10일 발행, 그리고 몇 개의 메모들. 그 소녀의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자신의 소장본을 나에게 선물한 줄 20여 년이 넘도록 꿈에도 몰랐다. 위대한 작가 대신 신실한 교사가 된 소녀의 믿음은 훗날 그녀의 제자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선생님,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시인 고선경
※ 작가의 문체를 살렸습니다.
북클럽을 연다면 첫 책으로 고를 책 조르조 아감벤, <불과 글>. 2022년도인지 2023년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맘때 김행숙 시인께서 읽고 계시다기에 구매해 지금까지 읽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이 책을 소개하며 읽을 당시 떠올랐던 단상들을 나눠주었을 때 참 멋지다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나도 뭔가 저런 깊고 멋진 생각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따라 샀던 것 같아요. 북클럽을 연다면 용기 내서 이 책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깊게 읽어내지 못하거나 멋진 생각을 떠올리지 못할지라도요.
계절 혹은 시기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 한때는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꺼내 읽었는데요, 세 번째쯤부터 꼴값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 대신 많이 낯 뜨거워 하기도 했고요. 이제는 굳이 어떤 계절, 어떤 시기에 맞춰 특정한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고, 읽어야 할 새로운 책이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게으른 탓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가 전면에 꽂아두지 않고 숨겨둔 책 숨겼는데 왜 말하라고 하세요.(장난입니다. 의도적으로 숨긴 책은 없고 포장이사 하면서 기사님들께서 책등이 보이지 않게 꽂아둔 책이 몇 권 있을 뿐입니다….)
최근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 임승유, <텍스트 기억 연습>. 기억이 텍스트를 연습하는지 텍스트가 기억을 연습하는지 불분명해지는 지점이 재미있어요. 그 안에서 어떤 이미지들이 구체화되어가는 방식이나 과정도 흥미롭고요. 저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길 좋아합니다. 이야기는 몰입을 만들어내고, 몰입은 다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요.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연습한 것은 결국 시였던 것 같아요.
편견이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책 하마노 지히로의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를 읽으면서 내가 과연 편견을 넘어설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넘어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상 밖의 일입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 한영원, 유선혜, 이희주.
내 인생의 고전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나를 꿈꾸게 했던 푸른 눈동자. 앞치마 달린 푸른 원피스 자락이 부풀고 가라앉기를 아직도 반복하는 것 같아요.
영화감독 박세영
북클럽을 연다면 첫 책으로 고를 책 앙투안 볼로딘의 <미미한 천사들>. 예전에 꿈 일기를 기록해보려고 시도한 적 있다. 잠들기 전 머리맡에 일기장을 두고 일어나자마자 즉시 기억나는 만큼 꿈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기억이 안 나서 몇 단어밖에 못 썼는데, 그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점점 꿈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하루를 못 적은 적이 있는데, 그다음부터는 초기화되듯이 그토록 예민하게 가꾸어온 ‘꿈 기억하기 실력’이 바로 쇠퇴화되었다. 꿈을 기억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내가 통과한 순간인데, 왜 잘 기억해내지 못하게 되는 걸까? 이런 고민들을 하던 찰나에 접하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내가 분명 경험한 적 있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잊고 살던 감각들이 다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꿈 일기가 해주던 것을 더 직관적으로, 더 넘쳐나는 자극으로 책이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하고 소중한 책. 매년 한 번씩은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몇 문장을 읽는다. 살면서 잃고 싶지 않은 감각들을, 어쩌면 잊어버렸는데 잊어버린 것조차 까먹은 감각들을 늘 충실하게, 그리고 꿋꿋이 소환해주는 책. 감사합니다, 앙투안 볼로딘.
표지에 홀려 샀지만 다 읽지 못한 책 코맥 매카시 <패신저>. 죄송합니다, 매카시 작가님…. 빨리 읽겠습니다.
계절 혹은 시기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 패티 스미스의 <M 트레인>. 가을에 항상 찾게 되는 책. 패티 스미스의 여행 에세이다. 읽다 보면 매번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몇 년 전에는 이 책을 읽고 책에 등장하는 카페를 실제로 가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져서 뉴욕으로 떠났던 기억이 있다.
서가 전면에 꽂아두지 않고 숨겨둔 책 <Maison Martin Margiela>. 마르지엘라 하드커버 책이다. 의도적으로 숨겨둔 것은 아니다. 사실 너무 아끼는 책이지만 고양이들을 위해 설치한 캣타워가 무너지고 급하게 수리하던 중에 높이 유격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캣타워 하단 틈이랑 사이즈가 맞는 책이라 캣타워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고양이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있으며 그 후 캣타워는 무너지지 않았다.
최근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 오테사 모시페그의 <내 휴식과 이완의 해>. 하루 안에 다 읽었다. 너무 재밌었고 너무 우울해졌고 너무 기분이 안 좋아졌고 너무 슬퍼졌다. 그런데 그 후에 살고자 하는 희망이 조금 더 커졌다.
편견이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책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 어마무시한 걸작이라고 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어마무시무시무시무시한 걸작이었다. 엄청났다. 이렇게 안 읽히는 동시에 잘 읽히는 책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고전 허먼 멜빌 <모비딕>. 이 책도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실 흘러가지를 않았다. 책은 서사 전개를 중단하며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새어나간다. 그리고 그 이탈이 너무나도 좋다.
뮤지션 오존(O3ohn)
북클럽을 연다면 첫 책으로 고를 책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잘 못 자는 원인이 잘 자는 습관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일단 잠을 잘 잤으면 좋겠다. 그게 세계 평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표지에 홀려 샀지만 다 읽지 못한 책 류츠신의 <삼체>(전3권). 아직 2부를 읽는 중인데 궁금해 죽겠으면서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시리즈 시즌 2를 좀 빨리 내주셨으면 좋겠다.
계절 혹은 시기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라면을 먹는 여러 방법에 대해 쓴 부분이 있다. 읽다 보면 머릿속에 식감과 맛이 그려지면서 뜨거운 감칠맛이 느껴진다. 라면에 대한 존중이 다르다. “한 이십 초쯤 지나면 벌써 면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집게를 이용해 면을 풀어준다. 그리고 자꾸 들어올려서 공기를 쐬어준다. 일 분쯤 지나면 대파를 넣는다. 그리고 삼십 초쯤 더 지나면 바로 그릇에 담는다. 물론 아직 다 안 익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릇에 담은 후에도 라면은 계속 빠르게 익어가기 때문이다. 쟁반에 올려서 식탁까지 가는 동안에도 면의 상태는 확연히 달라진다. (중략)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상태에서 시작해야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도 웬만큼 탱탱함을 느끼며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가 전면에 꽂아두지 않고 숨겨둔 책 로렌스 스펜서의 <외계인 인터뷰>. 디자인과 폰트부터 기괴하다. 내용도 기가 막힌데 흥미로워서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 담아 다양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최근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 <천국대마경>. 훌륭한 작화와 촘촘한 이야기 구성이 돋보인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다가 궁금해져 책으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쪽 작화가 조금 더 마음에 든다.
편견이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책 레인 윌슨의 <The Bassoon King>. 드라마 <오피스>의 드와이트로 잘 알려진 배우의 에세이다. 비범한 아티스트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의 생애가 이토록 다이내믹할 줄은 몰랐다. 정글에서 보낸 유년기, 너드함의 끝을 달린 청소년기, 바순을 배우게 된 계기까지, 그의 글맛에 푹 빠져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가 팟캐스트에서 종교와 철학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바하이교 이야기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난 처음 접하는 종교라 새로운 지식을 얻어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종교 서적의 결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다만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잘 버무려두었다. 그 외에 사소한 에피소드와 배우로서의 삶, <오피스> 팬이라면 더 반가울 이야기까지, 과감하고 솔직한 유머로 가득한 책이다. 영어 공부를 위해 조금 부드러운 말투의 책을 찾다가 떠오른 책이기도 하다. 킨들로 읽으면 어려운 단어마다 영영사전 뜻이 작은 밑줄로 표기되어 공부하기 좋다. 짧은 집중력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까지 겹쳐 읽는 데 한세월 걸렸지만, 다 읽고 난 성취감은 상당하다. 에세이는 누군가의 생각을 옆자리에서 깊숙이 엿보는 체험 같다. 여행과 비슷하달까. 붙잡고 싶어 밑줄 친 순간들보다, 돌아보면 엉뚱한 기억이 더 오래 남기도 한다. 낯선 표지판이 ‘여행이구나’ 실감하게 해주듯, 번역을 거치지 않은 원서 그대로의 낯선 맛도 느껴보시길 바란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 김연수. 고등학생 시절과 20대 초반에 많이 읽었던 작가. <지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좋아하고, 최근 문득 생각이 나서 <음악소설집>을 다시 읽었다. 예전에 청춘을 다루던 글들의 느낌이 여전히 마음에 많이 남아 있다.
피처 에디터 안서경
북클럽을 연다면 첫 책으로 고를 책 멕시코 소설가 과달루페 네텔의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결혼과 출산이라는 기로에 선, 30~40대라는 생물학적 나이를 통과하는 여성들의 삶을 그린 소설. 자매들은 물론 남자친구와도 선택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표지에 홀려 샀지만 다 읽지 못한 책 출판사 읻다에서 출간한 현대미술가 이미래와 시인 김언희의 책 <봐라, 나는 사랑에 미쳐 날뛰는 오물의 분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량 제작한 몇 점 안 남은 책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구입했다. 작품 사진과 시인의 시가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시구와 작업을 찬찬히 감상하고 싶은데,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편집 디자인이 시원시원해서 시선을 틔워주는 책.
계절 혹은 시기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 볕이 따뜻해지거나 바람이 서늘해지는 계절이 오면 주기적으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과 <긴 호흡>의 아무 페이지나 펼쳤지만, 최근 다른 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편집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를 해마다 한 챕터씩 쉰 살 즈음까지 읽고 싶다. 인공지능 시대의 흐름에서 몇 발짝 비켜나, 유럽 일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인물들의 삶에서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서가 전면에 꽂아두지 않고 숨겨둔 책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은 왜 불안한가>, <사랑은 왜 끝나나>. 프랑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사랑 사회학 세 권. 사랑에 관해 샅샅이 알고 싶을 때 완독했지만 더는 책을 통해 알고 싶지 않다.
최근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 막연히 죽음이 두려웠던 시기 혹은 죽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던 무기력하고 호기롭던 시절, 누구나 있을 것이다. 20대처럼 허무를 느끼던 시간은 언덕 넘듯이 지났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왜 누군가 삶의 어떤 순간에는 자살에 관한 충동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떠난 얼굴들을 종종 생각했지만 이 주제를 파헤칠 도리는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종종 함께 있어주지 못한 사실을 책망하며 우울해하기도 했다. 1982년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판본이 주목받으며, 지난해 다시 출간된 이 책을 만물이 살아내려 발버둥치는 여름에서야 읽어낼 수 있었다. <가디언>과 <뉴욕 타임스>가 이 책에 관해 ‘예의 바르게 얼버무리는 말’들로 쓰지 않고, 자살이라는 주제를 ‘아름다운 무언가로 변환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부여한 과제를 완수한 책이라 쓴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절친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시작으로, 온갖 역사와 사회, 문학과 예술에서의 자살을 해부하다가 종국에는 “생이란, 아무도 거절해서는 안 되는 선물이다”라는 카뮈의 경구에 다다른다. 죽음 충동을 넘어서며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는 걸, 조금은 감지하고 나서 위안받게 된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 김혜순 시인과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를 펴고 하염없이 수다 떨고 싶다.
위로받은 책의 구절 “황홀한 순간마다/ 정확하게 오차 없이 그 황홀함에/ 맞먹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랑받은 시간을 누릴 때마다/ 정확하게 그 시간만큼의 해를 바쳐-/ 눈물젖은 돈궤에서-/ 한 푼도 빼지 않고 가차 없이 갚아야 한다!” 부채감과 배신에 시달리던 때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에서.
대중교통에서 펴서 읽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책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취향을 쉽게 간파당하지 않을 것 같아서. 빌 브라이슨은 어떤 상황에서든 느끼함을 중재해준다.
내 인생의 고전 기억하는 최초의 고전은 중학생 독서부에서 읽은 막심 고리키 <어머니>. 고등학생 때는 <무진기행>,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멋진 신세계>, 한껏 냉소적이었던 졸업반에 읽은 사르트르의 <말>과 카뮈의 <시지프 신화>. 지금 떠오르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가 엄선하고 번역한 피츠제럴드 단편선 <어느 작가의 오후>.
Credit
- 에디터/ 안서경
- 사진/ 전의철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지금 주목할 트렌드
#자켓, #스타일링, #셔츠, #액세서리, #트렌드, #청바지, #신발,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