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5 봄, 여름 파리 오트 쿠튀르 하이라이츠

오트 쿠튀르 런웨이 이모저모. 누구는 흙을 파고, 누구는 서커스를 하고?!

프로필 by 윤혜연 2025.02.25

BORN IN STITCHES


지난 1월 말, 파리에서 나흘간 2025 S/S 오트 쿠튀르 위크가 열렸다. 장인정신과 혁신이 맞닿은 자리. 바늘과 실이 직조한 이 장대한 서사 속에서 패션을 예술의 경지에 올린, 그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다.


 Miss Sohee  Viktor&Rolf  Chanel  Valentino  Giorgio Armani Privé  Schiaparelli  Jean Paul Gaultier  Dior

Julien Fournié Julien Fournié Yuima Nakazato

THE STUNNING PERFORMANCE

패션쇼의 백미는 단순히 새로운 의상을 공개하는 데 있지 않다. 음악, 조명, 무대 디자인, 퍼포먼스 등 다양한 감각적 요소가 결합하며 쇼는 하나의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된다. 이번 위크에서는 두 개의 메종이 괄목할 만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유이마 나카자토는 피날레에 직접 등장, 캣워크 무대였던 모래 둔덕을 헤쳐 마지막 피스를 발굴해 모델에게 입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인간이 탄생한 대자연에 예찬을 보내는 동시에 오늘날 기후 변화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고뇌를 담은 메시지였다. 줄리앙 푸르니에는 패션과 공연의 경계를 대담하게 허물었다. 수트를 입고 토끼 가면을 쓴 모델이 관객을 향해 글리터를 쏘아 올리는가 하면, 발끝을 덮는 타이트한 테일러드 코트를 드레스처럼 착용한 모델은 섬뜩한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어쩐지 유령처럼 런웨이를 걸었다. 푸르니에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슈퍼히어로, 외계인, 마녀 등 상상 속 인물을 패션으로 구현했는데, 이를 위해 혁신적인 기법을 결합함으로써 독창적인 쿠튀르 세계를 완성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루도빅 드 생 세르넹 케빈 제르마니에

NEW NAMES

프랑스패션연합(FHCM)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소수 브랜드만이 스케줄표에 오를 수 있어 신진 디자이너의 등장 빈도가 적은 오트 쿠튀르. 이번 시즌엔 새로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우선 발렌티노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맥시멀리스트로 잘 알려진 그가 쿠튀리에로서 첫발을 내디딘 자리라 더욱 주목받았다. ‘목록’을 주제로 한 런웨이에 모델 48명이 중세 수녀, 마리 앙투아네트, 무성영화 배우, 추기경, 시인 등 다양한 이미지를 오마주하며 등장했다. 각 의상에 정교하게 장식한 진주, 깃털, 퀼팅, 레이스, 리본 등 디테일에서 오트 쿠튀르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주인공은 매 시즌 다른 디자이너를 초청하는 장 폴 고티에로, 이번 시즌에는 루도빅 드 생 세르넹에게 맡겼다.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캣워크는 그야말로 관능적 몸짓의 향연이었다. 침몰을 뜻하는 이번 시즌 테마 ‘Naufrage’ 철자를 서스펜더 형태의 패브릭 라인으로 구현한(심지어 알파벳의 얇은 획이 니플을 겨우 가린!) 룩은 메종의 뛰어난 패턴 메이킹 기술을 방증했으며, 코르셋으로 제작한 보디수트 역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케빈 제르마니에가 올봄 처음으로 오트 쿠튀르 데뷔전을 치렀다. 이미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부터 수공예 비즈 장식과 깃털을 활용한 아방가르드 룩을 선보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Schiaparelli Germanier

SUSTAINABLITY FOR THE EARTH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오트 쿠튀르 의상은 하나하나 손으로 정교하게 봉제되며 고급 소재로 몇 점만 제작,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이로 인해 오트 쿠튀르 메종은 프레타 포르테 브랜드처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직관적 방식을 취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시즌 친환경 소재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스키아파렐리는 한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1920~30년대 리본을 활용해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다. ‘재활용한 소재로는 모던한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에 오히려 상상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컬렉션은 바로크적이고 화려한 스타일로 탄생했다. 빛바랜 색 또한 그대로 활용해 한 세기 전의 스타일을 그대로 소환했다. 로날드 반 더 캠프는 빈티지와 잉여 소재, 재활용 섬유를 사용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는 전통 장인의 손끝에서 펼쳐진다. 이 외에도 제르마니에, 엘리 사브, 피트 둘라르트 등이 지속가능한 접근을 지속하고 있다.

Credit

  • 사진/ Launchmetrics, Getty Images
  • ⓒ Chanel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