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정현과의 인터뷰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1_ 이정현은 감독으로서 첫 연출작이자 단편 영화 <꽃놀이 간다>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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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는 세계에서 쓰임을 찾는, 이정현
1996년 <꽃잎>으로 데뷔한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 순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던 이정현이 감독이 되어 나타났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 <꽃놀이 간다>는 복지 사각지대를 조명하면서 사회 속 그늘진 이들을 어루만진다.

하퍼스 바자 영상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뒤 만든 첫 연출작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어요. ‘와 필름’이라는 1인 제작사를 설립하며 영화 제작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죠.
이정현 실은 가수 활동을 하던 20살 무렵 인터뷰에서도 꿈이 무엇인지 물으면 늘 영화감독이라고 답변하곤 했어요. 하지만 용기도 없고, 스스로 시야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접어두었죠. 언제 해보지, 꿈만 꾸다 40대에 접어드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면서 타인의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각본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일일이 지인들에게 봐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대학원에 가면 모든 교수님들을 편하게 괴롭히며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죠. 장비도 마음껏 쓸 수 있고. (웃음) 대학원 동기들의 촬영 현장을 품앗이로 도우며, 열댓 명의 스태프와 찍은 저예산 영화인데 극장에서 상영되니 너무 떨렸어요.
하퍼스 바자 영화는 2022년 복지 사각지대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생활고로 숨진 ‘창신동 모자 사건’을 모티프로 삼죠. 실화를 바탕으로 첫 영화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정현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접한 뒤 계속 이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어요. 항상 이런 사건들은 금방 잊혀지니 영화로 남겨두면 의미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마음이 움직인 거죠. 이번 전주영화제에 프로그래머로서 추천작을 골라 상영하게 되었는데, 출연작이나 인연이 닿은 감독님의 작품을 제외하곤 제가 고른 영화들이 하나같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더라고요.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아무도 모른다>처럼. 실화에 기반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에 번번이 매료되고, 사회 일원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가 제 취향에 잘 맞아요.
하퍼스 바자 첫 장면부터 고성을 지르며 유쾌하지만 강단 있는 이정현표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강제 퇴원을 시켜달라며 난동을 피우는 딸 수미의 등장 신이 강렬하더군요.
이정현 첫 장면에서 수미가 횡포를 부리는 이유는, 그 다음 신인 적막한 집에서 가득 쌓인 고지서를 홀로 마주하는 순간과 대비를 주기 위해서였어요. 병원비를 수납하지 못해 쫓겨나기 전 난리를 피우는 거죠. 실제 대학병원에 물어 조사해보니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 반영한 부분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꽃놀이 간다>라는 제목을 보고 관광버스나 꽃이 등장하지 않을까 추측했는데 예상이 빗나가더군요. 집 안과 밖에서 철저히 수미의 비극적인 현실을 비추죠.
이정현 제목은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어요. 제가 딸 다섯 중 막내인데, 어머니께서 3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실 때 그렇게 꽃놀이를 가고 싶어하셨는데, 저는 이해를 못해 싸운 적도 있거든요. 두고두고 후회가 남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수미는 환영에 휩싸여서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때 꽃놀이 관광 포스터를 보고 실낱같은 희망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혼자 춤을 추고, 좋아하고. 밝음 속에서 비극이 더 부각되길 의도했어요.
하퍼스 바자 주연 배우이자 감독으로 연출하는 경험은 어땠어요?
이정현 몸이 10개여도 모자라더라고요. 10여 명 남짓한 팀원들이 일당백을 하다 보니 저 역시 연기와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부, 연출부, 의상팀을 맡아야 했죠. 단역 배우들 옷을 다리다 ‘컷’ 외치러 달려가고. 감독으로서 제가 힘든 내색을 하면 모두가 힘들 테니, 그걸 숨기면서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죠. 3회차밖에 안 되는 스케줄상 거의 모든 컷을 한 테이크씩만 가야 했어요. 가끔 카메라가 흔들릴 때만 한 컷 더 갈 수 있었죠.(웃음)

하퍼스 바자 스스로 감독으로서 ‘이건 잘했다’, 칭찬해주고 싶은 점도 있나요?
이정현 아유, 그런 게 어딨겠어요. 다만 영화 미술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극중 항암 치료를 받는 엄마가 입맛이 없어 묵을 찾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배달앱을 봐도 묵을 요리해주는 데가 없더라고요. 얼른 시장에서 묵을 구해다 김밥 속 재료로 고명을 얹어 예쁘게 묵사발을 만들었죠.(웃음)
하퍼스 바자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영화제는 프로그래머로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포함해 감독들과 함께 GV 상영을 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30여 년 만에 데뷔작 <꽃잎>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게 낯선 경험이었을 듯해요. 혹여 혹독한 데뷔가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진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봤는데 직접 장선우 감독에게 영화제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고요.
이정현 사실 <꽃잎>을 어제 처음으로 30년 만에 끝까지 봤어요. 그전에 극장에서 본 적은 있지만 항상 눈을 감고 있었거든요. 20대 관객들이 많아 충격적인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관객과, 감독님과 영화에 관해 치열히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뻤어요. 제가 연기했는데도 제 모습이 낯설더라고요. 성폭행이나 폭력 장면들이 어려울 수 있지만, 영화 속 소녀가 인부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잃어버린 친오빠와 닮아 그 충격으로 쫓아다니는 거거든요. 이야기 안에서 그저 영화 속 소녀가 안쓰러워 내내 가슴 아팠어요. 촬영 기간 동안 말 그대로 ‘미친 소녀’로 살아온 저를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저는 끝나자마자 서태지와아이들 음악을 들으며 다시 저로 돌아왔어요.
하퍼스 바자 영화계로 복귀하게 만든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은 티켓 예매 오픈 직후 바로 매진되기도 했죠. 유튜브에 업로드된 메이킹 필름에서 “얼어 죽든 말든 몸을 던져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던 당찬 포부가 기억에 남아요. 현장에서 그런 용기는 어떻게 발현되는 건가요?
이정현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소리 언니가 임신 사실을 촬영 당일 알게 되어, 물에 빠지는 신을 찍을 수 없어 제가 급히 투입되었어요. 당시 연기에 목말라 있어 영화 현장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죠. 몸이 힘든 건 생각도 안 했어요. <꽃잎>으로 필름 영화 찍는 현장이 마지막이었는데 아이폰으로 찍은 <파란만장>에선 현장에서 실시간 편집을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웃음)
하퍼스 바자 새 단편영화 촬영을 준비 중이라고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이정현 다시 범죄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예요. 몇 가지 사건을 모티프로 뒤섞는데 또 엄마와 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이번엔 제가 엄마로 나오고 딸은 신인 배우를 살펴보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이정현을 계속해서 영화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이정현 영화는 저의 인생이에요. 15살에 <꽃잎> 오디션에 붙은 다음 주말이면 서울극장, 단성사를 찾아 영화를 봤어요. 찢어진 티켓을 다이어리에 모아 쉬는 시간에 보면서 다음엔 무슨 영화 보지, 설레어하고. 이야기의 세계에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드는 총체적인 예술을 한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저에겐 흥분되고 끊임없이 에너지가 솟는 일인 것 같아요.
Credit
- 사진/ 박규태(인물), 전주국제영화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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