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션 맥기르의 맥퀸 2026 S/S가 주는 메시지. 사진만 봐도 타는 냄새가 솔솔.

“만약 본능에 몸을 맡긴다면, 우리의 욕망과 충동은 어디로 향할까요?”

프로필 by 윤혜연 2025.10.10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흙 냄새와 불의 잔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중앙에는 자연 소재 식물, 코르크 등을 사용해 만든 마이폴 구조물이 서 있었고, 그 주위를 감싸는 헤시안 리본이 천천히 흔들렸다. 션 맥기르가 이끄는 맥퀸 2026 S/S 컬렉션은 “질서와 본능, 억제와 해방의 경계”를 탐험하는 의식이자, 불타는 욕망의 시각적 기록이었다.


이번 시즌의 맥퀸은 제복을 해체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정교하게 재단한 재킷은 테일러링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구조를 비틀었다. 비대칭으로 절개한 포켓, 제복 소재를 활용한 뷔스티에 드레스, 날카롭게 잘린 라펠까지. 하우스 특유의 테일러링 유산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됐다. 셔츠는 몸을 따라 조여졌고, 스커트와 팬츠는 낮게 걸쳐져 실루엣의 긴장을 만들었다. 특히 눈에 띈 건 극도로 낮은 로라이즈 범스터 팬츠. 신체의 윤곽을 강조해 인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강렬하게 시각화한 모습이었다.


맥기르는 전통적 여성성의 상징이던 코르셋도 해방시켰다. 자카드 드레스 위에 더해지거나 부츠를 감싸며 장식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적용한 것. 이어지는 룩에서는 추상적인 곤충 프린트와 불꽃 자수가 돋보였다. 실크 패러슈트 점퍼는 공기를 머금은 듯 흩날렸고, 스프레이 페인트로 번진 컬러가 질감을 더했다. 불에 그을린 듯한 드레스, 겹겹이 흐르는 시폰, 그 속에 살아 있는 ‘움직임’이 이번 시즌의 중심이었다.


이 외에도 액세서리는 이번 시즌의 원초적 서사를 이어갔다. 진주조개, 나무, 부적 참이 달린 백은 고대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조형미를 품었고, 아카이브 ‘만타(Manta)’ 백은 기하학적인 곡선으로 재탄생했다. 불꽃 장식과 코르셋 레이스가 더해진 백, 매끄럽게 조각된 가죽 힐과 플로럴 자카드 부츠, 모두 본능과 질서의 이중성을 담아냈다. 주얼리 역시 가위, 곤충, 갈빗대 같은 모티프를 통해 자연의 형태를 조각하듯 표현했다. 강렬하지만 세밀한 리듬이 룩 전체를 완성했다.


이번 시즌 맥퀸은 ‘자연’이라는 주제를 단지 미학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파리 기후협약 10주년을 맞아 NGO ACT1.5와 협력, 쇼 전체를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로 구현했다. 세트는 재생 가능한 소재로 제작됐고, 전 과정이 HVO 기반 재생 에너지로 구동됐다. 앞서 언급했던 헤시안 리본 8,000m와 식물성 코르크, 천연 염색 원단은 하우스의 기술적 미감과 환경적 책임을 동시에 상징했다. 맥퀸은 이번에도 ‘본능’과 ‘책임’을 하나의 언어로 엮어냈다.


쇼의 여운을 극대화한 건 음악이었다. A.G. 쿡이 제작한 사운드트랙은 불안과 해방이 교차하는 긴장을 품었다. 어쿠스틱과 전자음이 물, 불, 흙의 원초적 리듬 위에서 부딪혔고, 모델들이 중앙 구조물 주위를 돌며 피날레를 장식할 때, 질서와 본능은 완전히 하나로 합쳐졌다.


파리의 한복판에서 션 맥기르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 맥퀸은 여전히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하우스라는 것을.


Credit

  • 사진/ © McQu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