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동화
일상의 모험을 담은 동화 같은 런웨이 쇼. 샤넬 2026 F/W 오트 쿠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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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FAIRY TALE
지난 7월 7일, 파리 오트 쿠튀르 기간을 통해 마티유 블라지의 두 번째 샤넬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내러티브와 샤넬을 입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그는 일상의 모험을 담은 동화 같은 런웨이 쇼를 선보였다. 물론 전혀 뻔하지 않은, 그만의 방식으로.
마티유 블라지가 써 내려간 한 편의 동화. 2026 가을/겨울 샤넬 오트 쿠튀르 쇼의 피날레.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아이에게 새로운 동화책을 읽어줄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야기 속에 담긴 새로운 세상,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장인물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결말까지. 잠시나마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시간이기에. 그리고 지난 7월 7일, 파리 오트 쿠튀르 기간에 열린 샤넬의 2026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쇼에서도 비슷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치 <잭과 콩나무>를 연상케 하는 동화 같은 장소로 탈바꿈한 그랑팔레(Grand Palais) 내부 공간. 바로 전날 공개된 티저에 등장한 콩나무가 힌트였던 것이다.(실제로 이번 세트는 <잭과 콩나무> 그리고 1990년대 영화 <쥬만지>에 등장하는 독초 꽃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살롱 전체를 휘감은 덩굴과 독초 꽃, 이들과 뒤엉켜 동동 떠 있는 의자들, 거대한 화병 등 초현실적인 세트에 압도된 게스트들은 저마다 휴대폰과 카메라를 꺼내 쇼장 곳곳을 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샤넬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쿠튀르 쇼를 준비하며 마티유 블라지는 내러티브와 샤넬을 입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삶은 과연 한 편의 동화였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서재에서 <요정들 이야기(Les Fées, contes des contes)>라는 작은 책을 발견했고,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와 함께 책이 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야기를 담은 옷을 만들 수 있을지 자문했죠.” 동화이자 일상의 모험을 담은 이번 컬렉션은 허구와 실용 사이를 오가며, 옷을 만들고, 그것을 입는 행위가 서로 공생하는 관계성을 탐구한다. 또 실제 모델들은 샤넬의 아파트 서재에서 꺼내 온 <요정들 이야기> 책을 손에 들고 런웨이에 등장했는데 그 자체로 동화책 속 세계가 의상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 <잭과 콩나무>를 비롯해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장화 신은 고양이> 등 고전 동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뒤 의상 곳곳에 드러낸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블라지는 단순히 판타지를 위한 판타지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호기심과 장인정신, 그리고 옷을 입는 것에 대한 기쁨을 찬미하기 위한 도구로 동화를 활용했을 뿐. 또한 그는 컬렉션의 영감을 얻기 위해 팀원들과 직접 콩나무를 심어 키워보기도 했는데, 이처럼 코코 샤넬과 상상 속의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방향성을 추구한 것이 주요했다. 동심을 자극하는 패션은 넘쳐나지만 이를 유치하지 않게, 얼마나 정교하게 선보이느냐는 온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여기에 반드시 우아함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샤넬’이니까.
아울러 그는 신체에 맞는 정교한 재단과 구조를 통해 컬렉션에 오래된 사고방식과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제작 방식을 담아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샤넬의 정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또 오트 쿠튀르 테일러, 플루(flou)와 갈롱(galon, 브레이드) 아틀리에를 비롯해 Le19M 공방의 직조, 자수, 플리츠, 모자 제작, 금세공, 구두 제작 장인들의 탁월한 기술이 그 중심에 있었다. 샤넬 수트 역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정의되었는데 마법의 콩을 연상케 하는 기퓌르(guipure) 레이스와 가볍고 투명한 실크 무슬린으로 완성한 첫 번째 룩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시즌 블라지가 선보인 예술적인 디테일의 굽들도 닭과 황금알, 강낭콩, 덩굴 모양으로 슬링백에 특별함을 더했고, 작은 미노디에르 백은 잠자는 곰, 강낭콩 마차, 둥지의 닭 형태로 완성돼 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또 의상 내부 곳곳에서 비밀스러운 디테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교한 동화책 일러스트가 담긴 실크 안감, 블라우스와 재킷 밑단에 달린 섬세한 체인 장식, ‘To-do List’가 적힌 시스루 실크 소재의 모조 포스트잇이 바로 그것. 그 밖에도 꽃, 곤충, 달걀, 동물들을 모티프로 한 다채로운 단추까지! 마티유 블라지는 피상적인 화려함보다 옷을 입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내밀한 디테일에 집중했다. “샤넬 쿠튀르는 ‘와!’ 하는 거창함이 아닙니다. 샤넬 쿠튀르는 디테일에 관한 것이죠.” 블라지의 말이다. “사람들이 쿠튀르를 거대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면, 샤넬의 쿠튀르는 미니어처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소중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쇼의 후반부 무렵 샤넬 쿠튀르 쇼의 전통인 웨딩드레스가 등장했다. 그러나 피날레를 장식한 건 아플리케 장식의 블랙 드레스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그 유명한 블랙 오프숄더 드레스를 연상케 했기에 혹자는 ‘복수(revenge) 드레스’라 불렀다.(가브리엘 샤넬 역시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보다 완벽한 결말도 없으리라.) 총 63벌로 채워진 쇼는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흘러갔고,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동화가 막을 내렸다. 사실 많은 이들이 오트 쿠튀르를 동화에 비유하곤 한다. 그 방식이 진부할 수 있으나 이번 쇼가 흥미롭고 또 놀라웠던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샤넬의 아카이브를 단순히 재탕하는 것이 아닌, 블라지의 시그너처인 촉각적인 호기심과 편안한 우아함을 하우스의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것. 두 번째는 현실적이고 당당한 현대 여성들의 모습을 옷에 투영했다는 것. 가브리엘 샤넬의 개인 서재에 있던 낡은 동화책에서 영감을 받은 이 컬렉션은 오트 쿠튀르가 여전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옷을 입는 여성과 깊이 연결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샤넬 오트 쿠튀르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그 본질은 여성, 그리고 그녀들의 현실과 일상 속의 모험을 위한 것이다. - 마티유 블라지
피날레를 장식한 리벤지 드레스. 완벽한 결말이었다.
Credit
- 사진/ ©Chanel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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