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블라지가 바꾸는 샤넬의 새로운 시대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을 통해 드러난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그리고 새로운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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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ANEL WHISPERER
“현실감 있는 매력이야말로 사람을 근사하게 만든다.” 마티유 블라지는 급진적인 철학 위에 세워진 116년 역사의 하우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의상은 모두 마티유 블라지 본인 소장품.
샤넬은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트위드 재킷을 입고 브런치를 즐기는 여자? 더블 C 로고를 사랑하는 K-팝 아이돌? 퀼팅 플랩 백을 든 부유한 엄마? 물론 샤넬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 그리고 ‘궁극의 시크함’을 상징하는 브랜드와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이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샤넬의 미학이 어쩌면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리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 하나의 여성상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아주 많은, 다양한 여성들을 봅니다.”
그는 지금 파리 캉봉 31가에 위치한 샤넬 쿠튀르 숍 한쪽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 이곳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직접 쇼를 연출하고, 계단 위에서 몰래 관람하곤 했던 전설적인 공간이다. 2026 F/W 샤넬 쇼를 몇 주 앞둔 초봄의 파리는 이례적으로 따뜻하지만 여전히 회색빛이다. 도착할 블라지를 기다리는 긴장감 사이,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5분 정도 후에 내려오실 거예요.” 벽에는 코코 샤넬의 옆모습이 담긴 흑백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해 어쩐지 조금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패션계의 가장 강력한 유산 한가운데에서, 하우스를 짊어지고 나아갈 사람을 기다리는 중요한 순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잠시 후 블라지가 계단을 가볍게 내려왔다. 고요한 정적이 흩어졌다. 쿼터 집업 스웨터와 네이비 팬츠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의 그가 말했다. “거의 유니폼 같은 거죠.” 아이보리색 암체어에 마주 앉은 우리는 파스텔 톤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틀리에에는 흰 코트가 있는데 저는 이걸 입어요.”
고상하고 비현실적인 공간과 달리, 샤넬에서 네 번째 컬렉션을 맡고 있는 41세의 그는 놀라울 만큼 겸손하고 담백하다. 나는 그에게 이 방에서 샤넬의 존재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죠.”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약간 ‘와, 미쳤다’ 하는 느낌이었어요.” 1920년대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길고 느슨한 실루엣, 허리선이 아래로 내려간 드레스, 박시한 수트로 여성을 해방시키며 패션계에 혁신을 몰고 온 이후, 칼 라거펠트는 1983년 이곳에 합류해 샤넬이라는 패션 하우스를 대중문화의 거대한 아이콘으로 변신시켰다. 그는 더블 C로 장식한, 화려한 트위드 미니스커트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랑 팔레에서의 샤넬 런웨이 쇼는 장관이었다. 셀러브리티로 꽉 찬 프런트 로는 물론이요, 그가 진두지휘한 세트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였다. 어느 시즌엔 무대가 거대한 지구본이었다가, 빙산으로 바뀌었다가, 심지어 실제로 이륙하는 로켓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블라지의 데뷔 쇼에서 거대한 행성들로 장식된 세트가 등장했지만, 샤넬은 그와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하다. 12월 열린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쇼에는 현실보다 지하로 내려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블라지는 뉴욕의 버려진 지하철 역을 무대로 삼았다. 마치 다양한 뉴요커들이 지하철을 타듯 분주한 느낌으로 모델들을 연출했다. 근사함은 여전했지만 에너지는 한층 낮아졌고, 그 안으로 모두가 초대된 느낌이었다.
트리니다드 카스타도(오른쪽)가 입은 재킷, 스커트, 플랩 백은 모두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 Chanel.
샤넬의 미학이 어쩌면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리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 하나의 여성상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아주 많은, 다양한 여성들을 봅니다.
2002년 라거펠트가 시작한 메티에 다르 컬렉션은 샤넬 아틀리에 장인들의 기술, 특히 자수와 장식이라는 유산적 공예를 조명한다. 라거펠트는 이 컬렉션을 잘츠부르크, 몬테카를로, 상하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도시에서 선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블라지가 서로 다른 배경과 스타일, 생각과 욕망이 뒤엉켜 충돌하는 뉴욕 지하철을 메티에 다르 컬렉션의 새로운 무대로 정한 것은, 지금까지 그가 그려온 샤넬의 비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선택이었다. 오프닝 룩을 보자. 쿼터 집업 스웨터(그가 현재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것)와 청바지는 NYU 공대생 출신의 모델 바비타 만다바가 입었다. 라피아 소재를 비틀어 장식하고, 수작업으로 불어 만든 유리 비즈가 촘촘히 박힌 더블 울 크레페 스커트수트는 마치 영화관에서 막 나와 옷 위에 붙은 팝콘이 정리되지 않은 모습처럼 보인다. 실크 샤르뫼즈로 재해석된 또 다른 데님도 있다. 이 마술은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었다. 수백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옷을 입은 모델들이 뉴욕 지하철 플랫폼 위를 바쁘게 오가는 모습은, 그들 역시 여느 뉴요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옷들은 욕망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최상의 기술과 공정을 거쳤음에도 어딘가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허리 부분이 단호하게 잘린 블레이저, 마치 삶의 시간을 고스란히 통과한 듯 보이는 스웨이드 플랩 백 위로 툭 걸쳐진 자수 재킷, 부클레로 만들어진 플란넬 셔츠 등이 그러하다. 주목도가 곧 권력이 된 지금 이 시대에, 블라지는 우리가 스스로 투영할 수 있는 옷과 감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옷에는 생명력이 있어요.” 배우 제시 버클리가 말한다. 그녀는 레드와 핑크가 어우러진 샤넬의 가운을 입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뉴욕 메티에 다르 쇼에서 그녀는 이렇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더 당당해지고 키가 커진 것 같고, 또렷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여성이라는 존재의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 안에는 어떤 생생함이 있었어요.” 또 다른 아카데미상 후보 테야나 테일러 역시 이에 공감한다. “마티유는 옷이 입는 사람을 보완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사람들이 그의 컬렉션을 입는 방식에서 드러나죠.”
바비타 만다바가 입은 니트, 재킷, 스커트, 귀고리, 장갑, 핸드백, 슬링백은 모두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 Chanel.
블라지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충돌에서 영감을 받았다.(그는 10년 전 뉴욕에 살며 라프 시몬스가 맡았던 캘빈 클라인에서 일했다.) 또한 1931년 코코 샤넬이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때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당시 도심을 거닐던 그녀는 수많은 여성들이 샤넬의 짝퉁을 입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단순한 로고 모방이 아니라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오히려 그녀에게 활력을 심어주었고 파리로 돌아가 디자인을 계속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샤넬은 이미 자신이 셀러브리티였어요.” 블라지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따라 하는 걸 보고 불쾌해 하기보다 오히려 그걸 받아들였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그녀는 파리에서 샤넬을 입고 저녁을 즐기거나 춤추러 가는 여성들을 봐왔지만, 그 스타일이 거리에서 실제로 확장되진 않았거든요.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고 스커트 길이를 과감히 줄였죠. 그 지점에서 아주 급진적으로 모던해진 거라고 봐요.”
블라지는 항상 스케치를 하는 편은 아니다. 그는 몸 위에 직접 천을 드레이핑하며, 본능에 따라 형태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는 팝 컬처와 문학, 역사에서 길어 올린 레퍼런스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러한 데이터는 그의 리서치 팀 헤드인 마리 발렌틴 거벌(Marie-Valentine Girbal)과의 협업 속에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축적된다. 그는 요즘 작업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로잘리아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말한다.
런웨이 사운드트랙 역시 그의 감각적인 취향을 드러낸다. 스냅(Snap!)의 ‘Rhythm is a Dancer’나 레이디 가가의 ‘Just Dance’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트랙부터 메티에 다르 쇼에서는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의 보이스오버와 시스터 낸시의 ‘Bam Bam’을 활용하기도 했다. “제가 이해하고, 제 세대에 말을 거는 레퍼런스를 쓰는 것에는 어떤 솔직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게 더 젊은 세대에게 가 닿을 수도 있겠죠.” 블라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벼운 공기처럼 흩날리는 쿠튀르 컬렉션이 걸린 행어와 마네킹 옆, 색을 맞춘 꽃병을 바라본다. “글쎄요. 저는 그저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해요.”
재킷, 스커트, 귀고리, 플랩 백, 메리제인 힐은 모두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 Chanel.
카스타노가 입은 재킷, 스커트, 머리 장식, 슬링백 힐은 모두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 Chanel.
블라지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여성들을 런웨이에 세운다. 그 중에는 49세 모델이자 빈티지 숍 오너인 스테파니 카발리(Stephanie Cavalli)도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세 번의 쇼에 섰는데, 두 번의 오프닝을 장식하며 블라지의 새로운 뮤즈로 자리잡았다. 그는 그녀를 ‘현대판 코코 샤넬’이라 부른다. 카발리는 블라지의 샤넬을 두고 “다양한 나이와 인종을 위한 가능성을 열어줘요. 마치 꽃이 피어나듯 확장되는 느낌이죠”라고 표현한다. 그 포용성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 에이셉 라키, 제이콥 엘로디, 페드로 파스칼, 켄드릭 라마 등이 블라지의 샤넬을 입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성복을 한다는 사실을 따로 부각시키지는 않아요.”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그저 모두에게 어울리는 피스들이 있을 뿐이죠.” 이러한 계획의 일부는 샤넬 부티크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특정 고객층을 겨냥하기보다 카테고리와 사이즈의 경계를 허물어 보다 유연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것. “일부 제품군에서는 사이즈 체계를 바꿨어요. 36, 38, 44, 48 같은 숫자 대신 S, M, L로 표기하죠. 사이즈에서 성별 개념을 제거한 거예요. 저는 제가 믿는 이야기와 디자인을 제안하죠. 제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이요. 사실 새로운 가방이나 재킷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에요. 샤넬은 결국 하나의 꿈이어야 하니까요.”
모델 바비타 만다바는 블라지의 모든 쇼에 올랐다. 특히 쿼터 집업 니트와 데님 룩을 좋아한다. “가장 나다운 느낌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룩을 재해석하는 걸 보는 것도 흥미로웠죠. 그만큼 임팩트가 있다는 것이고, 패션이 영감을 주고, 서로 다른 공간과 커뮤니티를 넘어 사람들을 잇는 힘을 가진다는 증거니까요. 사람들이 제품이 아니라 패션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 블라지는 말한다. “샤넬을 원하는 고객이라면, 어차피 결국 찾아오게 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학생이 자신의 오래된 쿼터 집업과 청바지를 입기 시작하거나, 젊은 여성이 블레이저를 자른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잖아요.”
블라지를 만난 다음 날, 나는 샤넬이 소유한 11개의 장인 아틀리에가 모여 있는 복합 공간 Le19M을 찾았다. 이곳에는 자수 공방 르사주(Lesage)와 아틀리에 몽텍스(Montex), 꽃과 깃털을 다루는 르마리에(Lemarié), 슈메이커 마사로(Massaro), 섬세한 소재를 다루는 아틀리에 팔로마(Paloma), 그리고 모자 공방 메종 미셸(Maison Michel) 등이 자리해 있다. 이들 아틀리에의 장인정신은 보통 오트 쿠튀르나 메티에 다르 컬렉션에 한정되어 있지만, 블라지는 이를 하우스 전반에 끌어들여 각 메종 간의 협업을 한층 긴밀히 만드는 등 레디투웨어에도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Le19M 아틀리에의 내부. 자수와 모자, 전통적인 방식의 우븐 트위드 기술에 특화된 장인들이 블라지의 첫 번째 메티에 다르 컬렉션의 정교한 피스들을 책임지고 있다.
몽텍스 작업실에 들어서자 쿠튀르 살롱에서 느꼈던 것과 닮은 고요함이 감돈다. 젊은 장인들이 수동 기계를 섬세하게 다루며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대부분 25세에서 40세 사이로 보인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화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하나 없이 오직 실크, 라피아, 비즈, 머슬린, 그리고 옷 위에 놓일 자수 위치를 표시한 손 그림 도안들만이 놓여 있다. 장인정신은 실로 정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레사주에서는 샤넬의 상징적인 트위드가 앤티크 직조기로 제작되고 있었다. 모자 공방인 메종 미셸을 둘러보던 중, 나는 표범 머리 형태의 펠트 머리 장식(fascinator)을 집어 들다가 한쪽에 놓인 작은 베일에 시선이 멈췄다. 메종의 아트 디렉터 프리실라 로이어(Priscilla Royer)에 따르면 이 작품은 여러 메종 간의 협업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캡은 메종 미셸, 얼굴을 감싸는 실크 케이지는 팔로마, 꽃 장식은 르마리에, 그리고 작은 꽃 자수는 모넥스가 맡았다. 블라지의 정확한 요구(멀리서 어떻게 보여야 하고, 머리에 얹히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며, 얼굴을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를 구현하는 것은 거대하고도 흥분되는 도전이었다고 한다. 나는 손안에 가볍고도 섬세한 조각을 올려놓으며, 전날 블라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수는 단순히 예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무언가를 설명하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전달해야 하죠.”
블라지는 커리어 전반에 거쳐 제품을 시대정신으로 확장하는 능력을 다듬어왔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라프 시몬스에게 발탁되어 패션계에 입문했다. 당시 브뤼셀의 라 캄브레(La Cambre) 졸업 컬렉션(첫 파리 출신 우주비행사 클로디 에뉴레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계기로 채용되었다.(라프 시몬스는 2026년 3월 열린 샤넬 F/W 쇼의 프런트 로에 앉아 있었다.) 블라지의 스승 토니 델캄프(Tony Delcampe)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7세 소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예술 전반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깊었어요.” 그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동시대 세계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그것을 의상 언어로 번역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였던 라 캄브레의 철학에 블라지는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재였다. 그후 시몬스와 함께 남성복을 담당했던 블라지는 2011년 메종 마르지엘라에 합류해 아티저널(Artisanal) 라인의 익명 디자인 팀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2014년,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멘키스가 컬렉션 리뷰를 통해 그의 존재를 밝히며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 샤넬에서 보여주는 그 섬세함과 디테일의 조합을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해요.” 이후 시몬스가 그를 기용해 캘빈 클라인에서 함께 일했으며, 알라이아의 전 디자이너인 피터 뮬리에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블라지는 업계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2021년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이후 라피아와 바나나 잎처럼 보이도록 가공한 텍스처 가죽 같은 예상 밖의 소재를 연금술처럼 다루며, 손대는 모든 것을 보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2004년 영화 <클로저> 속 내털리 포트먼의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은 화이트 탱크톱과 트롱프뢰유 가죽 진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일깨운, 그의 시그너처로 남아 있다.
샤넬에 합류한 뒤 블라지가 가장 먼저 파고든 것은 샤넬의 시그너처인 투톤 슈즈나 2.55 백이 아니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코코 샤넬, 그녀의 역사였다. “개인적인 서사와 그녀가 바라본 것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디자인으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가 선보인 각각의 컬렉션에는 코코 샤넬의 삶의 일화가 담겨 있다. 보이 카펠과의 사랑, 그가 즐겨 입던 셔츠, “여성에게는 자신을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화시켜줄 옷이 필요하다”라고 했던 <르 피가로(Le Figaro)> 인터뷰, 첫 뉴욕 방문, 그리고 사랑했던 플래퍼 드레스까지. “샤넬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는 그녀의 접근 방식이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해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본인 스스로의 삶이 실험이었죠. 그녀는 스스로를 위한 옷을 만들었어요. 현대 패션의 시작이 곧 해방의 행위였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샤넬 패션 부문의 오랜 수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Bruno Pavlovsky)는 이렇게 설명한다. “블라지는 실루엣을 진화시키고 있어요. 이전보다 더 쿨한 방식으로요.” 메티에 다르 쇼에 대한 나의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인다.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기 때문에 쇼가 굉장히 진정성 있고 임팩트 있게 느껴집니다. 어느 순간에는 세트나 데코조차 잊게 되죠. 결국 눈에 들어오는 건 실루엣과 모델들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내가 입으면 되잖아?’”
카스타노가 입은 드레스, 스커트, 플랩 백, 슬링백 힐은 모두 2026 메티에 다르 컬렉션 Chanel.
사실 새로운 가방이나 재킷이 꼭 필요한 건 아니죠. 샤넬은 결국 하나의 꿈이어야 하니까요.
블라지는 샤넬이라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세계 안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옷을 만든다. “저는 컬렉션을 시작할 때 ‘옷장’을 먼저 떠올리진 않아요. 하지만 결국 하나의 옷장처럼 완성되도록 만드는 데 집중하죠.” 인터뷰 후 작업(체인메일 스커트수트와 과장된 벨트 장식 드롭 웨이스트가 포함될 F/W 컬렉션일 거다)을 위해 돌아갈 시간이 되자, 그는 내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거울 계단 뒤로 사라졌다.
몇 주 뒤, 블라지의 2026년 S/S 컬렉션이 유럽 매장에 도착하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거의 광적일 정도다. 패션 에디터들은 그룹 채팅방에서 치열하게 쇼핑 전략을 짰고, 캉봉가 부티크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인플루언서들은 수십만 팔로어에게 쇼핑 하울 영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물론 나 역시 이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컬렉션 출시 당시 파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나의 절친은 뉴욕 시간 오전 7시에 페이스타임을 걸어와 매장에서 신발을 대신 보여줬으니까 말이다. 남편과 세 살 반 된 아이까지 깨워버린 전화였지만, 터키색과 블랙 컬러의 사각 슬링백 슈즈는 이 모든 소동을 감수할 만했다. 나는 이것을 가장 좋아하는 데님과 함께 신을 예정이다.
Credit
- 사진/ Jeremy Everett
- 스타일리스트/ Laëtitia Gimenez Adam
- 글/ Brooke Bobb
- 번역/ 이민경
- 모델/ Trinidad Castaño,Bhavitha Mandava
- 헤어/ Yuji Okuda(Less Is More Organic Haircare)
- 메이크업/ Thierry Do Nascimento
- 네일/ Chloé Nguyên
- 캐스팅/ Anita Bitton At The Establishment
- 프로덕션/ Day Int.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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